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영 팝콘 심리학] ‘저지른’ 행동이 당신을 지배한다
[장근영 팝콘 심리학] ‘저지른’ 행동이 당신을 지배한다
잘못된 신념은 전파되며 강화… 제3자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 '더 헌트(The Hunt)’는 덴마크 영화감독 토마스 빈터버그의 2012년 작품이다.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의 악당 르쉬프로 잘 알려진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인공 루카스로 출연한다. 영화는 마을 토박이이자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가 우연한 계기로 아동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쓰면서 겪게 되는 집단적인 폭력, 그리고 그가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다. 이를 통해 한번 찍혀버린 낙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특히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전달한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원래 좋은 영화는 여백이 많고 관객 각자가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뻔하디 뻔한 교훈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기 전에 100까지 세어라”,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등 격언들은 모두 생각은 많이 하더라도,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길 때는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남들에게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올가미 역할을 한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나의 생각이 끌려가는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옳은 것 같지만 틀린 명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시작인 아이의 증언은 사실 둘이었다. 루카스가 자기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언. 한 아이가 두 이야기를 했음에도 사람들은 첫 번째 이야기만 믿는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상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건을 조사할 때는 아이의 증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세심하게 검증해야 한다. 비슷한 일이 실제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상담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자기가 어릴 적에 부모나 친지에게 성추행이나 학대를 당했다고 기억했던 것이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고소 고발과 수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조사결과 대부분의 경우 환자들의 기억은 사실이 아니었다.
집에 지하실이 없는데 지하실이 있다고 기억하는 이 영화 속 아이처럼. 이후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oftus)라는 심리학자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실험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암시에 의해 창조되는지를 보여줬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피험자들에게 “당신 어릴 적에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한 거였다. 그러자 실제로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본 적 없던 피험자들이 자기가 쇼핑몰에서 엄마를 놓치고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어린아이들이 오죽하랴.
두 번째 실수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행동부터 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일단 루카스를 범죄자로 판단 내린 마을 사람들은 경찰 조사 결과 루카스가 무죄임이 확인되었음에도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동네 사람들이 루카스를 손쉽게 범죄자로 단정 짓지 않고 최종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법원의 무죄 판결 후에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는 이미 다들 루카스를 배척하는 행동을 저질러 버린 다음에야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하고 무고한 마을 동료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차라리 경찰 조사가 불완전해서 범죄자가 풀려났다고 믿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 쉽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루카스에 대한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아마 이들 중에서도 루카스를 적극적으로 가해했던 사람일수록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려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질 테고, 그럴수록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 모든 잘못된 신념은 이런 식으로 강화된다. 즉,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옳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게 전파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두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 일은 미국 사상 최초의 국회의사당 점거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그 잘못된 믿음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던 이들이 많았다. 이제 트럼프가 정식으로 퇴임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니 이들의 태도는 바뀌었을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고수한다. 선거결과는 조작되었고 트럼프가 정당한 재선 대통령이지만 어떤 악의 세력에 의해 바이든이 취임했다는 식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아예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아마도 그 차이는 당사자의 수치심이 얼마나 덜 발달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이 일에 깊이 개입했느냐에 따라서도 행동은 달라진다. 누구든 어떤 상황맥락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을수록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렵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른 이는 루카스의 ‘절친’이자 사건 당사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 일에 자의든 타의든 가장 많이 개입한 사람이다. 반면에 유일하게 루카스의 결백을 믿어주고 도움을 주던 이는 오히려 루카스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는 제3자였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과 극단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시대다. 미미한 근거만으로 누군가의 존재 가치를 결정지을 만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수록 이 영화 속 마을사람들처럼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때일수록 한발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건의 해석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판에서도, 심지어 주식투자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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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원래 좋은 영화는 여백이 많고 관객 각자가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뻔하디 뻔한 교훈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기 전에 100까지 세어라”,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등 격언들은 모두 생각은 많이 하더라도,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길 때는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남들에게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올가미 역할을 한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나의 생각이 끌려가는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옳은 것 같지만 틀린 명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시작인 아이의 증언은 사실 둘이었다. 루카스가 자기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언. 한 아이가 두 이야기를 했음에도 사람들은 첫 번째 이야기만 믿는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상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건을 조사할 때는 아이의 증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세심하게 검증해야 한다.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집에 지하실이 없는데 지하실이 있다고 기억하는 이 영화 속 아이처럼. 이후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oftus)라는 심리학자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실험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암시에 의해 창조되는지를 보여줬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피험자들에게 “당신 어릴 적에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한 거였다. 그러자 실제로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본 적 없던 피험자들이 자기가 쇼핑몰에서 엄마를 놓치고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어린아이들이 오죽하랴.
두 번째 실수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행동부터 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일단 루카스를 범죄자로 판단 내린 마을 사람들은 경찰 조사 결과 루카스가 무죄임이 확인되었음에도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동네 사람들이 루카스를 손쉽게 범죄자로 단정 짓지 않고 최종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법원의 무죄 판결 후에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는 이미 다들 루카스를 배척하는 행동을 저질러 버린 다음에야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하고 무고한 마을 동료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차라리 경찰 조사가 불완전해서 범죄자가 풀려났다고 믿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 쉽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루카스에 대한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아마 이들 중에서도 루카스를 적극적으로 가해했던 사람일수록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려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질 테고, 그럴수록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 모든 잘못된 신념은 이런 식으로 강화된다. 즉,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옳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게 전파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두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 일은 미국 사상 최초의 국회의사당 점거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그 잘못된 믿음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던 이들이 많았다. 이제 트럼프가 정식으로 퇴임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니 이들의 태도는 바뀌었을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고수한다. 선거결과는 조작되었고 트럼프가 정당한 재선 대통령이지만 어떤 악의 세력에 의해 바이든이 취임했다는 식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아예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바둑·장기판, 주식투자도 ‘객관화’ 중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른 이는 루카스의 ‘절친’이자 사건 당사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 일에 자의든 타의든 가장 많이 개입한 사람이다. 반면에 유일하게 루카스의 결백을 믿어주고 도움을 주던 이는 오히려 루카스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는 제3자였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과 극단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시대다. 미미한 근거만으로 누군가의 존재 가치를 결정지을 만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수록 이 영화 속 마을사람들처럼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때일수록 한발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건의 해석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판에서도, 심지어 주식투자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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