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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마사회①] 화상경마장 르포…스포츠는 없고 도박만 남아

방역 강화로 모임 규제해도 화상경마장에선 베팅 열기
경마, 지난해부터 셧다운 늪에 빠져 세수 확보에도 차질
사행산업으로 치부하기엔 집계된 일자리만 2만5000여개
노조 "온라인 마권 시행" 주장하지만 각계 반응은 냉담

지난 11일 한국마사회 부산연제지사를 찾은 사람들이 경마에 베팅하고 있다. [김하늬 기자]
 
“4, 3, 2…” “에~이 이런 오랑캐 같은 놈들!”
TV의 경마 중계 소리가 실내에 가득 울려 펴졌다. TV 화면에선 서울에서 열린 제6경주의 5번 말이 뒤처지고 4, 3번 말이 각각 1, 2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용하게 중계를 보던 한 켠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다른 한쪽에선 거친 욕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화면에선 ‘순위가 확정될 때까지 마권을 버리지 마십시오’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지난 11일 부산 연제구에 자리한 한국마사회 부산연제지사 화상경마장엔 경마꾼들로 붐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으로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한국마사회 서울 사업장은 관람객 입장을 중단했다. 대신 부산을 비롯해 천안·대구 등 지방 사업장에선 입장을 일부 허용하고 있는데 천안은 10여분, 부산은 20여분 만에 지정좌석이 모두 매진될 정도다.  
 
화상경마장에선 과천·부산·제주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경주를 영상으로 보며 실시간 베팅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야외 경마장 관중 입장은 전면 금지됐지만, 이곳에선 화상을 보며 경마할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에도 화상경마장 찾는 발걸음 줄이어

연제 화상경마장은 부산 연산동에 있는 한 호텔 3~4층에 마련한 721석을 지정좌석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입장권은 전날 5000원에 사전 예매했다. 빨간색 티셔츠와 흰 모자를 쓴 마사회 남성 직원들이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이 확인된 입장객을 안내했다. 사전예약한 좌석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칸 띄어 앉을 수 있게 했지만 칸막이는 없었다. 입장객은 예년에 비해 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경마에 집중하고 있었다. 
 
입장객 대부분은 50~70대 남성들이다. 중년의 여성도 간혹 눈에 띄었다. 차림새는 대체로 허름했다. 이들은 한 경기당 최소 100원에서 10만원까지 베팅했다. 말 번호가 적힌 마권은 기차역에서 탑승권을 사는 것처럼 창구나 자동발매기, 또는 모바일 전자카드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4, 1, 5번 말에 삼쌈승(1·2·3마 순서대로 적중) 10만원을 걸었던 한 남성의 표정이 경마 순위가 확정되자 일순간 구겨졌다. 그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곤 이내 경마 정보지를 뒤적거렸다. 정보지엔 그가 컴퓨터 사인펜으로 어지럽게 그린 메모와 경마 분석 내용이 적혀있었다.  
 
다음 경주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마권을 사는 사람들의 눈빛이 다시 비장해졌다. 몇 분 사이 수십억 원의 판돈이 이들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우려는 그들의 손에 쥔 마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모바일로 마권을 구입하는 기자의 모양새가 서툴러 보였던지 옆에 있던 남자가 “경마가 처음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경마 베팅 방법을 능숙하게 설명하던 그는 “경마라는 게 말이야, 내가 찍은 말이 1등 하잖아. 쾌감이 기가 막혀”라며 경마 예찬론을 펼쳤다. 돈을 얼마나 땄는지 묻자 “오늘은 많이 잃었는데 이따 다시 찾으면 돼”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20년 째 이곳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또 다른 남자는 첫 경주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날이 “인생 최대의 행운 같았다”고 회상하면서도 “아가씨는 이곳에 재미 붙이지 마”라고 충고했다. ‘구매상한선이 10만원이면 할만한 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다른 창구에서 구매표를 여러 장 사용하면 그만이지”라고 귀띔했다. 사실상 베팅 금액에 제한이 없는 셈이다.  
 
경마꾼들은 판돈을 건 경주마가 우승해 배당을 받으면 이 돈으로 구매권에 엎어 다시 마권을 사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는 마치 카지노에서 끊임없이 코인을 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 중년 여성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잠시 화상 경마장을 찾지 않았다가 이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집에선 할 일도 없고, 소일거리로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며 “코로나는 서울이나 심하지, 여기(부산)는 괜찮다”며 계속해서 이곳을 찾겠다고 했다.
 
주말 오전 11시 첫 경주를 시작으로 오후 6시 마지막 경주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상 경마장 입구 한 켠에 한국마사회 중독예방센터 ‘유캔센터’가 있었다. 하지만 방문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어 구색을 맞추기 위한 시설처럼 보였다.  

 
 
지난 12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전경. [김하늬 기자]
경마는 말 산업의 80~90%를 차지한다. 1차 산업인 경주마 사육에서부터 사료작물 재배·생산, 경마공원·장외발매소·승마장·훈련시설과 부속장구 제조업 등 2차 산업에 이어, 레저산업·기수육성·진료 등 3차 산업까지 아우른다. 최근엔 위성중계·온라인베팅 등 4차 산업도 거론되고 있다.
 

레저 이미지로 노력했지만 코로나 앞에 ‘셧다운’

국내 경마산업은 레저보다 도박에 가까워 보였다. 한국마사회는 경마가 사행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불법경마를 단속하고 공익사업을 늘리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면서 지난해 2월 23일 경마 중단을 공식화한 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경마를 레저스포츠로 만들려던 마사회는 코로나라는 악재를 만나 위기를 겪고 있다. 마사회는 그동안 경매 매출을 통해 연평균 1조원 정도의 세금을 냈다. 하지만 경마 중단으로 세수에 바닥이 났다. 지난 6월 경마 누적 매출은 평년의 5%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매년 1000억원 가량 적립한 출산발전기금도 지난해부터는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 방문한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은 이러한 손실을 그대로 보여주듯 을씨년스러웠다. 입구부터 노조들의 현수막으로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경주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텅 빈 관중석은 고요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전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고, 맥주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열어 축제로 꾸미는 등 경마를 문화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코로나 사태로 ‘셧다운’(중단)된 현재의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마사회는 지난해 매출 1조1018억원, 영업손실 4604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에는 매출 7조3937억원에 영업이익이 1204억원이었지만, 코로나 사태 후 경마 매출에서만 6조3000억원 가량 손실을 봤다. 마사회 관계자는 “마사회가 적자를 낸 것은 1949년 설립 후 6.25 한국전쟁 때를 제외하곤 역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경마는 말산업의 80~90%를 차지한다. 말산업은 1차산업부터 3차산업 이상을 아우른다. 경주마 사육과 매년 1400여 두의 경주마 생산, 농가 위탁사육, 사료작물 재배 및 사료생산 등으로 1차산업(축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경마공원 3곳과 30군데 장외발매소, 전국 승마장 건립, 각종 훈련 시설, 부속장구 제조업 등은 2차산업과 관련 있다. 3차산업 관련으론 마권발매, 레저산업, 기수 육성, 경주중계, 해외 경주수출, 재활힐링, 학교승마, 진료 등이 있다. 최근에는 경마정보, 위성중계, 온라인 베팅 등으로 4차산업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이에 말 생산자와 마주, 마필 관리사, 기수 등은 물론 유통업자, 음식점 등 관련 일자리 수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2만5000여개에 이른다. 마사회 직원도 약 6000명이나 된다. 단순히 경마산업을 도박으로 치부하고 마사회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화상경마장은 마사회 매출의 약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화상경마장은 도박장’이란 인식으로 마권 장외 발매소들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지난 3월 말에는 20여년 만에 대전 월평동 화상경마장이 문을 닫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사회는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 및 안전관리 미흡 영향으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한국마사회 제1노조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홍기복 한국마사회 제1노조 위원장은 ‘온라인 마권’ 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박 행위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며 “이를 국가가 관리해야 경마 수요가 투명하고 불법시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과 각계의 반응은 아직은 냉담하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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