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41년 만에 미국이 대만을 찾은 이유] 미국·중국·대만 삼각관계 끝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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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국 폭정 공산당으로 규정… 옛 우방국들과 반중 연대 강화 미국의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9~13일 미수교국인 대만을 방문한 것은 미국-대만 관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를 찾은 미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단교 뒤 미국 각료급 인사의 대만 방문은 6년 전인 2014년 지나 매카시 환경보호청장이 마지막이었다.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중 무역 전쟁과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이에 따른 휴스턴과 청두의 총영사관 폐쇄 등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눈에 띄는 일정을 보냈다. 의례적인 방문 수준을 넘어선다. 표면적인 이유인 방역 협력은 그 일부일 뿐이다. 8월 9일 특별기 편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한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상당히 바쁜 일정을 보냈다. 10일 오전 대만에서 사실상 미국 공관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기구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제임스 모리아티 대표 등과 함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만나 회담했다. 미수교국인 대만의 최고지도자와 거침없는 만남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천젠런(陳建仁) 전 부총통, 라이칭더(赖淸德) 전 행정원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2일 에이자 장관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가 마련된 타이베이 빈관을 조문하며 대만에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리 전 총통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터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한 에이자 장관은 중요한 발언을 쏟아냈다. 에이자 장관은 분향소에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의례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구다.
국민당 소속 리 총통은 1988~2000년 대만 총통을 지내면서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민당 독재를 종식해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서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했다. 그는 종전 뒤 미국에 유학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전공은 농업경제학이다. 정치에 뛰어든 그는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을 맡았다. 본성인은 1945년 이전에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한인을 가리킨다.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빼앗기면서 대만으로 이주한 국민당계 한인과는 정체성이 다르다. 리 전 총통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는 한편, 베이징 당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면서 ‘양국론’을 주장하며 대등한 양안 관계를 추구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만인으로부터는 ‘국부’로 존경 받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대독(臺獨•대만독립) 세력의 수괴’로 불렸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리 전 총통에 대한 찬사를 계속했다. 10일 차이 총통을 만났을 때는 “리 전 총통은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20세기 전 세계 민주주의 조류의 중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11일 대만국립대학 강연에서는 리 전 통총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주주의자인 리 전 총통 추모를 내세워 중국공산당을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으로 몰아간 셈이다.
에이자 장관의 방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2일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와 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CAP)가 공동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대만이 자유·민주의 튼튼한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보위는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의 보루’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같은 맥락에서 홍콩인에 대한 지원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고 일국양제 체제 분열, 정권 전복, 테러조직 결성 및 활동을 예방·저지·처벌한다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자 대만은 홍콩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공개해왔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대만의 옵서버 자격 참가를 반대해 올해 화상으로 열린 총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에이자 장관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두고 중국을 비난하고 대만을 감싼 셈이다. 인구 2380만 명의 대만은 중국 우한(武漢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즉시 문을 걸어 닫고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중단했으며 철저한 방역으로 확산을 저지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확진자 481명에 사망자 7명의 경미한 피해에 그쳤다. 그 결과 대만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국가가 평가된다. 하지만 중국의 방해로 올해 세계보건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안보·경제·보건 분야에서 친구이자 파트너인 대만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올해 1월 재선)하고 그 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 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그 해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만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
육군 8만8000명, 해군 4만 명, 공군 3만5000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대만은 최신 무기체계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의 견제로 전 세계에서 무기를 들여올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 밖에 없는데 그나마 최신형 무기체계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육군의 경우 미군이 쓰는 M1A1 에이브럼스 전차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한 단계 아래인 M60A3 전차 200대 구매에 만족해야 했다. 565대의 주력전차(MBT)를 보유한 대만 기갑 전력의 핵심은 구형인 M-48 전차다. 479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대만 공군의 핵심은 143대의 F-16 A/B형이다. 개량된 C/D형은 미국이 팔지 않아 획득하지 못했다. 87대의 F-5E/F도 보유하고 있지만 퇴역 시기가 한참 넘은 구형 기종이다. 그 외에 55대의 프랑스제 미라지 2000을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중국의 눈치를 봤는지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을 넘겼다. 이런 사정의 대만에 미국이 F-16V를 핀매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대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역협상 등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카드인지도 알 수 없다.
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돼 왔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 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절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독특한 점은 8·17 코뮤니케 직전에 대만과 ‘6개 보장’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개 보장은 대(對)대만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수출시 중국과 사전협상하지 않으며, 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979년의 대만관계법과 1982년의 6개 보장은 미국과 대만 관계의 기본 원칙이 돼왔다.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 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
지난해 3월 19일 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대표는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 대만이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사무소’의 고위 관리가 참석하는 연례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대화의 명칭이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거버넌스 협의(Indo-Pacific Democratic Governance Consultations)라는 사실이다. 이 포럼의 목적에 대해 크리스텐스 대표는 “미국과 대만이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구해 오늘날 거버넌스 도전을 받는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촉진하는 데 미국과 대만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라고 말했다.
1년 전의 이 발언은 이번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열쇠일 것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반비례해 계속 변화 중이다. 그 궁극적인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눈에 띄는 일정을 보냈다. 의례적인 방문 수준을 넘어선다. 표면적인 이유인 방역 협력은 그 일부일 뿐이다. 8월 9일 특별기 편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한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상당히 바쁜 일정을 보냈다. 10일 오전 대만에서 사실상 미국 공관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기구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제임스 모리아티 대표 등과 함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만나 회담했다. 미수교국인 대만의 최고지도자와 거침없는 만남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천젠런(陳建仁) 전 부총통, 라이칭더(赖淸德) 전 행정원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2일 에이자 장관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가 마련된 타이베이 빈관을 조문하며 대만에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리 전 총통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터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한 에이자 장관은 중요한 발언을 쏟아냈다. 에이자 장관은 분향소에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의례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구다.
국민당 소속 리 총통은 1988~2000년 대만 총통을 지내면서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민당 독재를 종식해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서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했다. 그는 종전 뒤 미국에 유학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전공은 농업경제학이다.
美 복지부장관 대만 방문, 중국에 맞서 연대 암시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리 전 총통에 대한 찬사를 계속했다. 10일 차이 총통을 만났을 때는 “리 전 총통은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20세기 전 세계 민주주의 조류의 중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11일 대만국립대학 강연에서는 리 전 통총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주주의자인 리 전 총통 추모를 내세워 중국공산당을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으로 몰아간 셈이다.
에이자 장관의 방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2일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와 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CAP)가 공동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대만이 자유·민주의 튼튼한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보위는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의 보루’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같은 맥락에서 홍콩인에 대한 지원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고 일국양제 체제 분열, 정권 전복, 테러조직 결성 및 활동을 예방·저지·처벌한다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자 대만은 홍콩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공개해왔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대만의 옵서버 자격 참가를 반대해 올해 화상으로 열린 총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에이자 장관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두고 중국을 비난하고 대만을 감싼 셈이다.
대만 총통 전투기 구매로 美 대만여행법 통과에 화답
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올해 1월 재선)하고 그 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 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그 해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만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
육군 8만8000명, 해군 4만 명, 공군 3만5000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대만은 최신 무기체계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의 견제로 전 세계에서 무기를 들여올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 밖에 없는데 그나마 최신형 무기체계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육군의 경우 미군이 쓰는 M1A1 에이브럼스 전차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한 단계 아래인 M60A3 전차 200대 구매에 만족해야 했다. 565대의 주력전차(MBT)를 보유한 대만 기갑 전력의 핵심은 구형인 M-48 전차다. 479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대만 공군의 핵심은 143대의 F-16 A/B형이다. 개량된 C/D형은 미국이 팔지 않아 획득하지 못했다. 87대의 F-5E/F도 보유하고 있지만 퇴역 시기가 한참 넘은 구형 기종이다. 그 외에 55대의 프랑스제 미라지 2000을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중국의 눈치를 봤는지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을 넘겼다.
미국·대만, 앞에선 단교 뒤에선 우방국 군사동맹 유지
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돼 왔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 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절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대만관계법·6개보장으로 중국 주도 양안 통일 견제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 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
지난해 3월 19일 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대표는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 대만이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사무소’의 고위 관리가 참석하는 연례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대화의 명칭이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거버넌스 협의(Indo-Pacific Democratic Governance Consultations)라는 사실이다. 이 포럼의 목적에 대해 크리스텐스 대표는 “미국과 대만이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구해 오늘날 거버넌스 도전을 받는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촉진하는 데 미국과 대만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라고 말했다.
1년 전의 이 발언은 이번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열쇠일 것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반비례해 계속 변화 중이다. 그 궁극적인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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