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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세 - 한국 기업에 옮겨붙다] ‘구글세’ 불똥이 ‘삼성세’ ‘현대세’로 확산

[디지털세 - 한국 기업에 옮겨붙다] ‘구글세’ 불똥이 ‘삼성세’ ‘현대세’로 확산

스마트폰·가전·자동차 등 제조분야 다국적 기업도 타깃… 정부, 전담부서 설치 추진
한 시민운동가가 ‘디지털세’ 도입을 주장하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스크와 복장을 입고 유럽연합 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세금으로 불리는 ‘디지털세(Digital Tax)’가 촉발한 국내 주요 대기업의 세 부담 증가 우려가 현실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구글 등 디지털서비스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같은 일반 재화·서비스 판매 기업에도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정하면서다. 여기에 일부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한 세수 부족을 채우기 위한 자체 디지털세인 ‘디지털 서비스세’를 잇달아 도입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세 부담 증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11월 5일 기획재정부 등 정부에 따르면 OECD와 G20 등 137개국이 참여하는 디지털세 포괄적 이행체계(IF)는 10월 14일 스마트폰·가전·자동차 등 제조 분야 다국적 기업에도 디지털세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디지털세 장기 대책 청사진’을 승인했다. 디지털세는 당초 구글·페이스북 등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이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현지에 고정 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법인세를 내지 않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두됐다.
 “구글뿐 아니라 삼성·현대에도 과세”
디지털세 장기대책 청사진은 지난해 11월 OECD가 G20과 IF를 구성해 디지털세에 대한 공청회를 시작한 후 1년여 동안 진행한 디지털세 논의의 중간보고서 성격을 갖는다. 다만 OECD는 디지털세 장기대책 청사진을 축으로 구체적인 세율 계산법 등을 추가해 최종합의안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OECD와 G20 IF는 청사진을 내면서 “2021년 1월 공청회를 거처 기업 등 민간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후 2021년 중반 최종방안 합의를 내겠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수출 기업들이 모두 스마트폰·가전·자동차 등을 판매하는 일반 재화·서비스 판매기업으로, 디지털세의 새로운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무형(無形)의 ICT 서비스를 하는 구글 같은 기업에 대한 세금이라는 뜻에서 ‘구글세’, ‘애플세’로 불렸는데 이제 ‘삼성세’ ‘현대세’가 되게 됐다”면서 “해외 사업 부담이 커질까 우려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디지털세 장기대책 청사진에 포함된 통합접근법이 국내 대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통합접근법은 ICT 서비스기업뿐 아니라 제조기업들도 온라인을 통해 마케팅을 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므로, 디지털세 부과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는 논리다. 삼성전자 등 한국 대기업들 다수가 부과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해외법인이 있는 국가에 법인세만 납부하면 되지만 통합접근법에 근거할 경우 매출이 발생한 모든 국가에 디지털세를 내야 한다.

또 OECD는 통합접근법에서의 이익을 유형 자산을 통해 얻는 ‘통상이익’과 무형 자산으로 얻는 ‘초과이익’ 두 가지로 분류하고 ‘글로벌 최저세율’을 도입하기로 했다. 디지털세가 부과되는 구간을 초과이익으로 해 초과이익을 해당 국가 법인세율에 따라 정하고, 글로벌 최저세율로 조세회피를 막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베트남 자회사가 베트남에 낸 세금 실효세율이 글로벌 최저세율보다 낮으면 한국 정부가 미달 부분에 대해 추가로 과세하도록 정했다.

OECD가 디지털세 부과 범위를 ICT 기반 디지털서비스 기업에서 제조 분야 다국적 기업으로 넓힌 데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 미국은 프랑스가 지난해 7월 디지털세를 도입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행보에 나설 경우 자국 ICT 기업들에 그 피해가 집중될 것을 우려했다.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불리는 초대형 ICT 기업들이 미국에 막대한 세수를 안겨주고 있는 속에서 이들만을 향한 세 부담 확대는 미국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지난해 말 미국 정부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제조 기업에도 디지털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자국 제조업의 피해를 우려한 나라들 사이에서 디지털세 도입론이 다소 누그러지면서 미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거나, 디지털세가 도입되더라도 미국이 생각하는 적정선에서 매듭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OECD의 디지털세 논의 초안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세 장기대책 청사진에서는 디지털세를 더 이상 ‘구글세’로 부를 수 없게 됐다.

이런 가운데 개별 국가들이 자체적 디지털세 개념인 ‘디지털서비스세’ 도입하면서 국내 기업들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서비스세는 OECD 디지털세 합의안이 마련될 때까지 각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마련한 디지털세를 일컫는다. 실제 인도는 올해 4월부터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해 사업장이 없는 글로벌 기업의 광고(6%) 및 모든 전자상거래(2%)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태국, 베트남 등도 디지털서비스세 또는 유사한 원천징수세를 도입했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OECD의 국제공동 디지털세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일반 재화·서비스 판매 기업 등에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고, 최근 우리 기업이 다수 진출한 아시아국들에서 빠르게 도입하고 있는 독자적 디지털세로 한국 기업의 활동 제약이 커졌다”고 말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세무전문대학원)는 “한국처럼 수출과 해외 투자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 국가에 글로벌 과세는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전담조직 꾸리고 국내 과세 방안 마련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부랴부랴 디지털세 전담조직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 세제실 내에 ‘디지털세 대응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 IF 운영위원회 및 실무회의에 참석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쟁점 파악 및 논리 보강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TF는 서기관급(4급) 팀장 및 실무 인력(5급) 2명이 전부였다”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이뤄졌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등이 한국에서 거둔 매출에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합리적인 세수입을 확보하느냐 또한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하느냐 못잖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익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국내 기업은 세금을 덜 내고, 외국 기업엔 우리가 더 과세할 수 있도록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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