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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 테크&라이프] ‘클하 열풍’, 디지털 세계에 ‘목소리’가 돌아왔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클하 열풍’, 디지털 세계에 ‘목소리’가 돌아왔다

일런 머스크 CEO, 정용진 부회장 등 기업인도 클하에 등장… 팟캐스트·오디오북 등 ‘듣는 콘텐트’ 시장 확대
오디오 기반 소셜 앱 ‘클럽하우스’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화제가 되더니,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스타트업 대표뿐 아니라 대기업 회장님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최근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새로 인수한 야구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용진이 형’은 “10위를 하면 벌금을 내겠다”, “문학구장에 스타벅스와 노브랜드 버거를 입점시키겠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도 클럽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다.

정치인들도 출몰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클럽하우스에 입성했고, 박영선 전 중기벤처부 장관, 나경원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 서울시장 후보들도 클럽하우스에서 유권자를 만나고 있다. 아, 정치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제 유행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인기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기업 앱애니에 따르면, 2월 24일 기준 클럽하우스 앱 다운로드는 1000만 건을 넘어섰다. 2주 만에 500만 건의 다운로드가 추가로 일어나며 100%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 앱은 아직 애플 iOS 버전만 나와 있다.

이러한 클럽하우스의 인기가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과 영상 서비스는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분야지만, 음성은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전화지만, 정작 음성 관련 서비스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팟캐스트 정도가 꾸준히 이어져 오는 정도였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만 갇혀 지내던 사람들의 억눌린 어울림 욕구가 폭발하던 시기에 등장한 점, 인싸 무리에 끼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의 심리를 잘 공략했다는 점 등을 클럽하우스의 급작스러운 인기의 이유로 꼽는다.
 소리 소문 없이 성장한 음성 서비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음성 서비스는 최근 테크 산업에서 조용히 덩치를 키워온 분야다. 비주류 느낌이 강하던 팟캐스트는 조금씩 미디어 산업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 진출한 스포티파이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개척자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비즈니스의 주 관심사가 음악이 아니라 팟캐스트로 느껴질 정도다. 2020년 5월에는 1억 달러를 주고 코미디언 조 로건의 팟캐스트 독점 계약을 맺었다. 스포츠 전문 팟캐스트 ‘더 링어’도 인수했다. 2019년에는 ‘파캐스트’, ‘앵커’, ‘김릿’ 등 팟캐스트 전문 기업들을 인수해 팟캐스트 생산과 유통, 광고 역량을 확보했다.

아마존 산하 오디오북 서비스 오더블도 독점 팟캐스트를 대거 유치, 기존 오디오북과 함께 콘텐트의 주요 기둥으로 키우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또 다른 팟캐스트 기업 원더리를 인수했으며, 애플도 스카우트FM이란 팟캐스트 추천 서비스를 인수했다. 음악과 오디오북 등과 묶어 ‘듣는 콘텐트’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가 ‘오디오클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팟캐스트 포털 팟빵, ‘목소리 유튜브’ 스푼라디오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팟캐스트 광고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스마트 스피커 같은 기기들이 나오면서 음성 콘텐트의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미국 인터렉티브광고협회(IAB)에 따르면, 올해 미국 팟캐스트 광고 시장은 10억 달러, 우리 돈 1조원 이상의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성장률은 2019년 48%에 이르고,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0년에도 14.7%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아직 다른 미디어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 오디오 서비스는 콘텐트를 넘어 직접적 소통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클럽하우스가 대표적이다. 마치 떠들썩한 파티나 콘퍼런스 무대처럼 활기찬 대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IT 업계 연쇄 창업자이자 NBA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인 마크 큐반도 클럽하우스와 유사한 ‘파이어사이드 챗’이란 이름의 오디오 서비스 론칭을 준비 중이다.

트위터가 최근 소수 사용자를 대상으로 테스트에 들어간 ‘스페이스’ 기능 역시 클럽하우스와 비슷하게 대화방을 열고 팔로워와 음성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트위터는 유료 콘텐트를 올릴 수 있는 ‘슈퍼 팔로워’와 뉴스레터 등 수익화 가능한 구독 서비스와 스페이스를 묶어 크리에이터가 경제적 보상을 얻을 길을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페이스북 역시 클럽하우스 대항마를 개발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성 대화 기능으로 출발한 디스코드는 이제 ‘말이 통하는 나만의 공간’이란 새 슬로건을 걸고 음성 소셜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 친구들의 음성 메시지를 하나의 파일로 묶어 들을 수 있는 ‘카푸치노’ 등 음성 서비스 스타트업도 셀 수 없이 많이 생겼다.

음성 기반 소셜 서비스의 인기는 목소리를 나누는 대화가 주는 날 것 그대로의 친밀함이 갖는 매력에 힘입은 바 크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디지털 환경은 만날 수 있는 친구의 범위를 세계 규모로 키웠지만, 교류의 형태는 텍스트나 사진으로 제한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텍스트와 ‘좋아요’, ‘리트윗’으로만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대화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음성이나 화상 대화를 동시에 원활히 처리하기 어려운 네트워크와 기기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수백 명이 동시에 한 방에서 대화하는 클럽하우스도 아고라라는 회사의 통화 기술 솔루션을 사용해 뚝딱 만들어졌다. 대화라는 인간의 원초적 멀티미디어 경험이 이제 본격적으로 디지털 세상에 복제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눈이 아니라 귀를 놓고 싸우다
더구나 음성 서비스는 새로운 광고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테크 플랫폼 간 경쟁은 결국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하려는 싸움이다. 출발점이 검색, 소셜 네트워크, 전자상거래 등으로 제각각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여러 서비스를 모두 제공해 사용자를 묶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를 묶어 두는 싸움은 주로 스크린 위에서 일어났다. 스크린 타임을 장악해야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하며 더 많은 광고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포트나이트와 경쟁하고, 아마존과 쿠팡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이유다.

반면 음성 서비스는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귀를 공략한다. 몰입을 요구하는 시각 중심 미디어와 달리 음성 서비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용할 수 있다. 광고가 겨냥할 수 있는 감각이 눈에서 귀로 확대되고, 광고를 넣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일상 경험의 더 많은 부분이 디지털 세계로 넘어간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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