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욱 의장 “메디테크업계 애플이 목표…3년 내 흑자 전환”
[인터뷰] 백승욱 루닛 의장
국내 최대 스타트업 행사 ‘컴업2022’ 연사로
“기업 성장 비결은 ‘사람’, 역할 위임 빠를수록 좋아”
“이제 인공지능(AI) 기업이란 수식어론 루닛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현재 의료기술(메디테크·MediTech) 기업으로 전환이 80% 이상 진행됐다고 봅니다. 메디테크 기업의 강점을 살려 3년 내 흑자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죠.”
백승욱 루닛 이사회 의장을 국내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컴업2022 현장에서 지난 11일 만났다. 해당 행사의 연사로 오르기 전 기자와 만난 백 의장은 거석(巨石)과 같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부드럽게 전달하면서도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루닛은 스타트업계에서 ‘좋은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AI로 암을 정복하겠다’는 포부로 2014년 루닛을 설립한 백 의장은 그간 ▶1600억원 투자 유치 ▶기업공개(IPO)를 통한 코스닥시장 상장 등을 이끌었다. 백 의장은 창업 9년 만에 숱한 스타트업이 목표로 삼는 상장을 지난 7월 달성했다. IPO 후 4개월, 행사장엔 그의 생생한 얘기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백 의장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없는 시간을 내 컴업2022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백 의장은 스타트업계 동료·후배들에게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루닛은 6명에서 시작한 회사예요. 현재 3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한 기업이 됐죠. 비결은 ‘사람’에 있어요. 이제 막 회사를 꾸리셨거나, 규모를 키우고 있으신 대표님들께 ‘팀에 투자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의료 AI 개발이란 사업적 특성상 학구적이고 진정성을 갖춘 구성원이 필요했고, 여기에 맞춰 사람을 모으니 사업이 자연스럽게 커갔어요. 루닛의 방식을 답습할 필요는 없지만, 각자 사업적 특성에 맞춘 팀을 구성하는 게 사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단순한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백 의장은 또 스타트업이 사업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선 ‘역할의 위임’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 초기 구성원은 일당백의 역할을 하곤 하는데, 인원이 늘어날수록 업무의 분배를 더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며 “한 사람이 계속해서 일을 잡고 있으면 조직의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직원 개개인의 오너십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백 의장이 지난 2018년 10월 대표직을 위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 의장은 당시 서범석 의학총괄이사(CMO)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줬다. 서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백 의장은 “루닛이 점차 메디테크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선 엔지니어인 제 역량보단 의료 전문가의 경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메디테크 기업 루닛을 만들기 위해선 이사회 의장 자리로 물러나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스스로 세운 ‘역할의 위임’이란 원칙을 지킨 아주 쉬운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IPO 후회 없다…수익성 개선 문제 해결할 것”
백 의장 역시 루닛의 IPO 일정을 고민했지만, 계획 변동 없이 상장을 추진했다고 한다. IPO를 끝이 아닌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닛의 최종 목표는 암을 정복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할 일이 많겠어요. 10년~20년 가는 회사가 아니라 100년 넘는 기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부 상황을 고려해 IPO 일정을 생각하기보다 기업의 일정만을 생각했어요. 공모 자금이 줄어들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영향은 없다고 판단했죠. 7월 IPO 진행에 대해선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백 의장은 루닛이 현재 마주한 수익성 개선 문제도 곧 해결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AI 제품들의 정확도가 현재와 같은 추세로 고도화된다면, 수익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과실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루닛은 현재 ‘확보한 기술을 어디에 쓰는가’를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 ‘의료 진료·진단에서 AI 기술을 어떻게 설득하고 외연을 확장하는가’를 추진하는 단계”라며 “이는 우리가 AI기업이 아닌 메디테크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백 의장의 이 같은 비전은 최근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루닛은 상장 후 첫 실적발표에서 사업 외연 성장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써냈다. 연결기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99억23000만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매출(66억3900만원)을 돌파했다. 2020년에 연간 매출이 14억3000만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회사는 올해 3분기에만 44억46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이 중 해외 매출은 40억76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배 증가했다. 회사는 4분기에는 건강검진 수요가 많이 증가하고, 의료기관의 연 단위 계약갱신 등으로 매출 쏠림 현상이 발생해 실적 상승 폭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수익성 개선은 여전히 백 의장에게 남아있는 숙제다.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루닛의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369억6400만원이고, 이 기간 당기순손실 역시 237억원으로 나타났다.
백 의장은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장했는데, 회사별로 실질적 매출 발생이 나타나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며 “제품이 시장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기간은 3년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닛은 현재 ▶GE헬스케어 ▶필립스 ▶후지필름 등 세계 의료기기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 적자 상태를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백 의장의 설명처럼 루닛은 제품을 공급할 고객사를 지속해서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첫 출시한 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제품군은 현재 약 1000개의 다양한 세계 의료기관에서 도입한 상태다.
백 의장은 “여타 AI 기반 회사들과 달리 루닛은 의료 시장이란 특성을 반영해 근거 기반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느릴지라도 신중한 접근을 취했기 때문에 의료학계에서도 신뢰성과 경쟁력을 입증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I가 암을 정복할 수 있다는 점엔 일말의 의심도 없다. 루닛은 이를 해낼 기업”이라며 “지금과 같이 신중한 태도로 사업을 추진, 메디테크업계에서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이 되는 게 현재 그리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두용 기자 jdy22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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