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10년 진퇴양난] 기업가치 10조, 하지만 미래가 안 보인다
[쿠팡 10년 진퇴양난] 기업가치 10조, 하지만 미래가 안 보인다
5년새 3조원 적자… 치킨게임 본격화한 국내 이커머스 시장 쿠팡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누적 적자 2조9659억원. 2018년에만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1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쿠팡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게 한 두해는 아니지만, 최근 걱정은 무게감이 다르다. 쿠팡의 기업공개(IPO) 가능성 보도가 나왔지만 이 같은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3월 9일(현지시각) “쿠팡이 2021년 기업공개(IPO)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8년 말 기준 쿠팡의 기업가치가 90억 달러(약 10조4517억원)라며 “내년 상장을 위해 이미 세금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적절한 때가 되면 기업공개를 준비하겠지만, 상장 시기나 지역은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계획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적절한 때’가 되면 언제든 기업공개를 준비하겠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대개 기업공개 소식은 해당 회사에 호재로 작용한다. 회사는 거액의 경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럼에도 쿠팡은 애써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산적한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가 쿠팡의 거품론이다. 쿠팡에 매겨진 10조원의 기업가치가 적절하냐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 7년간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2014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매출은 3484억, 영업손실은 1215억원이었다. 2018년 매출은 4조4227억원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손실도 만만치 않게 증가해 1조970억원을 기록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맨을 포함한 인건비가 상당하고, 물류센터 확충과 상품 직매입 등 서비스 강화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적자의 이유를 설명했다.
재무구조가 아무리 탄탄한 기업이라도 1년에 1조원, 5년 동안 3조원에 가까운 돈을 날리면 멀쩡하게 장사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적자를 메워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쿠팡의 든든한 구원투수였다. 쿠팡이 재정난으로 휘청일 때 두 번이나 거액을 지원했다. 2016년 소프트뱅크가 10억 달러, 2018년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서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우리 돈으로 3조6000억원 달한다. 문제는 손 회장의 투자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 닥쳤다는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투자기금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최근 잇따른 투자 실패로 구설에 올랐다. 그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는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했고, 글로벌 사무실 공유 서비스 업체 위워크는 상장에 실패했다. ‘대박’으로 여겼던 유니콘기업들의 몸값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적자행진을 하는 쿠팡에 대해 투자자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의 대규모 적자를 계속 메워주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런 시점에 쿠팡의 기업공개 관련 보도가 나자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이 글로벌 재무전문가를 잇달아 영입하는 것도 나스닥 상장 준비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쿠팡은 올해 초 HL 로저스 전 밀리콤 부사장을 경영관리총괄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가 쿠팡LLC 이사회 멤버로 선임됐다. 쿠팡LLC는 쿠팡 한국법인 지분을 100% 소유한 쿠팡의 모기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쿠팡의 기업공개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첫번째 이유는 한국 시장 장악 실패다. 3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는데도 쿠팡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완전히 잡지 못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1위 기업은 네이버로 시장점유율은 15.5%다. 쿠팡은 12.65%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네이버가 올해부터 온라인 쇼핑에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어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쿠팡은 2016년 네이버 쇼핑에 상품 데이터베이스(DB) 제공을 중단했다가 2년 만에 재입점한 바 있다. 쿠팡에게 네이버는 경쟁업체이지만,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갑(甲)의 성격을 가진 기업이기도 하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다른 업체와 차별화 하고 있는 서비스로 쿠팡만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거론된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직접 물건을 사들여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직매입·직배송 서비스다. 쿠팡맨으로 불리는 쿠팡 직원이 상품 배송을 담당한다. 이베이코리아나 네이버쇼핑은 플랫폼에 소규모 판매업체를 입점 시켜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플랫폼 사업을 주로 하는데, 쿠팡은 여기에 로켓배송 사업까지 하고 있다.
직매입 서비스는 쿠팡이 대량으로 상품을 확보해 소비자에게 빨리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규모 물류창고 관리와 인건비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쿠팡이 보유한 물류센터는 전국에 20여 곳. 면적으로 계산하면 축구장 193개 크기에 달한다. 쿠팡은 2018년에만 인건비로 약 1조원 가량이 들었다고 밝혔다. 매년 20% 가까이 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인력과 물류창고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손실을 줄이려 서비스를 축소하면 성장에 타격을 받고, 성장을 위해 서비스를 지속하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투자하는 시기”라며 “업계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이나 이익은 나중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 적자를 감수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탓이다. 네이버가 플랫폼 쇼핑 사업을 본격화하고, 신세계 등 전통 유통 강자들도 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온라인 쇼핑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최근 이베이코리아 매각설이 나오면서 일부 이커머스 업체들은 몸값이 높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본격화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엑시트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이익이 줄고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퇴양난 상황에서 쿠팡은 김범석 대표의 말대로 ‘계획된 적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서울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건 회사에 좋은 일이지만, 살아남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쿠팡이 치킨게임의 최종 승자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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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은 3월 9일(현지시각) “쿠팡이 2021년 기업공개(IPO)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8년 말 기준 쿠팡의 기업가치가 90억 달러(약 10조4517억원)라며 “내년 상장을 위해 이미 세금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적절한 때가 되면 기업공개를 준비하겠지만, 상장 시기나 지역은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계획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적절한 때’가 되면 언제든 기업공개를 준비하겠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대개 기업공개 소식은 해당 회사에 호재로 작용한다. 회사는 거액의 경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럼에도 쿠팡은 애써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산적한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외부 투자에만 기댄 쿠팡
재무구조가 아무리 탄탄한 기업이라도 1년에 1조원, 5년 동안 3조원에 가까운 돈을 날리면 멀쩡하게 장사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적자를 메워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쿠팡의 든든한 구원투수였다. 쿠팡이 재정난으로 휘청일 때 두 번이나 거액을 지원했다. 2016년 소프트뱅크가 10억 달러, 2018년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서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우리 돈으로 3조6000억원 달한다. 문제는 손 회장의 투자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 닥쳤다는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투자기금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최근 잇따른 투자 실패로 구설에 올랐다. 그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는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했고, 글로벌 사무실 공유 서비스 업체 위워크는 상장에 실패했다. ‘대박’으로 여겼던 유니콘기업들의 몸값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적자행진을 하는 쿠팡에 대해 투자자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의 대규모 적자를 계속 메워주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런 시점에 쿠팡의 기업공개 관련 보도가 나자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이 글로벌 재무전문가를 잇달아 영입하는 것도 나스닥 상장 준비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쿠팡은 올해 초 HL 로저스 전 밀리콤 부사장을 경영관리총괄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가 쿠팡LLC 이사회 멤버로 선임됐다. 쿠팡LLC는 쿠팡 한국법인 지분을 100% 소유한 쿠팡의 모기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쿠팡의 기업공개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첫번째 이유는 한국 시장 장악 실패다. 3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는데도 쿠팡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완전히 잡지 못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1위 기업은 네이버로 시장점유율은 15.5%다. 쿠팡은 12.65%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네이버가 올해부터 온라인 쇼핑에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어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쿠팡은 2016년 네이버 쇼핑에 상품 데이터베이스(DB) 제공을 중단했다가 2년 만에 재입점한 바 있다. 쿠팡에게 네이버는 경쟁업체이지만,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갑(甲)의 성격을 가진 기업이기도 하다.
양날의 검이 된 ‘로켓배송’
직매입 서비스는 쿠팡이 대량으로 상품을 확보해 소비자에게 빨리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규모 물류창고 관리와 인건비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쿠팡이 보유한 물류센터는 전국에 20여 곳. 면적으로 계산하면 축구장 193개 크기에 달한다. 쿠팡은 2018년에만 인건비로 약 1조원 가량이 들었다고 밝혔다. 매년 20% 가까이 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인력과 물류창고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손실을 줄이려 서비스를 축소하면 성장에 타격을 받고, 성장을 위해 서비스를 지속하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투자하는 시기”라며 “업계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이나 이익은 나중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 적자를 감수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탓이다. 네이버가 플랫폼 쇼핑 사업을 본격화하고, 신세계 등 전통 유통 강자들도 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온라인 쇼핑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최근 이베이코리아 매각설이 나오면서 일부 이커머스 업체들은 몸값이 높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본격화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엑시트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이익이 줄고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퇴양난 상황에서 쿠팡은 김범석 대표의 말대로 ‘계획된 적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서울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건 회사에 좋은 일이지만, 살아남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쿠팡이 치킨게임의 최종 승자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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