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영끌족, 금리 인상 집값 하락에 망연자실 [기준금리 3% 시대 그림자③]
매수심리 얼어붙고 거래도 끊겨
가격 낮춰 팔고 싶어도 못 팔아
금리 연속 인상에 이자부담 급증
깡통전세·하우스푸어 증가 우려
#. 직장인 김모씨는 2년 전 집값 급등을 보며 영원히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아파트 매수를 결정했다. 매매가격의 일부는 세입자 전세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로 매입에 성공했다. 당시 김씨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본인은 근처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생활하면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집값과 전세값이 하락하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월세도 인상될까 숨이 막힐 지경이다.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약 10년만에 3%를 넘어서면서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을 정도의 거액 대출자)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부동산 침체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들이 패닉셀링(panic selling 공포에 쫓긴 투매)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최근 매수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역(逆)전세난까지 본격화되면 무리한 갭투자(전세를 낀 매수)로 벌어지는 ‘깡통 전세’, ‘하우스푸어’ 급증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이어 주담대 변동금리와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지난 18일부터 연 최고 7%를 돌파했다. 은행 변동형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신용대출 등의 준거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가 한 달 새 0.44%포인트나 뛰며 10년여만에 최고 3.40%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이달 12일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은 데다 다음 달 추가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까지 예고되면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금리 인상 등의 여파에 매수심리가 위축되며 거래절벽이 지속되고 있다. 거래가격을 낮춘 ‘급급매물’만 극소수 팔리면서 실거래가지수도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실거래가지수에 따르면 서울은 올해 1~8월 누적 하락률이 -6.63%를 기록했다. 이는 부동산원이 2006년 실거래가지수 산출을 시작한 이래 1∼8월 기준 가장 큰 낙폭이다. 전국 아파트 실거래지수도 올해 8월 1.88% 떨어져 8월까지 누적 하락률이 -5.16%에 달했다.
특히 20·30세대 영끌 투자자가 대거 몰렸던 ‘노도강’(서울 노원구·도봉구·강북구)을 비롯해 강북지역 중저가 아파트 단지들의 하락세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노원구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8월까지 누적 2.33% 떨어져 서울에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어 ▶성북구 -2.13% ▶도봉구 -1.99% ▶은평구 -1.93% ▶서대문구 -1.84% ▶강북구 -1.78% 등 강북지역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몇 년 새 집값 급등기에 영끌 투자자들이 ‘패닉바잉’(panic buying 공황구매)에 나서면서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집중됐다. 노원구 아파트는 20·30세대의 매입 비중이 2019년 31.5%에서 2020년 38.6%로 높아진 뒤 지난해 49.3%까지 치솟았다. 노원구는 최근 극심한 거래 감소 속에서도 올해 8월까지 20·30 매입 비중이 51%선까지 뛰었다.
패닉바잉서 ‘패닉셀링’으로…이자 급증에 ‘하우스푸어’ 우려
하지만 최근 부동산 불패 서울지역도 집값 하락 움직임과 매수세 둔화가 이어지며, 이 일대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원구 상계동 일대는 주택형에 따라 시세에서 1억∼2억원 떨어진 매물만 겨우 팔릴 정도다.
전문가들도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 집값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MZ세대(1980·1990년대 출생)의 영끌·빚투 대상이었던 중소형·중저가 아파트도 금리 부담에 하락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가파른 집값 상승에 놀라 내 집 마련에 나선 20·30세대가 막차를 탄 셈이 됐다. 15억원 이하 단지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강북이라 대출이 가능해 20·30세대들이 저금리를 활용해 주택투자에 나섰던 것이다.
문제는 영끌족들 대부분이 대출로 구입 자금을 마련한 탓에 이자 부담이 커지고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가 갭투자로 아파트를 매수해 역전세난 심화에 따른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데다, 전세가가 낮아지고 대출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울 때 내줄 전세 보증금 마련도 어렵게 돼서다.
기존 세입자가 계속 머물면 집주인이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만큼 세입자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주거나 세입자의 전세대출 이자를 내주겠다는 제안도 한다.
무주택 갭투자들의 상황은 더욱 빠듯하다. 고강도 대출 규제 속에 기준금리가 낮을 때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갭투자가 성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갭투자로 인해 집값 상승기에는 전세가와 집값을 밀어 올리며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했다면, 금리 인상기에는 이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깡통전세 부담까지 생기게 됐다.
깡통전세는 집주인이 은행 대출금 이자를 계속 연체하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버리면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사람이 전세보증금을 잃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깡통 전세의 증가는 전세대출 부실화와 가계대출 위험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갭투자한 집주인이 다른 집에서 월세로 사는 경우라면 월세 부담도 가중된다. 금리 인상에 따른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월세금액도 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하우스푸어 사태가 10년만에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2~2013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침체기가 오면서 대출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진 하우스푸어가 사회문제가 됐다. 집을 갖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에 빈곤하게 살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교수(금융부동산학과)는 “작년과 재작년에 무주택 갭투자가 성행했다. 정작 자기 집은 없는데 집을 사뒀다”며 “본인 전세 대출 이자 부담은 늘었는데, 전세값이 내려가면서 세입자에게 전세금 내줄 여력은 안 되고 집이 팔리지 않으니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정말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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