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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리더들이 ESG 경영에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 [신지현의 ESG 수업]

대기업들 앞다퉈 세계경영에 ESG 도입
중소기업·스타트업·사회적기업으로 확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은 과거 국내에서 일어난 낙동강 폐수 유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마을 주민이 겪는 피해와 이를 은폐하려는 기업 관계자, 기업의 압박을 받는 미디어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 들여다보면 직장 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대졸과 고졸 직원의 역량과 관계없는 학력 기반 차별, 국내 기업의 평판을 떨어트려 낮은 가격에 인수하려는 글로벌 자본의 꿍꿍이까지 등장한다. 이를 보다 보면 웃다가도 이내 씁쓸해진다. 이 이야기가 실화에 기반을 뒀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공업단지에 있는 두산전자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그해 3월 14일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t과 1.3t이 낙동강으로 유출되어 대구의 상수원으로 유입되었다. 악취가 심해 시민들이 신고했지만, 취수장에선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페놀은 염소와 반응하면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 수돗물은 페놀로 급속히 오염되었고, 낙동강을 타고 흐른 페놀은 하류의 밀양·함안 등을 넘어 심지어는 부산 상수원에서도 검출되어 낙동강 유역 전체로 ‘페놀 쇼크’가 번졌다. 매일 써야 하는 수돗물을 못 믿어 불법 생수 시장과 정수기 사업이 활성화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대구광역시를 비롯해 낙동강 주변의 피해 지역에서는 두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고, 뒤늦은 조치들이 이어졌다. 조사 결과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이 구속되었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었다. 또 당시 두산그룹의 박용곤 회장이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 일로 인해 두산그룹은 OB맥주를 비롯한 각종 소비재 관련 계열사를 대거 매각하면서 소비재 산업에서 철수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중공업 분야로 진출해 그룹 전체 성격이 바뀐다. 마치 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한 그룹의 수십 년간 이어온 비즈니스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한국형 ESG 캠페인 포스터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ESG, 기업 평판·주가에도 영향 미쳐

2020년대인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기업의 부정적 이슈가 순식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장악하고 기업의 평판뿐 아니라 주가에도 바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지금은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ESG)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ESG 공시 지표 중 ‘GRI 306: 폐수와 폐기물’이 있는데, 만약 당시 두산그룹에서 이 지표를 잘 준수했다면 페놀 유출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투자사들이 ESG 지표를 유심히 보고, 조직의 선장 역할을 하는 리더들이 좋은 ESG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ESG 경영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세계 경영을 하는 대기업들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K-ESG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중소·중견 기업의 공급망 ESG 리스크 관리를 위해 나섰다. 
 
공급망 실사 제도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이고, K-ESG 경영 지원 플랫폼을 마련해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ESG 경영과 평가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 종합 지원 허브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동향과 이슈를 제공하고, 업종·직군별 온라인 교육을 실시해 자사의 ESG 수준을 진단하고 모의 평가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여 자가 모의 평가를 진행한 기업에 대해서는 동일 업종과의 비교 컨설팅도 제공한다고 한다.
 
이렇게 대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ESG 경영을 견인하다 보니 중소·중견 기업과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등에도 ESG에 대한 중요성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비즈니스 경영에 있어 ESG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되다 보니 미디어나 외부 행사를 통해 그 중요성을 인지한 리더가 먼저 기업 내부에 ESG 경영 도입과 추진에 대한 요구를 하게 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전문가 채용과 전략적 포지션 고민해야

당장 우리 회사에서 ESG 경영을 시작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가장 먼저 과제를 받게 되는 곳은 ‘지속가능경영’과 관련된 현업 부서일 것이다. 대체로 CSR 부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수준의 인력 규모가 아니라면 CSR이나 ESG 관련 전담 책임자를 두고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전략기획·인사팀·홍보팀·마케팅팀 등에서 ESG 담당 업무를 겸임하기도 한다. 하지만 ESG 경영을 기업 전반에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지원 부서로서의 포지션보다는 비즈니스 통찰력을 가진 임원급 의사결정권자가 여러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전략적으로 사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회사 설립과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친 빈센트 스탠리 파타고니아 철학 담당 임원처럼 진정성 있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파타고니아에서 옷을 만들 때 발생하는 화학제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1996년부터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제작하는 의사결정을 했을 때처럼 ESG 경영을 하다 보면 비즈니스 이익과 지속가능한 ESG 경영으로의 의사결정이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조직의 경영철학이나 거버넌스 체계가 기업이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승인을 받아야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구조라면 ESG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조직이 아니고서야 이익을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의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에서는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CSO는 기업의 비즈니스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ESG 경영에 맞는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접목하여 다양한 부서와 협업한다. 따라서 현업 부서가 담당하게 될 경우, 해당 부서의 책임자를 의사결정권자 포지션으로 격상하거나 전문가 신규 채용 시 여러 부서와 협업할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션으로 배치하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는 맞춤형 정책 추천-신청 서비스 스타트업 웰로의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다. 자칭 ‘Sustainfluencer’(지속가능성을 위해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부르며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마케팅 분야에서 20년간 쌓은 경험을 토대로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끝내는 ESG 수업’이 있다.
 

신지현 웰로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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