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중국 공산당, 홍콩 점령 야욕 드러내다] “덩샤오핑이 약속한 일국양제, 시진핑은 지켜라”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중국 공산당, 홍콩 점령 야욕 드러내다] “덩샤오핑이 약속한 일국양제, 시진핑은 지켜라”
일당독재·충성서약 세뇌하는 중국 공산당에 신음하는 ‘무역·금융 자유항’ 홍콩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12월 2일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3명의 청년이 불법집회 선동 등의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면서 홍콩의 미래에 드리운 먹구름이 더욱 어두워졌다. 조슈아 웡(黃之鋒·24), 아그네스 차우(周庭·23), 이반 램(林朗彦·26)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고 미국과 영국, 한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에 연대를 호소해왔다.
웡은 2012년 중·고교 학생운동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결성해 중국공산당에 충성을 강조하는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는 홍콩 당국의 시도를 저지했다. 2014년에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79일간의 대규모 시위인 ‘우산 혁명’을 이끌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발발했을 당시는 수감 중이었으나 곧 석방돼 시위를 이끌었다. 아그네스 차우는 2012년 웡과 함께 학민사조를 만들었으며 2014년 우산 혁명도 함께해 학민여신(學民女神)으로 불린다. 램도 웡과 활동을 함께 해왔으며 정당 활동도 병행했다.
이들이 해외에 홍콩 민주화 지원을 호소한 행동은 지난 7월 1일부터 홍콩에서 시행에 들어간 국가안전법(홍콩특별 행정구 국가안전수호법)에 따라 종신형까지 가능해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안전법은 홍콩의 입법기관인 입법회가 아닌 중국의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서 제정해 홍콩의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 부속서에 삽입했다.
12월 3일에는 홍콩의 반중(反中) 매체인 빈과일보( 果日報)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73)가 사기혐의로 수감됐다. 빈과일보에 따르면 홍콩 법원이 보석을 불허하면서 라이는 다음 공판이 열리는 내년 4월 16일까지 수감된다. 라이는 현재는 사기혐의를 적용 받고 있지만 국가안전법 위한 혐의로 기소될 경우 최고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라이는 해외에 홍콩 민주화 운동을 호소했는데 이는 국가안전법 규정 중 외세와 결탁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는 지난 8월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홍콩 정부는 민주 인사는 물론 입법회의 범민주계 의원에 대한 압박도 이미 병행하고 있다. 11월 11일 홍콩 정부는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입법회(홍콩의회) 의원인 앨빈 융, 쿽카키, 데니스 궉, 케네스 렁 등 4명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관보에 게재했다. 홍콩의 범민주계 입법회 의원들은 전인대의 결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이미 동반 사퇴를 결의해 놓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홍콩 입법회에서 친중파의 목소리만 남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인대 상무위는 홍콩의 입법회 의원이 홍콩 독립 지원,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치권 거부, 홍콩 내정에 대한 외세의 개입 요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 등을 하면 의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게 홍콩 정부의 설명이다.
전인대 상무위는 이 결의안에서 일국양제의 순조로운 이행과 홍콩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입법회 의원을 포함한 모든 홍콩 공직자에게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 격) 준수와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했다. 지난해 16명의 범민주계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관리와 의원들에게 ‘홍콩인권법(홍콩 인권·민주주의 법)’ 제정을 촉구했는데, 홍콩 선관위는 이들에게 충성 질의서를 보내 서약을 압박했다. 중국과 홍콩 당국의 조치 중에 가장 노골적인 것은 입법회 선거 연기다. 홍콩은 지난 9월 6일 제7대 입법회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선거를 1년 뒤로 연기한다고 7월 31일 전격 발표했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현재의 제6대 홍콩 입법회 의원들의 임기를 1년 뒤 선출되는 제7대 입법회 임기가 시작될 때까지 연장하는 ‘초법적인’ 조치를 8월 11일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홍콩인들의 반중 민심이 자리 잡고 있다. 홍콩 입법회의 정원은 70명이다. 선출 방식은 직선과 간선이 섞여있다. 35명만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나머지 35명 중 30명은 기업인·직공조합원 등 38개 직능조합에서 대표를 뽑아 보낸다. 5명은 구의원들이 뽑는다. 직능대표는 대부분 친중파다. 중국의 정책이나 배려에 따라 개인의 이익이 오가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직선 의원들이다. 현재 직선 의원 35명의 성향을 보면 친중파 18명, 범민주파 16명, 중도 1명이다. 현재로는 친중파가 앞섰지만 새 선거를 하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범죄인을 중국에 송환할 수 있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을 휩쓸었던 2019년에 열린 구의원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6번째의 구의회 선거였다. 2019년 11월 24일 열린 이 선거에서 범민주파는 말 그대로 압승해 전체 의석의 85.8%를 차지했다. 홍콩의 민심이다. 범민주파는 452명을 뽑는 구의회 선거에서 친중파인 건제파를 누르고 18개구의 구의회를 사실상 모두 장악했다. 이로써 이전까지 친중파 327석, 범민주파 118석이던 구 의회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 때문에 입법회 선거가 지난 9월 예정대로 실시했다면 직선 의원 35명을 석권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구의원이 뽑는 5석까지 보태면 전체 70석 중 40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직능대표 의원 30명을 전원 친중적인 성격으로 채워도 범민주파가 입법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중국과 홍통 당국은 이런 상황에서 7대 입법회 선거를 연기해 현재 친중파가 더 많은 6대 입법회를 1년간 유지하는 편법을 택했다. 입법회 선거 자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게 뻔한 데다 이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입법회를 장악할 경우 중국과 홍콩 당국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입법회 선거를 모두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홍콩에선 구의회 선거만 유일하게 모두 직선이다. 직선제 선거에서 홍콩 주민의 반중 민심이 확인되면 중국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믈론 중국 공산당은 직선제 의원을 범민주파가 모두 차지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려되는 것이 친중파 ‘동원 선거’다. 홍콩 영주권을 갖고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친중파 후보를 밀기 위해 전세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홍콩으로 이동한 것은 지난 선거에서도 목격됐다. 지난해 구의원 선거에선 4800건 이상의 부정선거 사례가 고발됐다. 고령화로 홍콩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61세 이상의 고령자를 상대로 관권 선거를 벌이는 방법도 우려된다. 지난해 구의회 선거에선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투표소로 이동할 때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 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가거나 손에 적고 가는 사례가 여럿 차례 고발됐다. 가짜 유권자 양산도 걱정거리다. 지난 선거까지는 선거구별 유권자 명부가 언론 등에 공개됐지만 이번 선거에는 경찰 가족 등의 신상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이를 비공개로 돌렸다. 그 결과 ‘가짜 유권자’가 여럿 고발됐다. 고발이 모두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중국이 호락호락 홍콩 입법회를 범민주파에 넘겨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이 등장할지 모른다.
둘째는 현재 간선제인 홍콩 행정장관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 정부의 수반이다. 행정장관 선출은 홍콩 헌법 격인 기본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간접·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형식적으로 임명한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거부한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불똥이 본토로 튈 가능성도 크다. 행정장관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입법회 의원, 구의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해 베이징에 보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대표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사람 등 1200명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직능대표는 친중국계가 대부분이다. 민심이 반영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만일 범민주파가 홍콩 입법회를 장악하면 그 첫 목표는 입법회와 행정장관 직선제일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를 막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홍콩에선 2014년 7월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당시 주최 측은 51만명, 경찰추산으론 9만8600명이 참가했다고 각각 주장했다. 바로 다음 달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실시 예정이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에는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퇴보했다.
중국은 추천위원회라는 강력한 거름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두어 명만 입후보할 수 있게 제한했다. 거대한 선거장벽이다. 중국의 지지가 없으면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선거 만리장성인 셈이다. 게다가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 인사만 행정 장관이 돼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친중파가 아니면 아예 행정장관 후보조차 나서지 못하게 대못질을 한 셈이다. 홍콩 시민은 반발했다. 행정장관 후보 등록조차 제한해 주민 의사가 반영되는 게 더욱 힘들게 됐다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중국은 선거제도에 관한 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홍콩 주민들은 이런 중국 당국을 상대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홍콩 시위는 자신의 지도자를 자신의 손으로 뽑지 못하는 홍콩 시민들의 불만이 담겨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와 ‘향인치향(香人治香 홍콩인의 홍콩 통치)’, ‘고도자치(高度自治 높은 수준의 자치)’의 3대 원칙을 강조해왔다. 새삼스러운 요구도 아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중국이 했던 그 약속이다. 홍콩 주민들은 중국이 반환 당시의 이런 약속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은 일국양제의 향인치향과 고도자치를 입법회 의원과 행정장관을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민주적 선거 방식은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공산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행정 책임자로 내세우는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방식을 고수하는 데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권위가 달려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홍콩의 미래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이유다.
절충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1956년 소련은 민주화를 진행하던 헝가리를 침공해 주민들의 의지를 꺾었다. 하지만 헝가리는 ‘굴라쉬 사회주의(goulash socialism)’로 불리는 느슨한 경제·사회 통제 체제를 고안해 주민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헝가리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공산 체제를 청산한 나라의 하나가 됐다. 홍콩 주민들에게 헝가리는 좋은 모델에 될 수 있을까. 홍콩의 민주화와 자유가 중국의 압박에 질식할지, 이미 이를 경험한 홍콩 주민들이 용기와 지혜로 이를 극복할지 전 세계가 주시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웡은 2012년 중·고교 학생운동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결성해 중국공산당에 충성을 강조하는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는 홍콩 당국의 시도를 저지했다. 2014년에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79일간의 대규모 시위인 ‘우산 혁명’을 이끌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발발했을 당시는 수감 중이었으나 곧 석방돼 시위를 이끌었다. 아그네스 차우는 2012년 웡과 함께 학민사조를 만들었으며 2014년 우산 혁명도 함께해 학민여신(學民女神)으로 불린다. 램도 웡과 활동을 함께 해왔으며 정당 활동도 병행했다.
이들이 해외에 홍콩 민주화 지원을 호소한 행동은 지난 7월 1일부터 홍콩에서 시행에 들어간 국가안전법(홍콩특별 행정구 국가안전수호법)에 따라 종신형까지 가능해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안전법은 홍콩의 입법기관인 입법회가 아닌 중국의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서 제정해 홍콩의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 부속서에 삽입했다.
12월 3일에는 홍콩의 반중(反中) 매체인 빈과일보( 果日報)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73)가 사기혐의로 수감됐다. 빈과일보에 따르면 홍콩 법원이 보석을 불허하면서 라이는 다음 공판이 열리는 내년 4월 16일까지 수감된다. 라이는 현재는 사기혐의를 적용 받고 있지만 국가안전법 위한 혐의로 기소될 경우 최고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라이는 해외에 홍콩 민주화 운동을 호소했는데 이는 국가안전법 규정 중 외세와 결탁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는 지난 8월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홍콩 정부는 민주 인사는 물론 입법회의 범민주계 의원에 대한 압박도 이미 병행하고 있다. 11월 11일 홍콩 정부는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입법회(홍콩의회) 의원인 앨빈 융, 쿽카키, 데니스 궉, 케네스 렁 등 4명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관보에 게재했다. 홍콩의 범민주계 입법회 의원들은 전인대의 결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이미 동반 사퇴를 결의해 놓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홍콩 입법회에서 친중파의 목소리만 남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인대 상무위는 홍콩의 입법회 의원이 홍콩 독립 지원,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치권 거부, 홍콩 내정에 대한 외세의 개입 요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 등을 하면 의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게 홍콩 정부의 설명이다.
전인대 상무위는 이 결의안에서 일국양제의 순조로운 이행과 홍콩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입법회 의원을 포함한 모든 홍콩 공직자에게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 격) 준수와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했다. 지난해 16명의 범민주계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관리와 의원들에게 ‘홍콩인권법(홍콩 인권·민주주의 법)’ 제정을 촉구했는데, 홍콩 선관위는 이들에게 충성 질의서를 보내 서약을 압박했다.
중국 공산당 손아귀에 들어간 홍콩 정부
그 배경에는 홍콩인들의 반중 민심이 자리 잡고 있다. 홍콩 입법회의 정원은 70명이다. 선출 방식은 직선과 간선이 섞여있다. 35명만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나머지 35명 중 30명은 기업인·직공조합원 등 38개 직능조합에서 대표를 뽑아 보낸다. 5명은 구의원들이 뽑는다. 직능대표는 대부분 친중파다. 중국의 정책이나 배려에 따라 개인의 이익이 오가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직선 의원들이다. 현재 직선 의원 35명의 성향을 보면 친중파 18명, 범민주파 16명, 중도 1명이다. 현재로는 친중파가 앞섰지만 새 선거를 하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범죄인을 중국에 송환할 수 있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을 휩쓸었던 2019년에 열린 구의원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6번째의 구의회 선거였다. 2019년 11월 24일 열린 이 선거에서 범민주파는 말 그대로 압승해 전체 의석의 85.8%를 차지했다. 홍콩의 민심이다. 범민주파는 452명을 뽑는 구의회 선거에서 친중파인 건제파를 누르고 18개구의 구의회를 사실상 모두 장악했다. 이로써 이전까지 친중파 327석, 범민주파 118석이던 구 의회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친중파 앞세워 홍콩 입법기관 장악 모략
중국과 홍통 당국은 이런 상황에서 7대 입법회 선거를 연기해 현재 친중파가 더 많은 6대 입법회를 1년간 유지하는 편법을 택했다. 입법회 선거 자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게 뻔한 데다 이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입법회를 장악할 경우 중국과 홍콩 당국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입법회 선거를 모두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홍콩에선 구의회 선거만 유일하게 모두 직선이다. 직선제 선거에서 홍콩 주민의 반중 민심이 확인되면 중국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믈론 중국 공산당은 직선제 의원을 범민주파가 모두 차지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려되는 것이 친중파 ‘동원 선거’다. 홍콩 영주권을 갖고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친중파 후보를 밀기 위해 전세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홍콩으로 이동한 것은 지난 선거에서도 목격됐다. 지난해 구의원 선거에선 4800건 이상의 부정선거 사례가 고발됐다. 고령화로 홍콩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61세 이상의 고령자를 상대로 관권 선거를 벌이는 방법도 우려된다. 지난해 구의회 선거에선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투표소로 이동할 때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 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가거나 손에 적고 가는 사례가 여럿 차례 고발됐다.
민심 반영 시스템 원천 차단에 나선 중국
둘째는 현재 간선제인 홍콩 행정장관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 정부의 수반이다. 행정장관 선출은 홍콩 헌법 격인 기본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간접·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형식적으로 임명한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거부한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불똥이 본토로 튈 가능성도 크다. 행정장관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입법회 의원, 구의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해 베이징에 보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대표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사람 등 1200명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직능대표는 친중국계가 대부분이다. 민심이 반영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만일 범민주파가 홍콩 입법회를 장악하면 그 첫 목표는 입법회와 행정장관 직선제일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를 막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홍콩에선 2014년 7월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당시 주최 측은 51만명, 경찰추산으론 9만8600명이 참가했다고 각각 주장했다. 바로 다음 달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실시 예정이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에는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퇴보했다.
중국은 추천위원회라는 강력한 거름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두어 명만 입후보할 수 있게 제한했다. 거대한 선거장벽이다. 중국의 지지가 없으면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선거 만리장성인 셈이다. 게다가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 인사만 행정 장관이 돼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친중파가 아니면 아예 행정장관 후보조차 나서지 못하게 대못질을 한 셈이다. 홍콩 시민은 반발했다. 행정장관 후보 등록조차 제한해 주민 의사가 반영되는 게 더욱 힘들게 됐다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중국은 선거제도에 관한 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홍콩 주민들은 이런 중국 당국을 상대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홍콩 직선 의지 짓누른 공산당 중앙 통치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은 일국양제의 향인치향과 고도자치를 입법회 의원과 행정장관을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민주적 선거 방식은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공산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행정 책임자로 내세우는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방식을 고수하는 데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권위가 달려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홍콩의 미래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이유다.
절충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1956년 소련은 민주화를 진행하던 헝가리를 침공해 주민들의 의지를 꺾었다. 하지만 헝가리는 ‘굴라쉬 사회주의(goulash socialism)’로 불리는 느슨한 경제·사회 통제 체제를 고안해 주민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헝가리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공산 체제를 청산한 나라의 하나가 됐다. 홍콩 주민들에게 헝가리는 좋은 모델에 될 수 있을까. 홍콩의 민주화와 자유가 중국의 압박에 질식할지, 이미 이를 경험한 홍콩 주민들이 용기와 지혜로 이를 극복할지 전 세계가 주시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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