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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억 추가임금 노조 승소…현대중공업 통상임금 9년 소송전

대법 “신의칙 들어 노동자 수당 배척하면 안돼”
“국내외 어려움 예견·극복 가능한 일시적 어려움”

 
 
현대중공업 노조 측이 16일 대법원 앞에서 통상임금 판결에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은 이날 노조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사진 연대중공업 노조]
최대 6000억원대의 추가임금을 두고 현대중공업 노·사가 9년 동안 벌인 소송전이 노동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전체 노동자 3만여 명을 대표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원고 승소 취지로 뒤집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동자들이 800%의 상여금과 하기휴가비, 설·추석 귀향여비 등의 명절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데도 회사가 이를 제외하고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했다며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2월분까지의 수당 차액을 청구하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해 지급해야 하는지 여부를 다뤘다.
 
쟁점은 사측이 주장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통상임금 소급분을 지급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존립이 위태롭게 되면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칙을 위반해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상여금은 2개월마다 100%씩 총 600%에 연말 100%, 설·추석 명절 50%씩을 더해 모두 800%였다. 회사는 이 상여금을 모든 종업원과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해 지급했지만 명절 상여금(100%)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했다. 회사가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2009년 12월∼2014년 5월)치 통상임금 소급분의 총 규모는 노조 추산 4000억원에서 사측 추산6000억원대에 달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정기성(정기적인 지급), 일률성(일정한 조건을 만족한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 고정성(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했다면 업적·성과 등과 무관하게 당연히 지급) 등 통상임금의 성격에 부합해 800%에 해당하는 소급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훗날 경영상 어려움 극복할 가능성 있다면 지급해야”

대법원은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신의칙을 부정해 노동자들의 손을 들었줬다. 2심은 신의칙을 인정해 사측이 승소했다.
 
먼저 1심은 노동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상여금 800%를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소급분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1심은 “저수익성, 원화 강세, 중국 조선소 등 경쟁 회사 출현 등의 이유로 회사의 경영사정이 악화했지만 이를 신의칙 위반 인정 사유로 삼아 근로자들의 불이익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어진 2심에서 재판부는 명절상여금 100%를 제외한 정기·연말특별상여금 700%는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신의칙 위반’을 적용했다. 회사가 임금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다고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업 경기 악화 등 조건을 고려했을 때, 회사가 6000억원대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면 재정적 부담이 커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기거나 회사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명절 상여금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되므로 통상임금의 요건 중 고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경영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 법정수당 배척해선 안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정기 상여금 외에 명절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기업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정 시점이 되기 전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 항목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이 관행과 다른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관행을 이유로 해당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을 배척함에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신의칙을 적용해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의 매출과 손익 등 경영상태가 2014∼2015년 무렵 악화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주요 수출처인 유럽의 경기 침체, 중국 기업의 급속한 성장세, 동종업계의 경쟁 심화 등으로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동과 불이익은 오랫동안 대규모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 예견할 수 있거나 부담해야 할 범위 내에 있고 극복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면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대법원은 판결의 의의에 대해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을 위반한 것인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정과, 일시적인 경영 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이나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다”며 “판결문을 받으면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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