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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급급해 마구 판 실손보험… ‘적자 부메랑’ 맞은 보험사

보험업계 실손보험료 평균 20% 인상 고려, 가입자들은 뒷목 잡아
2006년 이후 가입자 크게 증가...대책없이 마구 판 보험사 비판 여론도

 
 
국내 한 병원의 진료비 수납 창구 모습. 최근 실손보험 적자분이 치솟으며 보험사들이 실손보험료를 인상할 분위기다.[연합뉴스]
2000년대 이후 대거 판매된 실손의료보험은 보험사에 큰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는 ‘적자 부메랑’이 돼 돌아올 모양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병원 이용이 줄며 다소 주춤했던 실손보험 적자 상승세가 올해 다시 치솟고 있어서다.  
 
이에 보험업계는 또다시 실손보험료 인상을 준비 중이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무분별한 의료쇼핑이 진행될 동안 이를 보험업계가 사실상 묵인해왔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10년 후 실손보험 누적 적자가 113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손보험을 적자 시한폭탄으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실손 적자 3조 돌파 유력…보험료 올린다는 보험사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내년 실손보험료 인상을 준비 중이다. 금융당국과 논의가 필요해 정확한 인상율은 추후 결정되겠지만 보험업계는 평균 20% 수준의 인상을 원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미 내년 1월 실손보험 계약이 갱신되는 가입자들에게 인상분을 고지 중이다. 이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내년 실손보험료 인상 고지 청구서를 받아든 가입자들의 성토가 쏟아진다.  
 
2만원대 실손보험료를 내던 한 가입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년부터 월 보험료가 8만원대로 치솟았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보험사 실손보험 적자 원흉으로 지목되는 1세대 실손보험(2009년 10월 이전 판매) 가입자들은 기존보다 최대 3~4배 월 보험료 뛴 고지서를 받아들고 패닉에 빠진 상태다.  
 
이같은 보험료 인상은 올해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부문에서 3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취합분에 따르면 보험업계 실손보험 적자는 2017년 1조2195억원, 2018년 1조3342억원, 2019년 2조4317억원을 기록했다.  
 
[자료 업계 취합]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병원 이용량이 줄며 적자액이 2조3608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줄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실손보험 적자액이 2조원에 육박하는 등 손해가 다시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올해 실손보험 적자액이 최대 3조6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현재의 실손보험 적자가 계속되면 내년부터 2031년까지 실손보험 누적 적자가 11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합리적인 수준이 아니면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1일 "실손보험 요율 상승 시 합리적인 결정인지 들여다보고 필요에 따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보험료 인상율 조정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다. 
 

2006년부터 가입자 껑충…“이제와 가입자에 책임 전가” 비판 

2000년대 중반 이후 실손보험은 보험사들의 주력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부터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을 미끼상품으로 활용하며 다른 건강보험 상품을 대거 팔아 수익을 냈다. 2006년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해다. 먹고 살만해진 국민들이 점차 노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자 보험사들이 이 부분을 공략했다.  
 
실제로 이 시기부터 실손보험 가입자는 치솟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5년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500만명 수준이었지만 2010년 2000만명을 돌파했다. 불과 5년 만에 가입자가 1500만명 늘었다. 현재는 3800만~3900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때 실손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들이 현재 보험사 실손보험 적자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실손보험은 판매 시기, 담보구성에 따라 2009년 10월 이전 판매한 ‘표준화 이전 실손’이 1세대(구실손), 2009년 10월~2017년 3월까지 팔린 ‘표준화 실손’이 2세대(신실손)며 2017년 4월 이후 판매한 ‘착한 실손’이 3세대, 올 7월 나온 ‘보험료 차등제’ 상품이 4세대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해 보험사 전체 실손보험 적자분 중 절반은 구실손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실손보험 적자 2조3000여억원 중 1세대 실손보험 적자는 1조2000억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세대 실손보험은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진료를 이용해도 가입자 본인 부담이 0원이다. 이후 나온 2~4세대 실손보험 상품의 비급여 자기부담금 비율이 10~30%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한 이점이 있다. 당시 실손보험을 판매한 한 설계사는 "구실손(1세대)은 진료비 부담이 없었고 당시에는 사람들의 건강보험 관심도 크게 높아졌던 시기"라며 "고객에게 권하면 무조건 가입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구실손은 영업 일선에서 '못 팔면 바보' 소리 듣던 상품"이라고 밝혔다.
 
계속된 실손보험 적자로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2000년대 이후 보험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실손보험을 대거 팔았지만 이제 와 적자를 보니 손해분을 사실상 가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 등 의료기관들의 의료쇼핑 부추기기도 사실상 이를 묵인하고 용인해온 보험사의 작품이라는 비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내놓는 모든 상품은 계리 측면에서 철저히 검증된 후 출시되지만 실손보험은 적자를 이유로 벌써 네 차례나 상품이 개정됐다. 보험사들도 의료계 돈벌이에 실손보험이 이 정도로 악용될지는 몰랐던 셈"이라며 "결국 1~2세대 가입자들의 의료쇼핑이 완연해진 것은 이러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팔아온 보험사 잘못이 크다"고 밝혔다.
 
1세대 실손보험 적자액이 커진 보험사들은 경품까지 내걸며 이들 가입자의 4세대 실손 갈아타기를 권유 중이다. 1세대 가입자 비중을 줄일수록 실손보험 적자가 줄어들 수 있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중 1세대 비중은 약 24% 수준이다. 보험업계는 1세대 가입자 비중을 10%대로 낮추길 기대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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