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의 호적수(3) 이황과 기대승] 26살 아래의 기대승, 퇴계의 스승이 되다
[김준태의 호적수(3) 이황과 기대승] 26살 아래의 기대승, 퇴계의 스승이 되다
‘불치하문(不恥下問)’ 받든 이황… 깨달음의 스승엔 나이도 지위도 없어 1558년(명종 13년) 10월, 이제 막 과거에 합격하여 초임 관리가 된 기대승은 한양에 머무르고 있던 퇴계 이황의 집을 찾았다. 평소 흠모하던 퇴계 선생께 인사도 드릴 겸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질문이 있어서다. 이황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는데, 다음날 바로 편지를 보내 “어제 그대가 찾아 주어 만나고 싶던 소원을 이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라고 하였을 정도로 기대승과의 만남을 기뻐했다.
이날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기대승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이듬해 1월 5일 이황이 쓴 편지를 보자. “벗들을 통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공의 견해를 전해들으며 내가 말한 것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여기던 차에, 지난번 공의 지적을 받으니 내 생각이 치밀하지 못했음을 더욱 절감하였습니다.” 사단칠정에 대해 이황이 어떤 주장을 했는데, 기대승이 반론했고 그래서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 유학의 3대 논쟁 중 하나로 꼽히는 ‘사단칠정논쟁’의 시작이다. (‘사단’이란 인간의 ‘도덕 감정’으로, 타인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 정의롭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인 ‘수오지심’,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인 ‘시비지심’을 말한다. ‘칠정’은 기쁨·노여움·슬픔·두려움·사랑·미움·욕심 등 인간의 7가지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감정이다. 사단이 전적으로 선한 데 비해, 칠정은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요점만 소개하면 사단과 칠정, 즉 인간의 ‘도덕 감정’과 ‘일반 감정’을 별도로 구분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핵심이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다른 차원으로 설명했는데, 사단은 리(理, 하늘이 만물에 똑같이 부여한 지극히 순수하고 선한 이치)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 존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가 발동한 것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한데 성리학 이론에 따르면 ‘리’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기대승은 이 점을 비판하였고, 사단에 대해서도 인간에게서 표출된 칠정이 절도에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칠정 중에 선한 부분을 가리켜 말한 것일 뿐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황과 기대승은 이 문제를 가지고 무려 8년여에 걸쳐 토론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치열한 논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앞 문단에서 설명한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 각자의 견해를 수정하고 일부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이는 두 사람의 강조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황은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어떻게 하면 악을 제거하고 선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쏟았다. 이를 위해 인간의 선한 행위는 도덕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도덕 감정은 하늘이 부여해준 선한 본성에 근거한다는 논리구조를 제시했다. 인간의 본성이 능동적으로 발현한 ‘도덕 감정’은 기질의 영향을 받는 ‘일반 감정’과는 분명 다르므로, 우리는 이 도덕 감정을 지키고 확충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대승의 말대로라면 선악 여부는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성이 아니라 행위의 적절성에 따라 판정되니, 자칫 도덕이 외형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기대승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이황의 주장은 마음을 이원화할 우려가 있다. ‘도덕 감정’을 발현하는 ‘완벽히 선한 마음’과 ‘일반 감정’을 표출하는 ‘선과 악이 정해지지 않은 마음’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만든다. 이에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동일한 차원에서 설명한 것인데, 이는 그가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일반 감정’을 ‘선한 도덕 감정’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대승은 객관적 도덕규범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제어한다면 누구나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여기서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는 이 글에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두 사람, 그 중에서도 이황이 보여준 태도다. 첫 만남 당시 기대승은 서른 두 살, 이황은 쉰여덟 살이었다. 기대승은 갓 과거에 합격한 신입이었고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 요즘으로 말하면 차관급 국립대 총장이었다. 기대승의 학문과 재주가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대석학으로 손꼽혔던 이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속된 말로 급이 달랐다. 하지만 이황은 기대승을 동등한 논쟁 상대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나눈 100여 편의 편지를 보면 대부분 스승과 제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진솔한 대화처럼 보인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대승은 관직생활의 고달픔(신입관리의 신고식인 ‘면신례’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기도 했다)이나 학문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였고, 이황은 따뜻한 조언과 위로를 해주었다. 때로는 이황이 에둘러 꾸짖고 기대승은 깊이 반성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황이 술을 줄이라고 당부하자 기대승이 이미 끊었다며 변명하는 대목은 정겹기까지 하다.
“호남과 영남이 산천으로 막히고 길도 멀어 배알할 길이 없으니, 경계하는 가르침을 받들 수 없고, 분명치 못한 것을 여쭈어 바로잡을 수 없음이 한스럽습니다. 종이를 펴놓고 편지를 쓰려하니 문득 슬픔이 일어 선생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기대승의 편지글은 당시 그가 얼마나 심적으로 이황을 의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학술논쟁에서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 기대승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자신의 견해를 주장함에 있어서 물러서지 않았다. 이황이 펼친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거침없이 반론하며 몰아붙이기도 했다. 한참 어린 후배가 이런 행동을 보이니,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내거나, 지위나 권위로 억눌렀겠지만 이황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며 기대승의 말에 귀 기울였고, 기대승의 의견을 듣고 본인의 주장을 수정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비단 사단칠정 뿐 아니라 성정(性情), 물격(物格) 등 다른 철학적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황이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던 데는 반대편에 섰던 기대승의 역할이 컸다.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의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은 스승만이 아니다. 때론 나이가 어린 사람일 수도, 지위가 낮은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이황이 기대승의 나이나 경험부족을 이유로, 직급이 자기보다 아래라는 이유로 상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했다면? 본인의 사상적 발전을 가져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했기에 가감 없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정면으로 맞부딪혀 오는 후배를 기꺼이 맞이했기에 보다 강해질 수 있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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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기대승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이듬해 1월 5일 이황이 쓴 편지를 보자. “벗들을 통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공의 견해를 전해들으며 내가 말한 것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여기던 차에, 지난번 공의 지적을 받으니 내 생각이 치밀하지 못했음을 더욱 절감하였습니다.” 사단칠정에 대해 이황이 어떤 주장을 했는데, 기대승이 반론했고 그래서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 유학의 3대 논쟁 중 하나로 꼽히는 ‘사단칠정논쟁’의 시작이다. (‘사단’이란 인간의 ‘도덕 감정’으로, 타인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 정의롭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인 ‘수오지심’,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인 ‘시비지심’을 말한다. ‘칠정’은 기쁨·노여움·슬픔·두려움·사랑·미움·욕심 등 인간의 7가지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감정이다. 사단이 전적으로 선한 데 비해, 칠정은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사단칠정 논쟁’ 치열해도 서로 공대와 존경
이황과 기대승은 이 문제를 가지고 무려 8년여에 걸쳐 토론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치열한 논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앞 문단에서 설명한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 각자의 견해를 수정하고 일부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이는 두 사람의 강조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황은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어떻게 하면 악을 제거하고 선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쏟았다. 이를 위해 인간의 선한 행위는 도덕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도덕 감정은 하늘이 부여해준 선한 본성에 근거한다는 논리구조를 제시했다. 인간의 본성이 능동적으로 발현한 ‘도덕 감정’은 기질의 영향을 받는 ‘일반 감정’과는 분명 다르므로, 우리는 이 도덕 감정을 지키고 확충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대승의 말대로라면 선악 여부는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성이 아니라 행위의 적절성에 따라 판정되니, 자칫 도덕이 외형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기대승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이황의 주장은 마음을 이원화할 우려가 있다. ‘도덕 감정’을 발현하는 ‘완벽히 선한 마음’과 ‘일반 감정’을 표출하는 ‘선과 악이 정해지지 않은 마음’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만든다. 이에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동일한 차원에서 설명한 것인데, 이는 그가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일반 감정’을 ‘선한 도덕 감정’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대승은 객관적 도덕규범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제어한다면 누구나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여기서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는 이 글에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두 사람, 그 중에서도 이황이 보여준 태도다. 첫 만남 당시 기대승은 서른 두 살, 이황은 쉰여덟 살이었다. 기대승은 갓 과거에 합격한 신입이었고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 요즘으로 말하면 차관급 국립대 총장이었다. 기대승의 학문과 재주가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대석학으로 손꼽혔던 이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속된 말로 급이 달랐다. 하지만 이황은 기대승을 동등한 논쟁 상대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나눈 100여 편의 편지를 보면 대부분 스승과 제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진솔한 대화처럼 보인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대승은 관직생활의 고달픔(신입관리의 신고식인 ‘면신례’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기도 했다)이나 학문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였고, 이황은 따뜻한 조언과 위로를 해주었다. 때로는 이황이 에둘러 꾸짖고 기대승은 깊이 반성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황이 술을 줄이라고 당부하자 기대승이 이미 끊었다며 변명하는 대목은 정겹기까지 하다.
“호남과 영남이 산천으로 막히고 길도 멀어 배알할 길이 없으니, 경계하는 가르침을 받들 수 없고, 분명치 못한 것을 여쭈어 바로잡을 수 없음이 한스럽습니다. 종이를 펴놓고 편지를 쓰려하니 문득 슬픔이 일어 선생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기대승의 편지글은 당시 그가 얼마나 심적으로 이황을 의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기대승과 논쟁 통해 사상적 발전 이룬 이황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의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은 스승만이 아니다. 때론 나이가 어린 사람일 수도, 지위가 낮은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이황이 기대승의 나이나 경험부족을 이유로, 직급이 자기보다 아래라는 이유로 상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했다면? 본인의 사상적 발전을 가져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했기에 가감 없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정면으로 맞부딪혀 오는 후배를 기꺼이 맞이했기에 보다 강해질 수 있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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