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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만원’ 낙찰 작품이 2년 만에 ‘1억’…예술과 가치를 잇다 [이코노 인터뷰]

[격변의 미술시장]③ 필립스 옥션, 서민희 한국사무소 대표
한국 시장 힘주는 필립스 옥션, 현대미술·MZ겨냥 차별화
작가의 독창성·주요작 선택 중요…미술시장 다각화에 기여

서민희 필립스 옥션 한국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설아 기자]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단순한 연결고리뿐 아니라 작품에 담긴 가치와 잠재력까지 끄집어 내 준달까. ‘세계 3대 경매사’로 손꼽히는 필립스 옥션의 한국 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서민희 대표 얘기다. 케이옥션에서 12년 간 근현대 미술 부문 스페셜리스트이자 이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필립스옥션 한국의 새 수장으로 임명됐다. 

이제 막 취임 100일을 넘긴 그를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사운즈한남에 위치한 필립스 옥션 한국 사무소에서 만났다. 직책은 대표지만 그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경매 상품 소싱부터 스타작가 발굴, 경매 프리뷰 준비까지 글로벌 본사와 소통하며 열정을 쏟고 있다. 관심과 안목, 그리고 가치. 미술시장 경매업에 있어서 그가 정의하는 키워드는 이렇게 정리된다. 

미술 DNA…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다 

“학부에선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어요. 대학 시절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당시에 셀 수 없이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다녔거든요. 그 후 돌아와서 듣게 된 미술사 수업이 저한테 너무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졸업 후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 미술관, 뉴욕의 재팬 소사이티 갤러리 등에서 일하면서 미술적 감각을 키웠어요.” 

미술과 관계없이 살아온 그가 작은 관심에서 시작해 평생의 업을 만나게 된 일화다. 서 대표는 작품이 주는 힘과 울림을 깨달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 케이옥션에 입사했고, 본격 미술경매 시장 업무를 봤다. 

물론 당시 시장 상황은 척박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3대 경매사(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옥션)에 비해 국내 미술 경매회사는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았다. 작품도 다양하지 못했다. 미술 경매에 대한 대중 인지도 역시 낮았다. 

서민희 대표가 지난 10일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위탁받은 제품이 입고되면 cm를 재는 업무부터 봤어요. 20명에 그쳤던 직원 수가 제가 나올 때 쯤 100여명까지 늘어났으니 지난 10년간 국내 미술시장이 얼마나 커진건지 감이 오실 거예요. 작품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늘어났다고 봐요. 미술이 이제 하나의 대체자산으로 자리잡은 거죠.” 

실제 서 대표가 한 고객에게 추천한 정상화 작가의 작품은 2년 만에 몸값이 10배 이상 뛰기도 했다. 2013년 온라인 경매 시작가 650만원에 구입한 작품이 2년 뒤 6200만원에 낙찰됐다. 몇 달 뒤 비슷한 사이즈의 작품은 낙찰가 1억원을 넘어 섰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미술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분명한 건 저는 해당 작품의 가치를 높게 봤어요. 일본에서 활동해오던 작가의 이력과 작가의 작품 시리즈 중에서도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작품을 선택하는 저만의 기준과 원칙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작가의 독창성, 그리고 해당 작가의 대표작을 선정하는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세계 시장서 인정받은 ‘안목’…한국에 적용하다 

서 대표는 이러한 관심 속 국내 미술경매 시장이 점차 안정화를 찾아갈 것으로 봤다. 필립스 옥션과의 시너지 측면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국내 유망 작가들을 발굴해 국제무대에 소개하고 동시에 세계 뛰어난 작품을 국내 시장에 선보이는 미술시장 다각화 측면에서다. 

서 대표가 말하는 필립스 옥션의 파워는 차별화 된 안목이다. 20, 21세기 현대미술과 MZ(밀레니얼+Z세대) 컬렉터에 강점을 가진 필립스 옥션은 작은 분야안에서 역동적인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경매 카테고리도 단순하다. 현대미술을 포함해 시계, 보석, 디자인·가구, 사진·에디션(판화) 등 6개 카테고리만 있다. 시계 분야에선 세계 경매 1위 명성을 갖고 있다. 2021년부터는 시계 경매분야 낙찰률이 100%다. 

같은 맥락에서 필립스 옥션은 한국 시장에 더 힘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미술 시장인 데다 과거부터 현대미술에 대한 한국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아서다. 실제 필립스 옥션 한국 사무소는 지난 2018년 한국 미술시장에 진입한 이후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지난해 한국 컬렉터의 경매낙찰률은 전년 대비 323% 증가했고, 프라이빗 세일도 전년 대비 90% 성장세를 보였다.

미술시장 첫 걸음…작품의 가치를 읽는 일 

서 대표는 미술투자에 대한 진정한 가치도 함께 알려나갈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미술 투자에 대해 물어오지만 그가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단순히 수익을 목표로 미술작품을 좇기 보다는 작품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찾을때 비로소 제대로 된 투자가 가능하단 설명이다. 

“미술품 투자라는 말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미술 생활을 할 때는 작품을 걸어두고 집에서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거든요. ‘우리가 함께하는 공간’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구매하는 거죠. 그렇게 개념을 바꾸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는 일이 될테니까요.”

서민희 필립스 옥션 대표가 한국 사무소 내 작업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서 대표는 미술경매가 가치를 읽는 예술 산업이라는 점을 여러번 언급했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오를 수도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작품을 충분히 즐기고 감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투자’라는 설명이다. 

중장기적 비전은 시장 다각화다. 서 대표는 한국 사무소를 이끌면서 기존에 잘 알려진 작품 외에도 유망 작가들을 발굴해 국제무대에 소개하고, 동시에 세계의 뛰어난 작품을 국내 시장에 선보이며 미술시장 다각화에 힘쓸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고객들이 필립스 경매를 통해 미술 작품, 시계, 주얼리 등을 위탁하고 구매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게 목표다.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 시장을 보는 안목,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읽는 일. 서 대표의 최종 목표는 ‘진짜 컬렉터’를 많이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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