‘초두효과’ ‘자이가르닉 효과’가 주는 착각… 감정능력 떨어지는 남자가 더 못 잊어

그는 요즘 정신이 나갔다. 20년 만에 나타난 그녀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첫사랑으로 만나 5년을 사귀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여신으로 불리던 그녀와 수려한 외모에 전교 수석을 놓지 않았던 그는 누가 보아도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부모는 둘의 교제를 결사반대했다. 아들의 미래에 그녀는 방해가 될 뿐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다. 10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다 열심히 일만 했다. 문득 ‘이러다 독신으로 늙어죽겠다’ 싶어 마흔에 결혼을 마음먹고, 현재 아내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과 함께 시작한 사업도 승승장구했고, 아이도 둘을 낳고, 가정도 편안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미국으로 떠날 무렵 탤런트가 됐다. 몇 년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더니 사라져 궁금했지만, 잘 살 것이라 생각하고 까맣게 잊었다. 그런 그녀를 최근 잡지 인터뷰 기사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녀는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미모는 여전하다. 게다가 미혼이란다. 그녀는 미혼인 이유로 첫사랑을 언급했다. 가시에선 “그동안 늘 보고 싶었다”는 말도 나왔다. 이후 그는 정신이 없어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고,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예전 열렬했던 느낌, 뜨거웠던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그녀를 다시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잃어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의 부인도 괜찮은 여성이다. 이 방황이 너무나 말이 안 된다는 걸 그도 잘 안다. 그래도 그녀에게 향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정신이 온통 그녀에게만 쏠려있다. 설렘과 죄의식 등 복잡한 감정으로 매일 잠을 설친다. 정말 너무 힘들다.

우리는 첫사랑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때, 그녀 또는 그를 떠올린다. 그(그녀)를 보면 마음이 설레고, 누군가와 있는 것을 질투하고, 좋아하는지 몰라 가슴졸인다. “남자의 사랑은 인생의 일부이고, 여자의 사랑은 인생의 전부이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 태어나 처음 느껴본 감정이다. 보고 싶고, 울고 싶고, 만나고 싶다. 사랑은 폭풍처럼 찾아오고, 폭풍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첫사랑이 신비로운 것은 영원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묻는다.”

첫사랑, 왜 못 잊을까? 처음이라서 그렇다. ‘초두효과’란 게 있다. 처음 입력된 것은 다른 정보보다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첫 경험은 강렬하다. 모든 것이 새롭다. 첫사랑은 순수하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처음 함께 한 감정은 강렬하다. 모든 것이 흥미롭다. 미완성이라서 그렇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게 있다. 마치지 못한 일은 완성된 과제보다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사랑에 빠진 날 고통도 시작한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끝나지 않은 드라마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과거를 회상할 때 마음대로 편집하고, 미래를 상상할 때 임의대로 구성한다. 과거를 보다 아름답게 기억하고, 미래를 보다 완벽하게 상상한다. 헤어진 사랑은 더욱 애달프고, 못 이룬 사랑은 더욱 아쉽다. 상상으로 그려진 첫사랑은 환상이다. 인간의 뇌는 바보스럽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기쁠 때 과거가 행복하게 보이고, 슬플 때 미래가 불행하게 보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면 상대가 그립고, 나쁜 추억을 떠올리면 상대가 밉다. 색안경으로 본 첫사랑은 착각이다.

첫사랑, 왜 남자가 더 잊지 못할까? 남자는 감정능력이 떨어진다. 여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먼저 느끼고, 남자는 그 감정을 여자(이성)를 통해 느끼게 된다. 남자는 감정을 다루는 것에 서툴다. 서투른 사랑은 완결되지 못한 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남자는 사랑보다 성공을 더 추구한다. 남자에게 사랑은 가치 추구의 일부이고, 여자에게 사랑은 의미를 건 전부이다. 남자는 현재 쾌락에 잘 빠지고, 여자는 현재 감정에 충실하다. 남자에겐 사랑은 특별한 사건이고, 여자에게 사랑은 일상적인 일이다.

국회의원이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원장이 직접 나서서 병실을 보여 주었다. 처음 방에서 한 남자가 벽에 붙은 여인 사진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원장이 말했다. “이 남자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결혼할 수가 없어서 미쳤습니다.” 병원을 다 둘러보고 마지막 방에 이르렀다. 그 방에서 다른 남자가 벽에 붙은 여인 사진을 향해 침을 뱉고 있었다. 원장이 말했다. “이 남자는 처음 방의 남자가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것이 미친 이유입니다.”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

첫째, 절대 만나지 말자. 첫사랑은 보지 않을 때 신비롭다. 안 보려 하면, 더 보고 싶다. 어찌해야 하나?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자. 그녀와 최고로 좋았던 현장으로 가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설렘과 애틋함에 빠질 수 있다. 감정이 벅차면 상공으로 높이 올라가고, 감정이 누그러지면 현장으로 내려가자.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열렬한 감정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담담해질 때,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자. 그리고 교훈을 간직한 채 현재로 돌아오자.

둘째, 절대 말하지 말자. 첫사랑은 혼자 간직할 때 영원하다. 아내에게 절대 고백하지 말자. 첫사랑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일부러 아내 마음에 불 질러서는 안 된다. 친구에게 절대 자랑하지 말자. 첫사랑은 영웅담이 아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돌고 돌아 아내에게 올 것이다. 동료에게 절대 상담하지 말자. 첫사랑은 상담할 사항이 아니다. 상담하다 보면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고,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말라.”

셋째, 절대 행동하지 말자. 첫사랑은 멀리 있을 때 아름답다. 안 만나려 하면, 더 만나고 싶다. 어찌해야 하나? 눈을 감고, 몸을 이완시키자.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자. 이번엔 그녀와 최고로 나빴던 현장으로 가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분노와 수치심에 떨 수 있다. 감정이 힘들면 상공으로 높이 올라가고, 감정이 누그러지면 현장으로 다시 내려가자.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뜨거운 감정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담담해질 때, 배울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해보자. 그리고 깨달음을 간직한 채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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