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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 수리해 탄소 줄이자는 이재명…유럽·미국은 진행중

[대선주자 경제정책] 탄소 배출 감축 방안
“전자제품 수명 1년 연장하면 400만t 탄소 저감 효과”
바이든 “소비자 수리권 강화”에 애플·MS도 정책 수정
국회 법안 발의돼, 업계 “품질 저하, 소비자 피해 우려”

 
 
전자제품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고쳐 쓰자는 ‘소비자 수리권(right to repair)’이 주목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재명 “생활용품 수명 연장해 탄소 줄이자”
지난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43번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소비자 수리권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자·가전제품의 수리용 부품 보유 의무를 확대하고, 관련 매뉴얼을 보급해 소비자가 편리하게 제품을 고쳐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휴대폰·노트북 등 전자제품 수명을 1년 연장하면 무려 자동차 200만 대가 배출하는 400만t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생활용품 수명만 연장해도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주요 생활용품의 소모성 부품 보유, 판매 기간을 현행보다 늘리거나 새로 도입하겠다”며 “정부는 기업이 효율적인 부품 보유와 수리 편의를 위한 제품 규격화에 나설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일하는 여성을 위한 스타트업 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후보가 언급한 탄소 저감 효과는 유럽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럽환경국(EEB)은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의 수명을 1년 연장할 경우 2030년까지 매년 21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10만t의 이산화탄소는 1년 동안 1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맞먹는다. 
 
유럽환경국이 이 같은 연구결과를 내놓은 이유는 스마트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 미국 CNN은 애플이 아이폰13 1개를 만드는 데 광물 채굴부터 정제, 부품 생산, 조립, 배송까지 총 64㎏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20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인 12억5000만 대를 곱하면 매년 스마트폰 구매로 약 8000만t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얘기다. 스마트폰 사용 수명이 늘어나면 탄소 배출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유럽환경국(EEB)은 지난 2019년 스마트폰을 포함해 가전제품의 수명을 늘릴 경우 발생하는 효과도 발표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의 스마트폰·노트북·세탁기·진공청소기 등의 재고 수명을 5년 연장하면 2030년까지 매년 거의 1000만t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자동차 500만 대를 1년 동안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동일한 효과라는 것이 유럽환경국의 설명이다.
 

미 정부 압박에 폐쇄적 관리서비스 고집했던 애플도 백기  

가전제품 수명 연장의 탄소 저감 효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논의는 자연스럽게 버리는 대신 수리해서 쓸 수 있는 ‘소비자 수리권’으로 옮겨졌다. 해당 이슈가 주목받은 이유는 환경적인 이익 이외에 소비자 권리 보호에도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은 업체의 서비스센터나 공인 협력업체를 통해서만 수리를 할 수 있게 해왔다. 이 같은 독점적인 수리로 인해 수리 비용이 상승하고 수리 기간도 길어져 고쳐 쓰기보다 새 제품 구매를 늘어나게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 소비자 공익연구 단체인 US PIRG에 따르면 제품을 교체하는 대신 수리할 경우 한 가구당 연간 약 330달러를 절약할 수 있으며, 이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했을 경우에는 약 400억 달러(약 47조원)가량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애플스토어 여의도점의 모습. [연합뉴스]
이미 해외에서는 속속 관련 법령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소비자들이 전자기기를 수리해 사용할 권리를 확보할 것을 촉구하고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의 수리 제한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애플의 폐쇄적인 사후관리(A/S) 정책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주별로 따지면 지난해에만 총 27개 주에서 수리할 권리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에 이어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관련 법 집행 강화를 선언하자 애플도 한발 물러섰다. 올해부터 부분적으로 셀프 수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 하지만 수리 가능 소비자가 전자제품 수리 지식과 경험이 있는 소비자로 한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수리권 확대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MS는 올 연말까지 소비자 수리권 확대를 위해 비영리단체 ‘애즈유소우 (As You Sow)’와 협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디오 게임기 엑스박스(Xbox) 등 MS의 하드웨어 장비의 수리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이는 미 행정부의 법 집행 강화와 수리권 보장을 촉구하는 주주 결의안 제출에 따른 결과다.  
 

해외는 이미 법 시행하는데 국내 업계는 반대 목소리만  

유럽연합의 경우 지난해 3월, 10년간 부품을 보관하고 수리 설명서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수리권 보장법을 시행했다. 현재 세탁기, 냉장고, TV 등에 적용 중인데 향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대상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개별 국가로 따지면 프랑스는 일부 전자기기에 ‘수리 가능성 지수’를 표시하도록 했다. 영국은 지난해 7월부터 일부 전자기기에 대해 예비부품을 7년 또는 10년 동안 제공하도록 하는 수리권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지난해 9월 김상희 국회부의장(민주당)은 휴대폰 수리에 필요한 부품, 매뉴얼, 장비 등의 공급이나 판매를 거절하거나 지연하는 행위, 수리를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운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업계는 ‘소비자 수리권’ 확대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해당 법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사설 수리업체를 통해 휴대폰을 수리할 경우, 수리 품질 저하, 수리비 상승 등으로 고객 효익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비정품·모조품 사용으로 인한 부실 부품 유통, 수리 후 소비자에 대한 안전상 피해 발생, 개인정보 관련 미흡한 처리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 숍. [연합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비슷한 입장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누구에게나 휴대폰 수리에 필요한 부품, 매뉴얼, 장비 등을 제공한다면 수리된 휴대폰의 안전성, 정합성 또는 기능성이 손상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제조사가 부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누가 사설업체의 수리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역시 ▶소비자 안전 관련 피해 증가 ▶제품 고장 발생 ▶각종 피해 관련 책임 소재 분쟁 등의 이유를 들며 법률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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