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II로 바라본 격변의 중동과 한국의 기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한국·UAE, 미사일 방산 협력 강화
예멘 내전에 급박해진 중동 정세
한국 무기에 관심 갖는 UAE·사우디
중동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항공기와 크루즈 미사일은 물론 고속으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도 떨어뜨릴 수 있는 한국산 요격 미사일인 ‘천궁-II’를 중동국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UAE 국방부는 11월 16일(현지시각)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M-SAM)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약 규모는 35억 달러(약 4조1370억원) 상당”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액수까지 공개하면서 무기 구매 내용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UAE에는 그만큼 절실한 구매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2017년부터 시작한 천궁-II UAE 수출의 막전막후
‘천궁-II’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해 LIG넥스원 등과 공동 개발했다. 항공기 격추용 지대공 미사일 ‘천궁’의 개량형으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어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중추를 맡고 있다. 5년에 걸쳐 개발됐으며 2018년 생산에 들어갔다. 2020년 11월 한국군에 인도돼 전력화가 이뤄졌다.
국내에서 개발하거나 군이 납품받는 무기 체계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의 시험과 검사를 받는다. 올해 7월과 8월 ADD의 안흥시험장에서 ‘천궁-II’를 이용해 탄도미사일과 항공기를 떨어뜨리는 시험을 한 결과 모두 표적에 모두 명중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요격 무기체계의 핵심인 명중률에서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UAE는 새로운 무기체계인 ‘천궁-II’를 어떻게 알고 이토록 신속하게 구매를 추진한 것일까.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시간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해 12월 9~12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를 방문했다. 형식적으로는 2011년부터 UAE에 파견돼 UAE 군인들을 훈련 중인 한국군 군사훈련협력단, 일명 아크 부대를 격려 방문하는 게 임무였다. 아크 부대는 특수작전 교육·훈련 파견대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 배속돼 있지만, 합동참모본부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특수전·대테러전·해상작전 등을 교육한다. 임 당시 실장은 아크 부대 방문에 이어 레바논에 들러 현지에 파병된 동명부대를 격려한 뒤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임 실장의 방문 목적에는 비밀이 하나 포함돼 있었다. 2017년 12월 26일 중앙일보는 당시 임무를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와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포함한 첨단무기체계 분야에서 방산 협력 강화를 추진 중이라고 25일 UAE 수도 아부다비 현지에서 접촉한 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하나로 개발 중인 ‘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UAE 현지 테스트를 포함한 양국 국방 협력 논의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은 북한 미사일 도발 위협과 관련해 ▶발사 전에는 킬체인(한국형 공격형 방위 체계) ▶발사 이후에는 KAMD를 통한 요격 ▶미사일 타격 피해 이후에는 KMPR(대량응징보복) 등 3축 체계의 조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3축 체계 가운데 KAMD는 저층에서 요격하는 미국산 패트리엇 시스템(PAC-2·PAC-3 등)과 국산 지대공(地對空)미사일(M-SAM, 천궁 개량형), 중·고도에서 저지하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로 구성된다.
이 중 KAMD와 관련해서 한·UAE 간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는 고도 20~40㎞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지대공 미사일(M-SAM)이 꼽힌다. KAMD의 핵심 무기 체계인 데다 지난달 한국 방위산업추진위원회에서 양산에 돌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고도 60㎞까지 방어하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2022년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아직 초기 단계다.
아부다비 현지 소식통은 특히 “한국·UAE 간 미사일 방산 협력은 거의 막바지”라며 “한국이 추진하는 KAMD의 핵심인 요격 미사일의 현지 테스트를 UAE에서 하는 논의가 물살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미사일 시험장은 UAE의 넓은 사막지대보다 좁고, 인근 주민들의 소음 피해도 우려되지만, UAE는 입지가 좋고 미국산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의 실제 운용 경험도 풍부하다”고 밝혔다.
요격 미사일과 관련해 정부 핵심 관계자도 “중거리 지대공 요격 미사일은 국내 시험단계만 거쳤다”며 “UAE에서 적외선 센서 테스트 등을 받게 되면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방산업체의 관계자는 “정부가 요격 미사일의 성능 테스트 등을 UAE와의 핵심 방산협력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맞다”며 “다만 현재 진행 상황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중동 국가와의 방산협력은 특히 민감한 사안이어서 양국 정부가 공식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월 4일 UAE를 방문했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귀국 사흘 뒤인 7일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양산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 당초 송 장관은 “요격 미사일보다는 공격용이 중요하다”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등의 양산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시기적으로 UAE 방문 이후 입장을 선회했다”고 말했다.
예멘 내전이 도화선 된 천궁-II UAE 수출
UAE 지대공 미사일 사업에서 한국이 이스라엘과 경쟁해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쉽게 확인할 수도 없다. UAE는 지난해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올해 초 대사를 교환했지만, 이스라엘과는 경제 협력과 유전 경비 등을 담당할 보안업체와의 협력에 치중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산 무기를 살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과 본격적인 군사협력에 들어갈 경우 자칫 중동 지역에서 과격파나 무장단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UAE와 한국은 2009년 한국형 원전 APR-1400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가까워졌다. UAE 서쪽 바라카에 4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계약이다.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호기가 준공돼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UAE는 원전 보유국이 됐으며, 장기적으로 탈탄소 녹색 산업 혁명을 위한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기술력, 추진력, 생산성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바라카 1호기는 세계원전 건설 사상 드물게 원래 예정된 예산에서 추가 없이, 원래 잡았던 시간 일정에서 차질 없이 완성된 원전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UAE는 왜 한국산 원전에 이어 한국산 요격 미사일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뿌리 깊은 사연이 있다. UAE는 2015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예멘 내전에 참전했다.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와는 떨어져 있다. 예멘에선 이슬람 수니파인 압둘라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후티 반군에 밀리자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UAE는 이집트·쿠웨이트 등과 함께 수니파 연합군을 조직해 내전에 뛰어들었다.
이로써 예멘 내전은 내전을 넘어 국제 분쟁으로 비화했으며, 주민들에겐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멘 내전에서 폭격과 전투 등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1만 명 정도가 숨지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으며 840만~13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처했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유엔은 예멘이 지난 100년 이래 인류가 처한 최악의 기근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봉쇄하고 기아를 전술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의 후버 연구소는 2015년 12월 사우디가 하루 2억 달러의 전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그중에는 예멘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차단하는 요격 미사일 운용도 포함된다. 실제로 후티 반군은 이란에서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하는 탄도미사일을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시로 발사하고 있다. 후티 반군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국경에서 1200㎞ 떨어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공항 근처까지 날아왔다가 패트리엇 미사일에 의해 요격됐다. 지금도 리야드 상공에선 수시로 하늘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군의 패트리엇 미사일이 후티 반군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소리가 아니면 그런 소리가 하늘에서 들릴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국 무기 수출 금지 공백 메운 한국산 무기
후티 웹사이트는 “UAE에 한국이 짓고 있는 200억 달러짜리 원전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내용을 올리기도 한다. 선전술의 일부지만 UAE로서는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다양한 방어 시스템을 충분히 갖출 필요가 있다.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건너 이란의 탄도미사일 전력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의 상당수와 UAE 유전의 대부분은 이 바다에 있는 해상 유전이다. 2019년 9월 14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 두 곳이 드론 공격을 받아 마비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브카이크 탈황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10대로 알려진 드론 떼의 자폭 공격으로 손상되면서 이 나라의 석유 생산 규모는 일시 반 토막이 났다. 시장 가격 1만 달러(약 1200만원) 남짓한 드론 10대가 중동 최대 산유국의 석유 생산에 상당한 타격을 가한 것이다.
미사일의 타깃에는 대도시나 원전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해상유전도 포함된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역에선 점점이 흩어진 섬 사이로 인공 섬을 건설하고 파이프를 연결해 원유를 채취, 운송, 정유하고 있다. 만일 이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자칫 유전 지대가 불바다가 되거나 상당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의 전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란이 도발할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응 전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 요격 미사일 수요가 제기된 이유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미국산 패트리엇 계열의 요격미사일로 차단해왔는데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무기 수출을 막고 있다. 예멘에서 벌어지는 인도주의 참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전쟁부터 멈춰야 한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UAE는 무기 금수 대상은 아니지만, 패트리엇 미사일을 비롯한 미국산 무기를 마음껏 사들일 수 없다.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공급받을 수 있다.
UAE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도 한국산 ‘천궁-II’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선 국제 전략적 이유나 지정학적 가치의 하락 등으로 중동에 관심이 줄어든 미국을 대신해 중동에 첨단기술 제품 공급자로 등극할 기회다. 미사일뿐 아니라 한국산 고등훈련기인 T-50과 이를 개량한 초음속 다목적 경공격기 FA-50, 한국산 헬기인 수리온·마린온, 구축함·잠수함·고속정 등을 공급할 기회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시설 안전을 위한 보안시스템·CCTV·무인감시장치 등 다양한 수요가 있다.
중동에는 천문학적인 국방과 보안 수요가 있지만, 자체 생산 능력은 떨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2019년 6월 방한했을 당시 ADD를 비공개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연구소를 통째로 사 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체 연구개발로 기술력도 배양하고, 미 행정부의 간섭이나 미 의회의 승인 없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마음껏 확보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새로운 시대가 한국 앞에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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