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38년 만에 사라진다”…길어진 ‘소비기한’ 두고 엇갈린 시선
식약처 내년 1월 1일부터 소비기한 표기제 시행
유통기한은 사라져...소비자 중심 제도 도입
기업 준비 기간으로 계도기간 1년, 우유는 제외
내년 1월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기될 예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영업자 중심의 유통기한에서 소비자 중심의 소비기한 표시제로 변경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소비기한 표시제를 예고했다. 이 제도는 기존 유통기한으로 인해 음식 폐기량이 많아지는 것을 줄이기 위해 고안됐다. 1985년부터 이어온 유통기한 표기가 38년 만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유통기한보다 길게…섭취 가능한 마지막까지
기존보다 길어진 기한 설정을 앞두고, 식약처는 제조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품목별 참고값을 제시하기도 했다. 식약처가 지난 1일 발표한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설정 보고서’에 따르면 두부의 참고값은 23일, 과자는 81일, 과채주스는 35일, 빵류는 31일, 어묵은 42일, 햄은 57일 등으로 설정됐다. 이는 각각 기존 유통기한보다 두부는 6일, 과자는 45일, 과채주스는 15일, 빵류는 11일, 어묵은 13일, 햄은 19일 등이 늘었다. 식품 판매 기간이 늘어나면서 유통업체는 식품 폐기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내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식품폐기 감소로 인한 탄소 중립 실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비기한 재설정해야 하는 기업은 ‘부담’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보관 방법에 따라 금방 상할 수 있는 제품인데, 소비자들이 소비기한만 믿고 변질 제품을 섭취할까 봐 걱정”이라며 “시행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비기한 관련 소비자 교육이 정부차원에서 철저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38년간 유지했던 유통기한을 버리고, 새로운 기한을 설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식약처가 품목별 참고값을 제시했지만, 소비기한 설정은 식품제조사의 자율 책임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조기업은 각 판매제품의 특성과 유통과정 등을 살피고, 식품별 실험 등을 거쳐 식품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소비기한을 직접 정해야 한다. 특히 이는 비교적 규모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과정이다.
새로운 제도 시작에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실제 온라인상에서는 보관 기간이 길어진 만큼 ’식품 안전성이 떨어진다’ ‘유통기한 늘리려는 속셈 아니냐’라는 부정적 인식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까지 계도기간 설정·우유는 제외
식품 안전성을 고려해, 소비기한 표기제 품목에서 일시적으로 제외한 품목도 있다. 식약처는 우유는 이번 시행에서 제외하고, 최대 2031년까지 유통기한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우유는 다른 식품보다도 더 철저한 냉장 유통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냉장 유통라인이 소비기한을 도입하기에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내년 소비기한 표기제 시행을 앞둔 정부는 계도기간 이후에는 제도를 불이행하는 기업에는 행정처분 등 강력한 불이익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유럽·미국·일본·호주 등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소비기한을 도입한 만큼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소비기한 표기제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
식약처 측은 “소규모영업자 등 지원을 위해 연구용역사업을 통해 200개 식품 유형에 대해 권장소비기한을 설정해 보급할 계획”이라며 “38년 간 시행해 온 유통기한 제도를 한번에 바꾸기 어렵겠지만, 소비기한은 식량낭비를 감소하며 소비자에게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이점이 뚜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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