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애플보다 빨리 ‘디자인 갬성’ 추구, 텐바이텐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애플보다 빨리 ‘디자인 갬성’ 추구, 텐바이텐
디자인 아이템 판매만으로 연매출 1300억원… ‘자본 경쟁’된 이커머스 시장에서 묵묵히 선전 같은 대학 건축학과 출신 독수리 오형제가 뭉쳤다. 이중 누군가는 ‘디자인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가 되면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작은 소품을 파는 디자인 채널을 만들면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고 있다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 제품이 모여 있는 곳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디자이너에게는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며, 고객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곳이 될 것’이라고 했다.
IMF의 영향으로 기업에선 구조조정이 일상으로 일어나고 계약직이 넘쳐나면서 확실한 미래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았던 2000년 가을, 다섯 친구의 이야기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이 독수리 오 형제는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느니 우리가 한번 직접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의기가 투합한다. 각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섯 명의 친구가 디자인 감성 채널이라는 개념으로 우리나라 첫 디자인 쇼핑몰 ‘텐바이텐(10X10)’을 설립한 순간이다.
텐바이텐은 기성세대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MZ 세대 여성에게는 잘 알려진 디자인 감성 쇼핑몰이다. 매출 1300억원, 누적회원 수 600만명. 이중 MZ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30세대 비중이 31%가 된다. 대한민국 2030 여성 3명 중 1명은 텐바이텐 고객인 것이다. 일 방문자 30만명, 취급하는 디자인 아이템 숫자만 85만개, 브랜드는 3만 여개에 이른다. 아이돌 그룹 ‘2PM’ 굿즈 판매를 시작으로 ‘굿즈’를 처음 상품화하고 산업 규모로 키운 곳도 텐바이텐이다. “아직도 그렇지만, 당시 이커머스 회사는 가격을 얼마나 할인하고, 얼마나 빨리 배송하며, 얼마나 유명한 제품을 파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우리는 디자인 감성을 가진 분에게 그 제품을 왜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와 같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텐바이텐 창업자 ‘독수리 오형제’ 중 3대 대표를 맡은 홍일점, 최은희 대표가 말한 텐바이텐의 기업 목적이다. 텐바이텐 브랜드 이념은 ‘다름(different)’이다. 애플을 흉내 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애플 ‘아이포드’나 ‘아이폰’이 나오기 훨씬 전인 2001년에 이런 생각을 가졌으니 앞선 통찰을 가진 셈이다. 최 대표의 말이다. “우리의 고객들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저희가 제공하는 제품도 달라야 하고 그러려면 제품도 다른 곳에서 시도한 것과는 아예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크게는 건축도 디자인 영역이지만, 건축가인 이들이 건축이 아닌 디자인 소품과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건물은 한번 지으면 수십 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미래를 투영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구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었어요. 그러던 중 건축이라는 대전제를 풀기 위해 공간에 집착하다 보니 방과 공간에서 개인이 일상화할 수 있는 취향은 디자인 소품과 인테리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최 대표의 대답이다.
“우산을 사는 분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사는 것으로 니즈가 충족되는 분과 비가 올 때 잠시 비를 가리기 위해 사더라도 평소에도 나에게 어울리는 우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비가 오지 않을 때라도 우산을 찾으면서 나와 어울리는 예쁜 우산을 검색하고 계속 고민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분들이지요. 텐바이텐의 고객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텐바이텐은 소비자를 조사할 때 인구통계학적, 지역적 시장세분화를 하지 않았다. 다만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구분할 뿐이다. 물론 숫자상으로 고객의 연령대는 MZ세대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고객연령층은 실제로 매우 다양하다.
라이프스타일은 먹고, 입고, 일하고 취향을 누리는 모든 순간에 개입되는 개인의 태도다. 텐바이텐은 고객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거나, 미묘하게 쌓아온 취향에 맞거나, 개인에게 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가장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그래서 고객이 무엇을 사는지에 더해 왜 사는지를 생각하고, 언제 샀는지에 더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텐바이텐의 방식이다. 텐바이텐은 유니콘 기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J커브를 그리며 급속 성장을 해온 기업도 아니다. 텐바이텐은 21년 된 기업으로, e커머스 업계에서는 ‘시조새’라고 불릴 정도도 오래된 기업이다. 디자인 가치를 추구하는 한정된 세그먼트의 시장을 타깃으로 하다 보니, 오픈마켓과 비교하는 것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1년 먼저 시작한 옥션과 이베이코리아가 5조 자산가치로 시장에 나온 것을 보면 경영적으로 크게 성공한 브랜드라고 하기엔 허전한 면이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기업에서도 판매 수량과 매출 그리고 수익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텐바이텐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객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내 삶만큼은 잘 가꾸려고 노력하는 고객들에게 어떤 영감과 자극 그리고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화두입니다”
최 대표의 설명에서 21년 된 브랜드가 왜 이리도 서서히 성장해 왔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기업문화와 관련된 일화를 들어 보며 회사의 성장에 대한 의문이 더 명확하게 풀렸다. “친구들 다섯이 똑같이 지분을 투자했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의사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끝장 토론을 통해 결정했어요.”
GS그룹에 지분을 매각할 때는 2년간의 토론을 거쳐 결정한 적도 있다. 때로는 회의하다가 지쳐서 싸우지 않고 빨리 포기하기도 했다. 매일 밤 치열한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는 가장 큰 가이드라인은 ‘우정을 다쳐서는 안 된다’였다. 대표이사도 5명의 동업자가 생일 순으로 역임했다. 첫 번째 대표가 현재 ‘29cm’를 분사해 독립한 이창우 대표이고, 지금의 대표인 최은희 대표가 세 번째 대표다.
텐바이텐은 ‘소나무 취향족’을 찾아 나서는 기업이다. 소나무 취향족이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같이 장르와 아이템 불문하고 일관성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아이템이 달라도 일정한 패턴을 가진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쇼핑에서 사람마다 다른 각자의 소나무 취향을 찾아 주고, 감성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원하는 제품을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이 있다면 어떨까.
텐바이텐이 ‘또 다른 쥐덫들’이 벌이는 자본의 전쟁이 되어 가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 굳건히 버티는 것은 지난 20년간 추구해온 디자인 감성의 힘일 것이다. 좀 더 싼 가격, 좀 더 빠른 배송, 좀 더 잘 알려진 브랜드가 주도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디자인 감성을 가치로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낯설지만, 텐바이텐이 발견하는 고객의 소나무 취향은 분명 ‘또 다른 쥐덫’을 이기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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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영향으로 기업에선 구조조정이 일상으로 일어나고 계약직이 넘쳐나면서 확실한 미래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았던 2000년 가을, 다섯 친구의 이야기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이 독수리 오 형제는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느니 우리가 한번 직접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의기가 투합한다. 각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섯 명의 친구가 디자인 감성 채널이라는 개념으로 우리나라 첫 디자인 쇼핑몰 ‘텐바이텐(10X10)’을 설립한 순간이다.
텐바이텐은 기성세대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MZ 세대 여성에게는 잘 알려진 디자인 감성 쇼핑몰이다. 매출 1300억원, 누적회원 수 600만명. 이중 MZ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30세대 비중이 31%가 된다. 대한민국 2030 여성 3명 중 1명은 텐바이텐 고객인 것이다. 일 방문자 30만명, 취급하는 디자인 아이템 숫자만 85만개, 브랜드는 3만 여개에 이른다. 아이돌 그룹 ‘2PM’ 굿즈 판매를 시작으로 ‘굿즈’를 처음 상품화하고 산업 규모로 키운 곳도 텐바이텐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제품 제시
텐바이텐 창업자 ‘독수리 오형제’ 중 3대 대표를 맡은 홍일점, 최은희 대표가 말한 텐바이텐의 기업 목적이다. 텐바이텐 브랜드 이념은 ‘다름(different)’이다. 애플을 흉내 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애플 ‘아이포드’나 ‘아이폰’이 나오기 훨씬 전인 2001년에 이런 생각을 가졌으니 앞선 통찰을 가진 셈이다. 최 대표의 말이다. “우리의 고객들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저희가 제공하는 제품도 달라야 하고 그러려면 제품도 다른 곳에서 시도한 것과는 아예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크게는 건축도 디자인 영역이지만, 건축가인 이들이 건축이 아닌 디자인 소품과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건물은 한번 지으면 수십 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미래를 투영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구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었어요. 그러던 중 건축이라는 대전제를 풀기 위해 공간에 집착하다 보니 방과 공간에서 개인이 일상화할 수 있는 취향은 디자인 소품과 인테리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최 대표의 대답이다.
“우산을 사는 분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사는 것으로 니즈가 충족되는 분과 비가 올 때 잠시 비를 가리기 위해 사더라도 평소에도 나에게 어울리는 우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비가 오지 않을 때라도 우산을 찾으면서 나와 어울리는 예쁜 우산을 검색하고 계속 고민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분들이지요. 텐바이텐의 고객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텐바이텐은 소비자를 조사할 때 인구통계학적, 지역적 시장세분화를 하지 않았다. 다만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구분할 뿐이다. 물론 숫자상으로 고객의 연령대는 MZ세대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고객연령층은 실제로 매우 다양하다.
라이프스타일은 먹고, 입고, 일하고 취향을 누리는 모든 순간에 개입되는 개인의 태도다. 텐바이텐은 고객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거나, 미묘하게 쌓아온 취향에 맞거나, 개인에게 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가장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그래서 고객이 무엇을 사는지에 더해 왜 사는지를 생각하고, 언제 샀는지에 더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텐바이텐의 방식이다.
한결같은 취향 자랑하는 ‘소나무 취향족’ 겨냥
하지만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기업에서도 판매 수량과 매출 그리고 수익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텐바이텐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객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내 삶만큼은 잘 가꾸려고 노력하는 고객들에게 어떤 영감과 자극 그리고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화두입니다”
최 대표의 설명에서 21년 된 브랜드가 왜 이리도 서서히 성장해 왔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기업문화와 관련된 일화를 들어 보며 회사의 성장에 대한 의문이 더 명확하게 풀렸다. “친구들 다섯이 똑같이 지분을 투자했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의사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끝장 토론을 통해 결정했어요.”
GS그룹에 지분을 매각할 때는 2년간의 토론을 거쳐 결정한 적도 있다. 때로는 회의하다가 지쳐서 싸우지 않고 빨리 포기하기도 했다. 매일 밤 치열한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는 가장 큰 가이드라인은 ‘우정을 다쳐서는 안 된다’였다. 대표이사도 5명의 동업자가 생일 순으로 역임했다. 첫 번째 대표가 현재 ‘29cm’를 분사해 독립한 이창우 대표이고, 지금의 대표인 최은희 대표가 세 번째 대표다.
텐바이텐은 ‘소나무 취향족’을 찾아 나서는 기업이다. 소나무 취향족이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같이 장르와 아이템 불문하고 일관성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아이템이 달라도 일정한 패턴을 가진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쇼핑에서 사람마다 다른 각자의 소나무 취향을 찾아 주고, 감성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원하는 제품을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이 있다면 어떨까.
텐바이텐이 ‘또 다른 쥐덫들’이 벌이는 자본의 전쟁이 되어 가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 굳건히 버티는 것은 지난 20년간 추구해온 디자인 감성의 힘일 것이다. 좀 더 싼 가격, 좀 더 빠른 배송, 좀 더 잘 알려진 브랜드가 주도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디자인 감성을 가치로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낯설지만, 텐바이텐이 발견하는 고객의 소나무 취향은 분명 ‘또 다른 쥐덫’을 이기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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