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코인시장①] 거래소 꼬리자르기…정부 수수방관이 혼란 키웠다
특금법 적용 앞두고 코인 무더기 상폐
암호화폐 가치 폭락에 투자자 혼란
규정도, 보호 대책도 없는 암호화폐
정부의 무책임이 혼란 가중 지적도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이 시행을 석 달 앞두고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코인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코인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투자자와 상장사들은 명확한 기준을 밝히지 않는 깜깜이 상폐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혼란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불거진 암호화폐 시장의 논란과 문제점을 [이코노미스트]가 짚어봤다. [편집자]
국내 암호화폐(이하 ‘코인’)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주요 코인 거래소가 구체적인 근거나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사실상의 무더기 상장 폐지를 예고하면서다. 이 때문에 코인 가격이 급락하고 코인 상장사와 투자자는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가 두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인 거래소들이 6월 이후 대대적인 코인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가치를 입증 받지 못한 코인은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상 이유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지만, 향후 재편될 코인 시장에서 거래소가 살아남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올해 3월부터 시행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시행령’(특금법)에 따라 기존 코인 거래소는 9월 24일까지 신고 접수를 마쳐야 한다. 다음날인 25일부턴 미신고 또는 기준 부적합 수리불가 거래소는 영업할 수 없게 된다.
특금법은 코인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기존 사업자들은 9월 24일까지 신고 접수를 마치지 못하면 불법이 된다. 하지만 신고 요건이 까다로워 어떤 사업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금융 당국은 3가지 요건을 통과한 사업자를 인정해주기로 했는데, 첫 번째 조건이 ‘정보보호관리체계’를 인증 받는 것이다. 해킹 방지 등 전산시스템의 물리적·운영적 안정성을 확보했는지를 본다. 두 번째는 코인 거래소 이용자가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발급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은행에 개설한 거래소 계좌와 해당 은행의 고객 계좌 사이에서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금융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코인 거래소들이 가장 어렵게 여기는 부분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이다. 은행들이 최근 ‘위험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인 거래소가 위험도 높은 코인 거래를 지속할 경우 심사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4곳인데, 이들도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이 본격적인 코인 정리에 들어간 게 은행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코인 정리 작업을 주도하는 거래소는 업비트다. 업비트는 지난 11일 마로(MARO), 페이코인(PCI) 등 5개 암호화폐의 원화마켓 페어 제거를 통보했다. 이는 해당 코인을 원화로는 사고 팔 수 없게 막는 대신 비트코인으로는 거래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5종의 코인이 대부분 한국에서만 거래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상장 폐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업비트는 코모도(KMD) 외 24종 디지털 자산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뒤 일주일 뒤(18일) 거래지원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주식시장에 비유하면 ‘상장 폐지’시킨 셈이다. 이렇게 6월에만 29개 종목을 사실상 상장 폐지했다.
17일에는 빗썸도 4종류의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코인빗은 15일 8종류의 코인 거래를 막고 28종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거래대금 규모로 국내 5위 거래소인 프로비트는 지난 1일 145개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자산’으로 여겨졌던 코인은 휴지조각이 됐다. 업비트가 원화 거래를 막은 5개 코인 가치도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원화 거래가 막히기 전날인 10일 기준 285원을 기록했던 마로는 21일 0.000099BTC을 기록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약 37원 수준이다. 페이코인은 1150원에서 373원, 옵저버는 15.42원에서 2.62원으로 폭락했다. 솔브케어는 170원에서 55.34원, 퀴즈톡도 67.25원에서 8.23원으로 하락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5개 코인의 가격은 평균 78%가량 떨어졌다. 그런데도 업비트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원화로의 거래는 막았지만, 비트코인으로는 거래할 수 있다”며 “대체 거래 시장이 있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를 사실상 투기로 봤던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일괄적인 거래소 정리 작업에 들어가면서 암호화폐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4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들어간 이들까지, 예컨대 그림을 사고파는 것까지 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냐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며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자를 보호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은 위원장은 “세금은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가상자산’이란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상화폐·암호화폐·암호자산·코인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4월에야 이를 가상자산으로 용어를 사용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면서 주요 20개국도(G20) 처음엔 암호화폐(Cryptocurrency)란 용어를 쓰다가 이제 가상자산으로 용어를 통일했다"고 밝혔다. 화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자산’으로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암호화폐 전문가는 “투자자 보호에 관한 정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세금은 징수하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을 보인 것”이라며 “규제를 하든 허용을 하든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도박’에도 이를 제한하거나 허용 범위를 정하는 규정이 있다”며 “투기여서 보호할 필요가 없다며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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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암호화폐(이하 ‘코인’)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주요 코인 거래소가 구체적인 근거나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사실상의 무더기 상장 폐지를 예고하면서다. 이 때문에 코인 가격이 급락하고 코인 상장사와 투자자는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가 두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인 정리 나선 거래소, 투자자도 상장사도 ‘패닉’
코인 거래소들이 6월 이후 대대적인 코인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가치를 입증 받지 못한 코인은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상 이유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지만, 향후 재편될 코인 시장에서 거래소가 살아남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올해 3월부터 시행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시행령’(특금법)에 따라 기존 코인 거래소는 9월 24일까지 신고 접수를 마쳐야 한다. 다음날인 25일부턴 미신고 또는 기준 부적합 수리불가 거래소는 영업할 수 없게 된다.
특금법은 코인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기존 사업자들은 9월 24일까지 신고 접수를 마치지 못하면 불법이 된다. 하지만 신고 요건이 까다로워 어떤 사업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금융 당국은 3가지 요건을 통과한 사업자를 인정해주기로 했는데, 첫 번째 조건이 ‘정보보호관리체계’를 인증 받는 것이다. 해킹 방지 등 전산시스템의 물리적·운영적 안정성을 확보했는지를 본다. 두 번째는 코인 거래소 이용자가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발급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은행에 개설한 거래소 계좌와 해당 은행의 고객 계좌 사이에서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금융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코인 거래소들이 가장 어렵게 여기는 부분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이다. 은행들이 최근 ‘위험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인 거래소가 위험도 높은 코인 거래를 지속할 경우 심사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4곳인데, 이들도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이 본격적인 코인 정리에 들어간 게 은행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코인 정리 작업을 주도하는 거래소는 업비트다. 업비트는 지난 11일 마로(MARO), 페이코인(PCI) 등 5개 암호화폐의 원화마켓 페어 제거를 통보했다. 이는 해당 코인을 원화로는 사고 팔 수 없게 막는 대신 비트코인으로는 거래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5종의 코인이 대부분 한국에서만 거래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상장 폐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업비트는 코모도(KMD) 외 24종 디지털 자산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뒤 일주일 뒤(18일) 거래지원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주식시장에 비유하면 ‘상장 폐지’시킨 셈이다. 이렇게 6월에만 29개 종목을 사실상 상장 폐지했다.
17일에는 빗썸도 4종류의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코인빗은 15일 8종류의 코인 거래를 막고 28종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거래대금 규모로 국내 5위 거래소인 프로비트는 지난 1일 145개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자산’으로 여겨졌던 코인은 휴지조각이 됐다. 업비트가 원화 거래를 막은 5개 코인 가치도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원화 거래가 막히기 전날인 10일 기준 285원을 기록했던 마로는 21일 0.000099BTC을 기록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약 37원 수준이다. 페이코인은 1150원에서 373원, 옵저버는 15.42원에서 2.62원으로 폭락했다. 솔브케어는 170원에서 55.34원, 퀴즈톡도 67.25원에서 8.23원으로 하락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5개 코인의 가격은 평균 78%가량 떨어졌다. 그런데도 업비트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원화로의 거래는 막았지만, 비트코인으로는 거래할 수 있다”며 “대체 거래 시장이 있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4곳인데, 이들도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이 본격적인 코인 정리에 들어간 게 은행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암호화폐 ‘투기’라며 세금은 받고 싶은 정부
일각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를 사실상 투기로 봤던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일괄적인 거래소 정리 작업에 들어가면서 암호화폐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4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들어간 이들까지, 예컨대 그림을 사고파는 것까지 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냐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며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자를 보호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은 위원장은 “세금은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가상자산’이란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상화폐·암호화폐·암호자산·코인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4월에야 이를 가상자산으로 용어를 사용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면서 주요 20개국도(G20) 처음엔 암호화폐(Cryptocurrency)란 용어를 쓰다가 이제 가상자산으로 용어를 통일했다"고 밝혔다. 화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자산’으로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암호화폐 전문가는 “투자자 보호에 관한 정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세금은 징수하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을 보인 것”이라며 “규제를 하든 허용을 하든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도박’에도 이를 제한하거나 허용 범위를 정하는 규정이 있다”며 “투기여서 보호할 필요가 없다며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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