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대신 행복을 강조하는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The Older and The Wiser”)
[성공 대신 행복을 강조하는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The Older and The Wiser”)
벽산그룹의 흥망성쇠 겪으며 기업가의 자세 달라져… “미술품 물납제도는 당연히 이뤄져야” 강조 대기업 오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거칠 것이 없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0년대 중반 그가 택한 곳은 아버지 곁이 아닌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서다.
아버지의 소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벌 아드난 카쇼기를 만나 그가 운영하던 트리아드 홀딩스에 합류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연을 맺었다. 사막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고, 한국 청년이라면 접하기 어려운 비즈니스의 세계를 접했다. 사막에서 길을 잃어 자동차 냉각수를 마시면서 버텨보기도 했고, 올라가 있던 기중기가 넘어져 3개월 이상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일 때문에 각국의 대통령과 대기업 CEO를 만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한국 건설사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한국의 젊은이가 경험하기 어려운 비즈니스를 그곳에서 직접 해본 것이다. 그래서 “사막은 내 인생의 무대였다”라고 말할 정도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건설사 대표를 시작으로 40대에 그룹의 부회장까지 올랐다. 대기업 오너의 셋째 아들은 승승장구했다. 도전 의식이 충만했기에 다양한 도전과 사업 확장을 해나갔다. 업계는 그를 두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장비 스타일’의 기업가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997년 한국을 강타한 IMF가 없었다면 그는 실패를 모르는 기업가로만 지냈을 것이다.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했던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갈 정도로 브레이크 없는 사업 확장의 대가는 컸다. “내가 일을 너무 벌여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고 말할 정도다. 그룹 계열사의 매각이 이어졌다. 두 형들에게 미안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그가 보유하고 있던 1000억원 정도의 주식을 모두 내놓았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세상 거칠 것 없던 기업가는 침묵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기업가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성공’ 대신 ‘행복’을 강조하는 문화 예술 전도사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3일 3년 임기의 한국메세나협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이야기다. 3월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 취임 기자간담회 이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메세나(MECENAT)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다.
김 회장에게 궁금했던 게 있다. 기업가로서 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변한 이유다. 김 회장에게 “요즘 김 회장은 일 대신 ‘행복’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합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의 삶이 아니다. 일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라고 연설한 적도 있는데요, 이렇게 변화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잠깐 생각을 한 후 내놓은 대답은 “The older and The wiser(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다. 나이가 들면 변하게 된다. IMF로 실패를 한 후 미국에 가서 숨죽여 지내는데, 세상을 떠난 아내 덕분에 기업가로서의 비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죽을 때 ‘일을 더 못해서 아쉽다’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다. 일보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나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행복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집중하는 게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다. 세종문화회관과 함께한 세종 꿈나무 오케스트라 활성화 사업,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함께하는 사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종로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어린이병원 힐링플레이, 여기에 임직원이 월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1%를 매칭해주는 ‘1%나눔기금’에도 1000여 명이 넘는 전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벽산엔지니어링을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으로 인증했다. 김 회장은 개인도 문화 예술계에서 유명 인사로 꼽힌다. 1980년대 한국에 돌아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판화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해 어느덧 1000여 작품을 가지고 있는 유명 미술 컬렉터다. 2019년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했던 컬렉터의 작품을 전시하는 ‘세종 컬렉터 스토리 전’에서 김 회장이 제일 먼저 참여했을 정도다. 요즘 불거지고 있는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하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발언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물납은 부동산과 주식 등에 한정되어 있다. 김 회장은 “미술품 물납제도는 당연히 되어야 하고 시기와 테크니컬한 문제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작품을 해외 옥션에 내놓는다고 하면 수수료뿐만 아니라 작품을 해외로 반출한다는 비판도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 이건희 회장이 1만 점 정도를 가지고 있다는 데 하나를 사도 좋은 것을 골랐을 것이고, 구매한 금액보다 더 가격이 많이 오른 상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술 컬렉터뿐만 아니라 그는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악 합주단인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에 산파 역할을 했고, 현재는 세종솔로이스츠 명예이사장으로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등의 클래식 연주단체 지원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국제아트페어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0년에는 사별한 아내의 유산 30억원으로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벽산희곡상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기업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희곡’ 분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라는 기업가 이력은 한 줄에 그치지만, 문화 예술 서포터 이력은 이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기업의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메세나협회의 가장 큰 우군인 셈이다.
요즘 기업의 최대 이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다. 메세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회장은 “메세나가 존재하는 이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궁극적으로 기업이 열심히 성장하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메세나 활동은 큰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한국메세나협회를 3년 동안 이끌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중소·중견기업의 참여 확대’다. 김 회장은 “메세나협회 참여를 권유해볼 만한 분들은 이미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중소중견기업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면서 “기업의 사명은 사회공헌이고,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공헌은 메세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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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소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벌 아드난 카쇼기를 만나 그가 운영하던 트리아드 홀딩스에 합류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연을 맺었다. 사막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고, 한국 청년이라면 접하기 어려운 비즈니스의 세계를 접했다. 사막에서 길을 잃어 자동차 냉각수를 마시면서 버텨보기도 했고, 올라가 있던 기중기가 넘어져 3개월 이상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일 때문에 각국의 대통령과 대기업 CEO를 만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한국 건설사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한국의 젊은이가 경험하기 어려운 비즈니스를 그곳에서 직접 해본 것이다. 그래서 “사막은 내 인생의 무대였다”라고 말할 정도다.
젊은 시절 ‘장비 스타일’의 기업가로 평가받아
1997년 한국을 강타한 IMF가 없었다면 그는 실패를 모르는 기업가로만 지냈을 것이다.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했던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갈 정도로 브레이크 없는 사업 확장의 대가는 컸다. “내가 일을 너무 벌여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고 말할 정도다. 그룹 계열사의 매각이 이어졌다. 두 형들에게 미안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그가 보유하고 있던 1000억원 정도의 주식을 모두 내놓았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세상 거칠 것 없던 기업가는 침묵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기업가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성공’ 대신 ‘행복’을 강조하는 문화 예술 전도사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3일 3년 임기의 한국메세나협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이야기다. 3월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 취임 기자간담회 이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메세나(MECENAT)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다.
김 회장에게 궁금했던 게 있다. 기업가로서 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변한 이유다. 김 회장에게 “요즘 김 회장은 일 대신 ‘행복’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합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의 삶이 아니다. 일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라고 연설한 적도 있는데요, 이렇게 변화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잠깐 생각을 한 후 내놓은 대답은 “The older and The wiser(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다. 나이가 들면 변하게 된다. IMF로 실패를 한 후 미국에 가서 숨죽여 지내는데, 세상을 떠난 아내 덕분에 기업가로서의 비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죽을 때 ‘일을 더 못해서 아쉽다’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다. 일보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나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행복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집중하는 게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다. 세종문화회관과 함께한 세종 꿈나무 오케스트라 활성화 사업,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함께하는 사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종로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어린이병원 힐링플레이, 여기에 임직원이 월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1%를 매칭해주는 ‘1%나눔기금’에도 1000여 명이 넘는 전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벽산엔지니어링을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으로 인증했다.
1000여 점의 미술품 수집한 유명 컬렉터
미술 컬렉터뿐만 아니라 그는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악 합주단인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에 산파 역할을 했고, 현재는 세종솔로이스츠 명예이사장으로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등의 클래식 연주단체 지원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국제아트페어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0년에는 사별한 아내의 유산 30억원으로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벽산희곡상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기업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희곡’ 분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라는 기업가 이력은 한 줄에 그치지만, 문화 예술 서포터 이력은 이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기업의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메세나협회의 가장 큰 우군인 셈이다.
요즘 기업의 최대 이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다. 메세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회장은 “메세나가 존재하는 이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궁극적으로 기업이 열심히 성장하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메세나 활동은 큰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한국메세나협회를 3년 동안 이끌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중소·중견기업의 참여 확대’다. 김 회장은 “메세나협회 참여를 권유해볼 만한 분들은 이미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중소중견기업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면서 “기업의 사명은 사회공헌이고,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공헌은 메세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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