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집권 2기 차이잉원의 양안 정책] 대만에 자유를 일깨워준 원동력 ‘중국의 억압’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집권 2기 차이잉원의 양안 정책] 대만에 자유를 일깨워준 원동력 ‘중국의 억압’
홍콩 폭정이 대만국민에게 불신 심어줘… 차이잉원이 재집권하는 반전 선사해 지난 1월 11일 재선에 승리한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5월 20일 취임식을 열고 2기 임기를 시작했다. 대만에선 1996년 총통 직선제를 실시한 뒤 리덩후이(李登輝, 1988~1996년 간선 총통, 1996~2000년 직선제 총통 재임)·천수이볜(陳水扁, 2000~2008년 재임)·마잉주(馬英九, 2008~2016년 재임) 총통이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차이 총통의 2기 시작은 각별하다. 첫째는 1기 임기 중 정치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역전승해 연임에 성공한 것이고, 둘째는 역대 어떤 총통보다 높은 지지율로 2기 임기를 시작한 것이다.
차이 총통의 역전승 과정부터 살펴보자. 2016년 첫 임기를 시작한 차이 총통은 통일방안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과 중국의 경제보복 등의 영향으로 국내 정치에서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월 초만 해도 차이 총통이 재선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위협과 압박, 그리고 홍콩 사태로 대만의 분위기가 반전하면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이 2016년 첫 당선하자마자 과거 국민당 집권 시절에 확립한 ‘92공식(九二共識)’과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며 압력을 가했다. ‘1992년에 양안이 합의한 공동인식’이라는 뜻의 92공식은 국민당 리덩후이 총통 시절인 1992년 10월 28일 민간단체인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양안관계 원칙을 논의해 내놓았다. 당시 양측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지키되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일개중국각자표술·一個中國各自表述), 줄여서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 뒤 2015년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첫 양안 정상회담을 하면서 92공식이 양안관계의 바탕임을 서로 확인했다.
중국은 이 92공식에서 ‘하나의 중국’이란 부분을 강조하며 대만에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일국양제 통일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왔다. 반면 대만은 ‘각자의 표현에 따른다’는 부분에 무게를 뒀다. 양안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에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차이 총통은 2016년 당선 이래 ‘92공식은 여러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현상유지를 강조하면서 ‘중국과 소통’ ‘도발 자제’ ‘정책 투명성’을 양안관계 3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계속 92공식 수용과 일국양제 통일방안 수용 주장을 반복하자 차이 총통은 “92공식은 중화민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9년부터 “대만은 중국이 요구하는 일국양제 통일 방안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자 중국은 대만에 일종의 경제제재를 가하며 압박했다. 본토인의 대만 단체 여행에 이어 2018년 8월부터는 자유여행도 제한했다. 관광을 막아 차이 총통을 압박한 셈이다. 사드 사태 당시 한국에 가했던 압박 수법을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대만에도 적용한 셈이다. 개인의 선택이어야 할 관광을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는 중국의 민낯이다. 중국에 관광의 자유조차 없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조치다. 이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진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타이베이(台北)의 총통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의 압박이 대만에 조금씩 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와중에 차이 총통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참패하면서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다. 집권 민진당은 야당인 국민당에 22개 현·시장 중 15개를 내줬다. 차이 총통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집권 민진당 주석에서 물러났다.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高雄)에서 당선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시장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아 그의 성을 딴 한류(韓流)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일약 대권 주자까지 됐다. 한 시장은 기성 정치인이나 공무원과 달리 소탈하고 친밀한 인상을 주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런 한 시장의 한류에 밀려 차이 총통은 구닥다리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위기에 몰렸다. ‘재선 불가’ 여론 속에 정치적인 힘을 잃어갔다.
이랬던 차이 총통이 비관적인 분위기를 반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대만과 그를 압박하고 비난한 ‘덕분’이었다. 중국은 대등한 관계를 주장하는 차이 총통이 대만에서 정치적으로 밀리고 친중국 성향의 국민당 후보가 인기몰이를 하자 기회라고 보고 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압박이 오히려 대만인에게 모욕감을 주고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대만인의 정체성과 여론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결정타는 2019년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면서 무력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이었다. 이 발언은 대만인의 가슴에 중국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감을 증폭하는 계기가 됐다. 대만인은 오히려 차이 총통을 중심으로 단결했다.
지난해 중국 전투기들이 1991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어 긴급 출동한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며 군사적 긴장을 증폭한 것도 대만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쳤다. 중국과 대만은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암묵적인 경계선으로 삼아 각자의 전투기들이 서로 이 선을 넘지 않아왔다. 대만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30㎞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선에서 대만까지 불과 75㎞의 거리다. 전투기가 음속으로만 날아도 상온의 건조한 공기에서 한 시간에 1225㎞, 1분에 20.4㎞를 비행하므로, 중간선에선 3분대에 대만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중간선 상공에서 마하5 속도의 미사일을 쏘면 대만에 도달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대만 입장에선 종심이 짧은 대만해협에서 미사일과 폭탄을 실은 중국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협이다. 그나마 서로 지키고 있던 중간선까지 넘어 비행한다면 불안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조기 경보를 할 시간이 더욱 줄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전투기들이 이 선을 넘은 것은 대만인에게 도발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빙 둘러싸는 훈련을 부쩍 자주 벌인 것도 대만인의 반중 정서에 불을 질렀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대만인을 겁주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역효과를 나타냈다. 지난해 발생한 홍콩 사태도 대만인의 투표 성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중국이 대만에도 적용하겠다고 주장해온 일국양제의 민낯을 확인한 것도 대만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만인 사이에서 ‘홍콩의 비극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며 불안해하며 중국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홍콩에선 홍콩인도 중국 본토로 인도될 수 있는 도주범 송환조례 추진 문제로 지난해 3월31일 시위가 시작됐다. 홍콩은 중국과 친중 성향의 캐리 람 행정장관에 저항하는 현장이 됐다. 지난해 6월 9일 주최 측 추산 103만 명(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분수령으로 사태는 민주화 운동으로 번졌다. 홍콩인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2019년 11월 25일 치러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71.20%의 높은 투표율에 18개 구의회 중 17개에서 친중파를 밀어내고 범민주파가 장악했다. 구의회 선거는 홍콩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보통 선거로 치르는 유일한 선거다. 홍콩인들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싶다는 의사를 선거를 통해 분명히 효시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대만인들은 홍콩에서는 물론 대만에서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대만과 홍콩의 민주주의 연대는 대만의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대만인들은 홍콩 사태를 지켜보며 행진과 SNS 활동 등으로 자신들이 중국으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확인했던 셈이다. 일국양제를 시행하는 홍콩에서 중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외면하고 힘으로 주민들을 제압하려도 하는 모습을 확인한 대만인들은 총통과 입법원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차이 총통이 한때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한궈위를 누르고 역전승한 힘은 바로 중국에서 나온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 총통의 대중 정책이 반중적이거나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차이 총통은 현실적인 대중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 점이 더 많은 유권자가 안심하고 차이 총통을 선택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본다.
차이 총통은 과거 급진적인 대중 정책을 폈던 민진당의 다른 지도자와 차별화했다. 민진당 출신으론 처음 대만 총통에 오른 천수이볜(陳水扁·69, 2000~2008년 재임)은 급진적인 독립노선을 추구했으며,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민진당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부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중국의 반발을 유발하고 대만 여론을 분열시켰으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차이 총통은 2016년 첫 취임 뒤 독립을 거론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강조해왔다. 92공식과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는 중국의 거듭된 요구 앞에선 모모한 입장을 계속 취했다. 그러다 2019년 1월 중국이 무력사용을 위협하기에 이르자 비로소 칼을 빼 들었다. 일국양제에 대한 단호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에 대해 유연할 때는 유연하게,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대응한 셈이다. 차이 총통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은 요인의 하나다. 차이 총통은 선거 유세 중 중국에 단호한 입장을 계속 밝혔다. 지난 1월 선거 직전 “1월11일(선거일) 우리는 일국양제와 92공식을 선택해 청년의 미래로 도박을 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와 자유를 선택해 계속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일국양제와 민주자유의 대결구도로 만들었다. 과반수 대만 유권자는 후자를 택했다.
차이 총통은 당선 소감에서 “대만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 대만인은 결의를 더 크게 외치리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안 관계와 관련해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평화와 평등, 민주, 대화가 양안 관계를 회복하는 핵심”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양안 국민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 이해와 이익을 추구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대만을 대등하게 존중하고 평화적인 태도로 나서면 양안 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눈 여겨 볼 점은 차이 총통이 2기 임기를 압도적인 지지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어떤 총통도 누리지 못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대만에서 취임 일자를 따서 ‘520’으로 부르는 2기 임기 시작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대만의 신대만 국책싱크탱크(新台灣國策智庫)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1075명을 상대로 조사해 5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74.5%로 나타났다.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선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이 40.5%, 제1야당인 국민당이 9.2%를 기록했다.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의 지지율이 야당인 국민당의 4배를 넘는다. 차이 총통 개인의 지지율은 소속 정당인 민진당보다 34%포인트나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함께 치렀던 10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은 33.93%의 지지율로 113석 가운데 61석을 확보했다. 제1 야당인 국민당은 33.36%의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38석 획득에 그쳤다. 지지율이 비슷한데도 확보한 의석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엇갈린 지역이 많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여론 조사 결과는 그동안 차이 총통과 민진당이 국민당과의 지지율 차이를 더욱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케이블TV인 TVBS의 여론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방송 홈페이지에 따르면 5월 13~15일 9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61%, 부지지율이 25%, 무의견이 14%로 나타났다. 이 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은 3년 전 36%, 지난해 12월 41%였지만 지난 2월 54%, 3월 60%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2기 임기 시작을 앞둔 역대 총통의 지지율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만의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한 천스중(陳時中) 위생복리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지율이다. 천스중은 한국에서 정은경 본부장이 맡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장 격인 중앙유행전염병지휘센터(CECC) 센터장을 겸임하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책임진 인물이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35.3%에서 이번에 93.9%로 그야말로 도약했다. 천 부장의 지지율이 솟아오른 것은 그에 대한 대만인의 높은 신뢰를 잘 보여준다. 이는 차이 총통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5월 20일 2기 취임을 한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평화·대등·민주·대화’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중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타이베이빈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는 “베이징 당국이 일국양제로 대만을 교화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대만해협의 현재의 상태를 깨뜨린다”고 말했다고 연합신문망(聯合新聞網)과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 매체가 보도했다. 일국양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상유지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평화·대등·민주·대화’의 8자 원칙은 당선 소감에서 “평화·평등·민주·대화가 양안 관계를 회복하는 핵심”이라고 했던 것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평등 대신 대등을 내세웠다. 양안 정책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차이 총통은 국민의 확고한지지, 코로나19 방역 성공, 홍콩사태의 여파를 바탕으로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차이 총통의 2기 임기 중 대만은 더욱 독립적이고 단결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할 수 있겠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과 중국 정세의 거대한 변화까지 겹치면서 앞으로 대만해협의 풍랑이 잔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는 이유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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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총통의 역전승 과정부터 살펴보자. 2016년 첫 임기를 시작한 차이 총통은 통일방안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과 중국의 경제보복 등의 영향으로 국내 정치에서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월 초만 해도 차이 총통이 재선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위협과 압박, 그리고 홍콩 사태로 대만의 분위기가 반전하면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이 2016년 첫 당선하자마자 과거 국민당 집권 시절에 확립한 ‘92공식(九二共識)’과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며 압력을 가했다. ‘1992년에 양안이 합의한 공동인식’이라는 뜻의 92공식은 국민당 리덩후이 총통 시절인 1992년 10월 28일 민간단체인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양안관계 원칙을 논의해 내놓았다. 당시 양측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지키되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일개중국각자표술·一個中國各自表述), 줄여서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 뒤 2015년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첫 양안 정상회담을 하면서 92공식이 양안관계의 바탕임을 서로 확인했다.
중국은 이 92공식에서 ‘하나의 중국’이란 부분을 강조하며 대만에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일국양제 통일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왔다. 반면 대만은 ‘각자의 표현에 따른다’는 부분에 무게를 뒀다. 양안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에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차이 총통은 2016년 당선 이래 ‘92공식은 여러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현상유지를 강조하면서 ‘중국과 소통’ ‘도발 자제’ ‘정책 투명성’을 양안관계 3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계속 92공식 수용과 일국양제 통일방안 수용 주장을 반복하자 차이 총통은 “92공식은 중화민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9년부터 “대만은 중국이 요구하는 일국양제 통일 방안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자 중국은 대만에 일종의 경제제재를 가하며 압박했다. 본토인의 대만 단체 여행에 이어 2018년 8월부터는 자유여행도 제한했다. 관광을 막아 차이 총통을 압박한 셈이다. 사드 사태 당시 한국에 가했던 압박 수법을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대만에도 적용한 셈이다. 개인의 선택이어야 할 관광을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는 중국의 민낯이다. 중국에 관광의 자유조차 없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조치다. 이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진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타이베이(台北)의 총통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의 압박이 대만에 조금씩 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중국 경제제재와 민진당 참패로 사면초가에 내몰려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高雄)에서 당선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시장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아 그의 성을 딴 한류(韓流)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일약 대권 주자까지 됐다. 한 시장은 기성 정치인이나 공무원과 달리 소탈하고 친밀한 인상을 주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런 한 시장의 한류에 밀려 차이 총통은 구닥다리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위기에 몰렸다. ‘재선 불가’ 여론 속에 정치적인 힘을 잃어갔다.
이랬던 차이 총통이 비관적인 분위기를 반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대만과 그를 압박하고 비난한 ‘덕분’이었다. 중국은 대등한 관계를 주장하는 차이 총통이 대만에서 정치적으로 밀리고 친중국 성향의 국민당 후보가 인기몰이를 하자 기회라고 보고 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압박이 오히려 대만인에게 모욕감을 주고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대만인의 정체성과 여론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결정타는 2019년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면서 무력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이었다. 이 발언은 대만인의 가슴에 중국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감을 증폭하는 계기가 됐다. 대만인은 오히려 차이 총통을 중심으로 단결했다.
지난해 중국 전투기들이 1991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어 긴급 출동한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며 군사적 긴장을 증폭한 것도 대만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쳤다. 중국과 대만은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암묵적인 경계선으로 삼아 각자의 전투기들이 서로 이 선을 넘지 않아왔다. 대만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30㎞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선에서 대만까지 불과 75㎞의 거리다. 전투기가 음속으로만 날아도 상온의 건조한 공기에서 한 시간에 1225㎞, 1분에 20.4㎞를 비행하므로, 중간선에선 3분대에 대만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중간선 상공에서 마하5 속도의 미사일을 쏘면 대만에 도달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대만 입장에선 종심이 짧은 대만해협에서 미사일과 폭탄을 실은 중국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협이다. 그나마 서로 지키고 있던 중간선까지 넘어 비행한다면 불안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조기 경보를 할 시간이 더욱 줄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전투기들이 이 선을 넘은 것은 대만인에게 도발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빙 둘러싸는 훈련을 부쩍 자주 벌인 것도 대만인의 반중 정서에 불을 질렀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대만인을 겁주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역효과를 나타냈다.
중국에 저항한 홍콩 사태도 대만국민에 경각심 심어줘
홍콩에선 홍콩인도 중국 본토로 인도될 수 있는 도주범 송환조례 추진 문제로 지난해 3월31일 시위가 시작됐다. 홍콩은 중국과 친중 성향의 캐리 람 행정장관에 저항하는 현장이 됐다. 지난해 6월 9일 주최 측 추산 103만 명(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분수령으로 사태는 민주화 운동으로 번졌다. 홍콩인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2019년 11월 25일 치러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71.20%의 높은 투표율에 18개 구의회 중 17개에서 친중파를 밀어내고 범민주파가 장악했다. 구의회 선거는 홍콩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보통 선거로 치르는 유일한 선거다. 홍콩인들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싶다는 의사를 선거를 통해 분명히 효시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대만인들은 홍콩에서는 물론 대만에서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대만과 홍콩의 민주주의 연대는 대만의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대만인들은 홍콩 사태를 지켜보며 행진과 SNS 활동 등으로 자신들이 중국으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확인했던 셈이다. 일국양제를 시행하는 홍콩에서 중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외면하고 힘으로 주민들을 제압하려도 하는 모습을 확인한 대만인들은 총통과 입법원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차이 총통이 한때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한궈위를 누르고 역전승한 힘은 바로 중국에서 나온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 총통의 대중 정책이 반중적이거나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차이 총통은 현실적인 대중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 점이 더 많은 유권자가 안심하고 차이 총통을 선택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본다.
차이 총통은 과거 급진적인 대중 정책을 폈던 민진당의 다른 지도자와 차별화했다. 민진당 출신으론 처음 대만 총통에 오른 천수이볜(陳水扁·69, 2000~2008년 재임)은 급진적인 독립노선을 추구했으며,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민진당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부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중국의 반발을 유발하고 대만 여론을 분열시켰으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차이 총통은 2016년 첫 취임 뒤 독립을 거론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강조해왔다. 92공식과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는 중국의 거듭된 요구 앞에선 모모한 입장을 계속 취했다. 그러다 2019년 1월 중국이 무력사용을 위협하기에 이르자 비로소 칼을 빼 들었다. 일국양제에 대한 단호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에 대해 유연할 때는 유연하게,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대응한 셈이다. 차이 총통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은 요인의 하나다.
일국양제·민주자유 간 대결구도 전략으로 정권 탈환
차이 총통은 당선 소감에서 “대만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 대만인은 결의를 더 크게 외치리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안 관계와 관련해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평화와 평등, 민주, 대화가 양안 관계를 회복하는 핵심”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양안 국민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 이해와 이익을 추구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대만을 대등하게 존중하고 평화적인 태도로 나서면 양안 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눈 여겨 볼 점은 차이 총통이 2기 임기를 압도적인 지지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어떤 총통도 누리지 못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대만에서 취임 일자를 따서 ‘520’으로 부르는 2기 임기 시작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대만의 신대만 국책싱크탱크(新台灣國策智庫)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1075명을 상대로 조사해 5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74.5%로 나타났다.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선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이 40.5%, 제1야당인 국민당이 9.2%를 기록했다.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의 지지율이 야당인 국민당의 4배를 넘는다. 차이 총통 개인의 지지율은 소속 정당인 민진당보다 34%포인트나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함께 치렀던 10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은 33.93%의 지지율로 113석 가운데 61석을 확보했다. 제1 야당인 국민당은 33.36%의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38석 획득에 그쳤다. 지지율이 비슷한데도 확보한 의석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엇갈린 지역이 많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여론 조사 결과는 그동안 차이 총통과 민진당이 국민당과의 지지율 차이를 더욱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케이블TV인 TVBS의 여론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방송 홈페이지에 따르면 5월 13~15일 9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61%, 부지지율이 25%, 무의견이 14%로 나타났다. 이 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은 3년 전 36%, 지난해 12월 41%였지만 지난 2월 54%, 3월 60%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2기 임기 시작을 앞둔 역대 총통의 지지율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도 지지율 상승에 한몫
이런 상황에서 5월 20일 2기 취임을 한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평화·대등·민주·대화’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중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타이베이빈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는 “베이징 당국이 일국양제로 대만을 교화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대만해협의 현재의 상태를 깨뜨린다”고 말했다고 연합신문망(聯合新聞網)과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 매체가 보도했다. 일국양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상유지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평화·대등·민주·대화’의 8자 원칙은 당선 소감에서 “평화·평등·민주·대화가 양안 관계를 회복하는 핵심”이라고 했던 것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평등 대신 대등을 내세웠다. 양안 정책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차이 총통은 국민의 확고한지지, 코로나19 방역 성공, 홍콩사태의 여파를 바탕으로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차이 총통의 2기 임기 중 대만은 더욱 독립적이고 단결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할 수 있겠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과 중국 정세의 거대한 변화까지 겹치면서 앞으로 대만해협의 풍랑이 잔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는 이유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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