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호’ 아닌 ‘송태섭’…슬램덩크에 숨겨진 마케팅 비밀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철저한 마케팅으로 기획된 영화 ‘더퍼스트 슬램덩크’
브랜드 콜라보 홍보 전략부터 새로운 이야기 구성까지
강백호, 서태웅에 가려진 조연에 조명하며 공감 이끌어
[허태윤 칼럼니스트]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이 ‘더퍼스트 슬램덩크’로 오랜만에 자존심을 세웠다. 일본을 비롯해 한국, 아시아 전역이 26년 만에 ‘슬램덩크’ 신드롬에 빠졌다.
1990년대 초부터 7년간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점프’에 연재돼 당시 일본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만화 ‘슬램덩크’가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해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한국, 대만, 홍콩, 마카오 동아시아에 다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늦게 개봉한 중국에서도 흥행 성적이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이었던 ‘너의 이름은’의 매출을 이미 넘어섰고 관람객도 300만명을 넘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최고 기록인 367만명을 갈아 치우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수입사는 이 기세를 몰아 오는 4월 관객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아이맥스(IMAX)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하나의 콘텐츠 소스로 다양한 분야에서 지적재산권(IP)을 이용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효과도 주목할만하다.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여의도 ‘더 현대’에 팝업스토어가 열리자, 덕후들이 몰려 때아닌 ‘오픈런’이 일어나기도 했다. 앞줄에 서기 위해 영하 17도의 밤에 인근에 노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한 옛 슬램덩크 마니아
이 영화의 성공에는 일본에서의 색다른 사전 마케팅 힘이 크다. 호기심과 기대감을 증폭시킨 세밀한 예고 영상 발표, 스포츠화 브랜드와의 협업이 상업적으로도 완벽하게 조화된 포스터로 공개되는 등 참고할 대목이 많다. 일본에서 이 영화가 마케팅을 시작한 것은 1년 전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 티저 마케팅을 시작했다.
개봉 5개월 전인 7월 7일 7시에 포스터를 공개했다. 주인공 송태섭(원작명 미야기 료타)의 등번호 7번을 의미하는 날과 시간을 공개 날짜로 정했다. 이날 예고 영상을 발표하면서 스토리의 중심이 강백호(원작명 사쿠라기 하나미치)에서 송태섭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날 농구장 나무 플로어 소재 위에 주인공 5명 이미지가 공개됐는데, 공개한 방식도 특이했다. 스포츠화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포스터를 공개한 것이다.
포스터는 영화 속 농구화를 간접광고(PPL) 한 아식스, 컨버스, 나이키의 일본 시부야, 하라주쿠 플래그십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이때 한 매장에 하나의 캐릭터 포스터만을 설치해 모든 캐릭터를 보려면 모든 매장을 둘러보도록 기획했다. 일종의 게임 속 임무 수행 방식을 빌려 매장의 내장객을 늘리고, 관객들의 본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이번 영화의 성공은 철저히 계획된 마케팅 전략의 결과로 보인다. 90년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권 국가에 농구 붐을 일으켰던 연재만화 ‘슬램덩크’를 읽고 자란 세대들이 30~40대로 성장하자 이들의 구매력에 주목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이 만화책은 1억2000만권이 팔렸고, 한국에서도 1450만권이 팔렸다. 이런 현상은 중국,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번졌다. 마치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난 MZ세대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고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포켓몬 빵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마케팅 흐름과 이어진다.
미완성 이야기, 현대적 공감으로 채워
연재 중 절정에서 끝난 원작이 완결구조가 아니라 미완성이라는 점도 힘이 됐다. 심리학에서 ‘자이가르닉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로 불리는 이러한 심리로 인해 영화의 개봉 소식과 함께 당시 팬들의 답답함과 기대감이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이다. 거기에 현시대의 뛰어난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더해지면서 옛 만화 슬램덩크의 추억을 간직한 30~40대뿐 아니라 20대, 심지어 10대 자녀들과 같이 보는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만화의 원작자이자 이번 영화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105개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진 긴 원작 중 영상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시합을 영화의 소재로 선택했다. 강백호, 서태웅 등 다른 주인공에 가려져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북산고의 단신 포인트 가드 ‘미야기 료타(송태섭)’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단신의 핸디캡과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슬픈 가족사를 가진 송태섭의 이야기는 기존의 독자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해 흥미를 자극하고, 원작의 긴 에피소드를 모르는 10~20대도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또 다른 완결 구조의 서사를 제공한다. 90년대 영웅 서사는 강백호와 같은 완전한 강자가 그 중심에 있었지만 오늘의 영웅 서사는 신체적, 정신적 결점을 가진 주인공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언더독의 이야기가 훨씬 힘이 있다는 것을 감독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송태섭이 번번이 실패했던 산왕공고의 압박 프레스 수비를 뚫고 빠져나와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이다. 죽은 형에 대한 그리움도 사실 농구를 통해 넘지 못한 형의 존재감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어쩌면 이 시대 청춘 모두는 각자가 마음 속에서 산왕전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두 앞에는 넘지 못하는 콤플렉스 장벽이 가로 놓여 있기도 하다. 이 영화의 미덕이자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이 시대 청춘이 마음속에서 치르고 있는 산왕전에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압박 수비와 콤플렉스를 뚫고 멋지게 슬램덩크를 성공시키는 꿈을 심어준 것이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한신대 IT 영상콘텐츠학과 교수. 광고회사와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경험했다. 금년 10월, 열리는 애드아시아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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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부터 7년간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점프’에 연재돼 당시 일본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만화 ‘슬램덩크’가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해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한국, 대만, 홍콩, 마카오 동아시아에 다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늦게 개봉한 중국에서도 흥행 성적이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이었던 ‘너의 이름은’의 매출을 이미 넘어섰고 관람객도 300만명을 넘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최고 기록인 367만명을 갈아 치우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수입사는 이 기세를 몰아 오는 4월 관객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아이맥스(IMAX)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하나의 콘텐츠 소스로 다양한 분야에서 지적재산권(IP)을 이용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효과도 주목할만하다.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여의도 ‘더 현대’에 팝업스토어가 열리자, 덕후들이 몰려 때아닌 ‘오픈런’이 일어나기도 했다. 앞줄에 서기 위해 영하 17도의 밤에 인근에 노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한 옛 슬램덩크 마니아
이 영화의 성공에는 일본에서의 색다른 사전 마케팅 힘이 크다. 호기심과 기대감을 증폭시킨 세밀한 예고 영상 발표, 스포츠화 브랜드와의 협업이 상업적으로도 완벽하게 조화된 포스터로 공개되는 등 참고할 대목이 많다. 일본에서 이 영화가 마케팅을 시작한 것은 1년 전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 티저 마케팅을 시작했다.
개봉 5개월 전인 7월 7일 7시에 포스터를 공개했다. 주인공 송태섭(원작명 미야기 료타)의 등번호 7번을 의미하는 날과 시간을 공개 날짜로 정했다. 이날 예고 영상을 발표하면서 스토리의 중심이 강백호(원작명 사쿠라기 하나미치)에서 송태섭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날 농구장 나무 플로어 소재 위에 주인공 5명 이미지가 공개됐는데, 공개한 방식도 특이했다. 스포츠화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포스터를 공개한 것이다.
포스터는 영화 속 농구화를 간접광고(PPL) 한 아식스, 컨버스, 나이키의 일본 시부야, 하라주쿠 플래그십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이때 한 매장에 하나의 캐릭터 포스터만을 설치해 모든 캐릭터를 보려면 모든 매장을 둘러보도록 기획했다. 일종의 게임 속 임무 수행 방식을 빌려 매장의 내장객을 늘리고, 관객들의 본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이번 영화의 성공은 철저히 계획된 마케팅 전략의 결과로 보인다. 90년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권 국가에 농구 붐을 일으켰던 연재만화 ‘슬램덩크’를 읽고 자란 세대들이 30~40대로 성장하자 이들의 구매력에 주목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이 만화책은 1억2000만권이 팔렸고, 한국에서도 1450만권이 팔렸다. 이런 현상은 중국,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전역으로 번졌다. 마치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난 MZ세대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고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포켓몬 빵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마케팅 흐름과 이어진다.
미완성 이야기, 현대적 공감으로 채워
연재 중 절정에서 끝난 원작이 완결구조가 아니라 미완성이라는 점도 힘이 됐다. 심리학에서 ‘자이가르닉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로 불리는 이러한 심리로 인해 영화의 개봉 소식과 함께 당시 팬들의 답답함과 기대감이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이다. 거기에 현시대의 뛰어난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더해지면서 옛 만화 슬램덩크의 추억을 간직한 30~40대뿐 아니라 20대, 심지어 10대 자녀들과 같이 보는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만화의 원작자이자 이번 영화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105개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진 긴 원작 중 영상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시합을 영화의 소재로 선택했다. 강백호, 서태웅 등 다른 주인공에 가려져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북산고의 단신 포인트 가드 ‘미야기 료타(송태섭)’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단신의 핸디캡과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슬픈 가족사를 가진 송태섭의 이야기는 기존의 독자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해 흥미를 자극하고, 원작의 긴 에피소드를 모르는 10~20대도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또 다른 완결 구조의 서사를 제공한다. 90년대 영웅 서사는 강백호와 같은 완전한 강자가 그 중심에 있었지만 오늘의 영웅 서사는 신체적, 정신적 결점을 가진 주인공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언더독의 이야기가 훨씬 힘이 있다는 것을 감독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송태섭이 번번이 실패했던 산왕공고의 압박 프레스 수비를 뚫고 빠져나와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이다. 죽은 형에 대한 그리움도 사실 농구를 통해 넘지 못한 형의 존재감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어쩌면 이 시대 청춘 모두는 각자가 마음 속에서 산왕전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두 앞에는 넘지 못하는 콤플렉스 장벽이 가로 놓여 있기도 하다. 이 영화의 미덕이자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이 시대 청춘이 마음속에서 치르고 있는 산왕전에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압박 수비와 콤플렉스를 뚫고 멋지게 슬램덩크를 성공시키는 꿈을 심어준 것이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한신대 IT 영상콘텐츠학과 교수. 광고회사와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경험했다. 금년 10월, 열리는 애드아시아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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