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찌꺼기로 에너지바 만든다? 식품업계에 부는 ‘업사이클링’ 바람
리하베스트, OB맥주와 협업해 ‘리너지바’ 개발
부산물, 프리미엄 식품 상용화 돌파구 되기도
생소한 이름의 ‘리너지바’ 봉지를 뜯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코에 스친다. 맥주 공장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모른다면 일반 에너지바와 다를 게 없다.
리너지바는 국내 첫 푸드업사이클링 전문 스타트업 ‘리하베스트’가 맥주 부산물(맥아)을 재가공해 만들었다. 재가공한 원료로 만들었다는 뜻에서 ‘리너지(Re+energy)’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 에너지바 못잖은 맛 덕분인지 초기 매출이 상당하다.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는 ”출시 3일 만에 2000만원, 올 1분기에만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푸드업사이클링이란 한번 쓴 원료를 다시 가공해 사람이 먹는 식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단순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과는 다르다. 쓰고 남은 맥아를 비료 등으로 썼다면 리사이클링에 해당한다. 기존에도 해조류 부산물로 골판지를 만드는 등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업체는 있었다. 그러나 식품을 만들어낸 곳은 리하베스트가 처음이다.
맥주업계, 매년 환경 부담금만 280억원
푸드업사이클링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부산물을 처리해야 하는 업체 입장에선 환경 부담금을 아낄 수 있다. 일례로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에 따르면, 국내 맥주 업체들이 매년 내는 환경 부담금만 280억원에 달한다. 손꼽히는 맥주 소비국답게 매년 나오는 부산물 양만 42만톤에 달한다. OB맥주가 민 대표와 손잡고 리너지바 제작에 나섰던 이유다.
높아진 경제성 덕분에 프리미엄 식품 시장도 들썩인다. 프리미엄 참기름·들기름을 만드는 스타트업 ‘쿠엔즈버킷’은 낮은 수율이 고민이었다. 이 업체가 개발한 저온 압착법을 썼을 때 1㎏ 참깨에서 나오는 기름은 300g 남짓. 520g가량 뽑아내는 기존 공법보다 낮다.
이 업체는 기름을 짜고 난 뒤 남는 부산물에 주목했다. 시골 방앗간에서 깻묵(기름을 짜고 남은 깨 덩어리)이 나오면 농장 사람들이 서로 가져가려 했던 데서 착안했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깻묵을 먹인 닭들은 항생제를 적게 먹여도 건강하더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이후 수년간 깻묵에서 기능성 물질을 추출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 결과 깻묵에 대한 축산업자들의 속설이 사실이었다. 깻묵 추출물을 대장염에 걸린 동물에게 먹였더니 염증이 유의미하게 줄어든 것. 박 대표는 “추출물 제작공법(초음파공법)에 관한 논문을 올 8월 해외 논문저널(〈Food Science And Biotechnology〉)에 게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또 “CJ, 신세계푸드, 농심 등 식품에서 추출물을 대체육 원료로 활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며 사업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신산업 전망에 관계 부처도 ‘육성’ 입장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리그레인드(ReGrained)’는 리하베스트와 마찬가지로 맥주 부산물을 활용해 에너지바를 만든다. 이 업체의 지난해 매출은 700억원이 넘는다. 미국의 마요네즈 제조업체 ‘썰켄싱턴스(Sir Kensingtons)’는 2016년부터 훔무스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마요네즈를 만들어내고 있다. 훔무스는 병아리콩을 갈아 만드는 중동의 대표 음식이다.
국내에서 푸드업사이클링 개념이 소개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관계 당국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예를 들어 민 대표는 “리너지바를 개발할 때 세 부처와 함께 논의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주세법은 국세청이, 식품 부산물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환경 폐기물은 환경부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담당자들이 적극 협조하면서 일이 풀렸다. 지난해 주세법 관련 고시를 개정하면서 맥주 공장에서 나온 부산물을 다른 음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업사이클링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도 낼 수 있는 산업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업사이클링 지원센터를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혔고, 일자리위원회는 청년 업사이클링 창업을 지원을 통해 환경 분야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관련 규제가 풀리고 정부가 육성에 나서면서, 국내 푸드업사이클링 산업도 몸집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문상덕 기자·이현정 인턴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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