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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의 올림픽 경제·정치학] ‘사면초가’ 도쿄 올림픽 강행하는 속내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의 올림픽 경제·정치학] ‘사면초가’ 도쿄 올림픽 강행하는 속내

금전 손실 줄이고 스가 정권 지지 높이기… 전범국 흑역사 가릴 수 있을까
일본에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전경을 지나가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오는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은 어떤 대회로 기록될까.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는 3월 25일 후쿠시마(福島)현 나라하마치의 축구시설인 J빌리지에서 성화 봉송을 시작했다. 올림픽·패럴림픽은 통상 성화 봉송을 계기로 준비 속도가 빨라지고 대회 분위기가 확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등으로 분위기가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조직위는 이날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 등 16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발 기념행사를 열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발 행사를 간소화하고 무관중으로 열었다지만, 2021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총리의 참석도 없는 서막을 올린 셈이다.

성화 봉송 행사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7월 23일까지 121일 동안 일본 전역에서 진행된다. 약 1만 명의 봉송 주자가 일본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를 모두 달리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성화 봉송 행사가 코로나19 확산의 계기가 되지 않도록 길거리 밀집 응원이나 거주지를 벗어난 원정 응원 등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심지어 성화 통과를 보려고 인파가 몰리면 해당 장소를 통과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는 고육책까지 동원했다. 조직위는 성화 봉송을 직접 보는 대신 인터넷 생중계로 볼 것을 권고할 정도다. 성화 봉송 경비를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들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협조 표지판을 목에 걸고 나왔다. 일본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성화 봉송 장소부터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치르는 이유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성화 봉송 출발지인 J빌리지는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쓰나미로 전력시설이 물에 잠기면서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초기에 수습 작업을 지휘했던 거점이었다. 도쿄 올림픽은 일본에선 인류의 대제전의 의미보다 2011년 3월 발생했던 동일본대지진의 아픔을 털어내고 새출발하는 ‘부흥 올림픽’의 의미가 커 보인다. 성화 봉송 장소부터 이를 부각하기 위해 정한 셈이다. 도쿄 올림픽의 정치학이다.
 올림픽 코앞인데 확진자 증가세, 백신 접종 지지부진
일본 도쿄 시민들이 3월 6일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가운데 도쿄 올림픽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성화의 첫 봉송 주자 선정도 마찬가지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축구 여자 월드컵 독일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대표팀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맡았다. 당시 ‘나데시코 재팬’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비극의 현장에서,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성화 봉송을 시작한 것은 도쿄 올림픽을 보는 일본인과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성화 봉송은 개인이 아니라, 이와시미즈 아즈사(岩淸水梓) 등 16명의 선수가 함께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묻어난다.

도쿄 올림픽 성화는 이 대회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성화는 지난해 3월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돼 특별수송기 편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지난해 3월 26일부터 성화 봉송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이틀 전에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면서 1년간 대기해야 했다. 결국 성화는 일본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봉송에 들어가는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 정부는 성화 봉송 사흘 전인 3월 22일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의 긴급 사태를 해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는 긴급사태 해제 당일 816명이었으나 다음날 1503명, 하루가 지나자 1918명으로 뛰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인 셈이다. 올해 대회가 코로나19를 이기는 올림픽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참고로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일본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3월 21일 1480명, 22일 1143명, 23일 978명, 24일 1289명이다. 일본은 백신 접종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아 대회 이전에 집단 면역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블룸버그 백신 트랙커에 따르면 일본은 3월 25일까지 77만5122 회분이 접종됐으며 이는 전체 인구 1억2650만 명의 0.3%에 해당하는 횟수다. 전체 인구에서 1회 이상 접종자의 비율은 0.6%, 2회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은 0.1% 미만이다. 하루 접종 횟수는 38만60회에 불과하다.

영국이 지금까지 3176만 회분을 접종해 전체 인구의 43.4%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친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하루 59만3000 회분을 접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억3330만 회분을 접종하고 전체 인구의 26.3%가 1회 이상, 14.3%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쳤다. 미국은 하루 250만 회분 이상을 접종 중이다. 전체 인구의 9.6%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완료한 유럽연합(EU)과 비교해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EU는 하루 128만 회분 이상을 접종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접종을 계속한다면 백신으로 안심 올림픽을 치르기가 힘들다.
 해외 무관중 경기로 진행…경제 손실 갈수록 눈덩이
이에 앞서 성화 봉송 닷새 전인 3월 20일 일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3월 20일 5자 화상회의를 열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대회 취소를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자 또 하나의 고육지책이다.

일본 관객의 제한 여부는 4월 말까지로 결정을 미뤘다. 해외 관중은 포기하더라도 일본에서의 올림픽 열기는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드러난다. 일본 언론들은 당국이 ‘일본 내국인은 관객 수 제한 없이 수용’ ‘입장 관중 50% 제한’ ‘무관중 경기’의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며 지금으로선 50% 제한 방안의 채택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

이번 ‘해외 무관중 경기’ 결정에 따라 해외에 판매한 올림픽·패럴림픽 입장권 63만 장은 환불할 예정이다. 입장권과 함께 판매된 항공권이나 숙박요금 등을 포함하면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도쿄 올림픽은 치르겠다는 선언이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관중 제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따져보자. 요미우리 신문 등에 따르면 해외 관중을 아예 포기하고, 가장 유력한 예상대로 일본 국내 관중은 50%로 줄인다는 것을 상정했을 때 경제적 손실은 약 1조6258억 엔(약 16조 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에 대한 마이너스 영향은 약 2000억 엔(약 2조790억원)으로 계산됐다. 일본 스포츠 경제 분야의 권위자인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關西)대 명예교수(이론경제학)의 추산이다.
 스가 지지율 추락, 손해 증가 우려해 행사 추진 강행
8년 전 IOC 총회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기 위한 행사로 2013년 도쿄역에 마련했던 1964년 도쿄 올림픽 사진전 / 사진:REUTERS=연합뉴스
원래 2020년 개최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로 1년간 연기되면서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대회가 1년 연기되면서 조직위원회를 1년간 더 운영해야 하며 이에 따른 인건비와 활동비, 그리고 경기장 대여에 따른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 숙고 위약금도 필요하다. 니케이 등에 따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비용 추가분을 계산한 결과 최대 3000억 엔(약 3조1185억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책 비용도 추가될 수 있다.

도쿄도와 올림픽 조직위원회사 2019년 12월 발표했던 예산안 제4판에 따르면 2020년 대회가 열렸을 경우 전체 경비는 1조3500억 엔(약 14조3000억원)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3000억 엔이 추가되면 2021년 도쿄 올림픽은 전체적으로 1조6500억 엔(약 17조1500억원)의 비용이 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무관중에 일본 관객 50%로 대회를 치를 경우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올림픽을 취소하면서 생길 손실보다는 적다. 미야모토 교수가 지난해 3월에 내놓은 추산에 의하면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면 4조5151억 엔(약 48조1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올림픽을 취소하면 48조원, 해외 무관중으로 치르면 16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해외 무관중 대회에 따른 손실도 상당하지만 대회 취소보다는 손실이 적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일부에선 스가 총리가 올림픽 강행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치른다고 일본의 부흥에 도움이 되고 스가의 리더십을 인정해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올림픽을 포기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라는 브랜드가 입을 타격은 상당하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행정부의 능력이나 통찰력, 그리고 의지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코로나19를 이길 백신 접종에서 경이적인 속도를 낸 이스라엘이라면 비교적 문제없이 대회를 치렀을 수 있다.
 중일전쟁 벌이느라 1940년 올림픽 스스로 반납하기도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을 취소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오래 전 침략의 역사 속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대회다. 그런데 사실 이번 행사는 도쿄가 역대 2번째가 아니라 3번째로 유치한 대회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이어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결정했다. 침략 전쟁을 일삼던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자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핑계로 올림픽을 포기, 반납한 사례는 도쿄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일본으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점철됐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중국항일전쟁사』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 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기록했다.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 명이 숨졌다.

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1940년 3월 13일)을 벌이면서 이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이 전쟁으로 중지된 두 번째 사례다.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것이 첫 사례다. 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리카계 선수인 제시 오언스(1913~1980년)가 100m, 200m, 400, 계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따서 4관왕에 오르면서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1944년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런던은 종전 뒤 처음 열린 1948년 여름 올림픽을 개최해 평화와 화합의 제전으로 이끌었다. 그 뒤 인류는 올림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 반납은 일본 제국주의가 인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느라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을 포기한 흑역사다.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하거나 대회를 포기하면 이런 흑역사가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선 올해 도쿄 올림픽 포기가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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