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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타이틀에 ‘호갱’ 된 5G 이용자

28㎓ 기지국 증설 필요한데도 작년 목표의 1%도 개설 못해
과기부 장관도 “5G, 국민에 서비스할 상황 안돼” 부실 인정
5G 수요 증가로 이통사 실적 쾌조…소비자는 집단소송 준비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세계 최초 5G 상용화 기념 행사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LTE(4G)보다 20배 빠른 5G’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목표로 했던 ‘5G 28㎓(기가헤르츠)’ 기지국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사실상 5G 28㎓ 기반시설 구축에 비관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부담하는 모양새다.
 
이는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임 후보자는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인사청문회에서 “28㎓ 대역에는 서비스 모듈과 단말 모델이 아직 없고 기술 성숙도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8㎓는 B2B가 우선”이라고 밝혀 일반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5G를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임 후보자의 답변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최기영 과기부 장관이 밝힌 “정부는 5G의 28㎓ 주파수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하다. 현재 통신 3사가 5G 주파수 대역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건 3.5㎓다.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28㎓ 대역을 사용해야 하며 기지국 구축도 필수적이다.  
 

지난해 기지국 구축 목표 1만4000개 중 91개만 달성

 
하지만 28㎓ 기지국 구축은 이동통신사들이 5G 개통 당시 광고했던 서비스 수준을 제공하기엔 지금까지도 저조한 상태다. 통신 3사가 28㎓ 5G 주파수를 할당 받으면서 약속한 28㎓ 기지국 구축 목표는 2019년 5269국, 2020년 1만4042국, 2021년 2만5904국 등 3년간 총 4만5215국을 구축‧개설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통신 3사가 올해 3월 말까지 구축 완료한 28㎓ 기지국 수는 단 91개에 불과하다. 통신 3사가 지난 연말까지 구축하기로 목표로 한 28㎓ 기지국(1만4042국)의 1%도 못 미치는 숫자다.  
 
현재 이동통신 3사가 깐 전국 5G 기지국 수는 14만개다. 대부분 3.5㎓ 기반의 기지국들이다. 통신 3사가 이 같은 선택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28㎓ 대역의 경우 전파 도달거리가 짧고 장애물을 피해 가는 회절성이 약하다. 이 때문에 커버리지(회선 품질과 양호한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가 3.5㎓ 대역의 10~15% 수준에 불과하다. 3.5㎓보다 촘촘하게 기지국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통신사 입장에선 투자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사들은 “28㎓에 최적화된 통신장비 기술도 역부족”이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정부도 28㎓ 기지국 구축 정책 수정에도 나설 모습이다. 임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통신3사가 할당 받은 28㎓ 대역 투자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 “28㎓는 아직 기술이 성숙한 단계는 아니다”라며 “통신 3사의 기술 성숙도 등을 고려해 올해 말까지 지켜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동통신 3사의 28㎓ 5G 기지국 공동구축을 이행사항으로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한 대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구축을 허용해 통신사 부담을 3분의 1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기지국 의무구축을 점검할 계획으로 통신사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주파수 할당 취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임 후보자의 발언으로 주파수 할당 취소와 같은 강도 높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4G(LTE) 최고 속도보다도 느린 5G 평균 속도  

 
‘2GB 영화를 0.8초 만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가능케 할 28㎓ 대역 기지국 구축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다 보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4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하면서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업계가 공언했던 5G 속도는 20Gbps(1Gbps=1000Mbps)였다. 최대 1Gbps 속도를 내는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얘기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5G 상용화 축하 행사에서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로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단축되는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라고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5G 빠른 속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속도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과기부의 5G 품질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이동통신 3사의 5G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690Mbps다. 최대 1Gbps 속도를 내는 LTE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당초 홍보한 20Gbps에도 크게 모자란 속도다. 기대와는 다른 속도를 보이는 이유는 현재 지원되고 있는 5G 서비스가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가 가능한 28㎓ 대역이 아니라 3.5㎓ 대역이기 때문이다. 3.5㎓ 대역은 LTE(4G)보다 3~4배 빠른 데 불과하다.  
 
주무부처인 과기부는 “5G로 최대 20Gbps의 속도가 나온다는 것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5G 표준 제정 시 미래에 달성될 것으로 기대한 최고 전송속도로, 서비스 초기에 달성되는 속도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5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허울뿐인 5G에 속은 건 결국 1400만 가입자

 
하지만 소비자 입장은 다르다. 정부는 5G 통신망 기반 구축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이동통신사는 이에 편승해 가입자 확대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한 마디로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얘기다. 이에 일부 5G 가입자들은 집단소송도 준비 중이다.  
 
5월 6일 기준,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집단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만 76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상용화 당시에 완전한 5G망 구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부와 통신 3사가 인지하고 있었다”며 “처음부터 그러한 내용을 광고하거나 약관이나 계약 등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요금 감면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했으나 전혀 그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손해배상 청구 취지를 밝히고 있다.  
 
과기부가 발표한 3월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현황에 따르면, 5G 가입자 수는 3월 말 1448만 명으로 전달(1366만명)보다 82만 명 가까이 늘었다. 국내 이동 통신 가입자(7110만3359명) 5명 중 1명 이상이 5G를 쓰고 있는 셈이다.  
 
5G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이동통신사의 실적 전망도 밝은 편이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2분기부터 업체별 무선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 산정과 직권 해지 영향이 제거되고 5G 가입자 순증 폭이 확대되면서 이동통신 3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2~3%에 달하는 높은 ARPU 상승이 기대된다”며 “5G 보급률이 지난해 말 17%에서 올해 말 37%로 크게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따냈고, 이동통신사는 5G 가입자 확대로 수익성을 개선해가고 있다. 그러나 허울뿐인 5G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1400만 가입자의 불편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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