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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위원장 “교육은 희망 가질 수 있는 삶 가르치는 것”[이코노 인터뷰] ①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자연 속 인격도야에 가치 둔 ‘서원’ 정신 강조

2023년 2월 23일 서울 광화문정부종합청사 3층에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에듀푸어’(Education Poor)라는 줄임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득보다 지출이 많지만 교육비에 많은 돈을 쓰면서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일컫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혹한 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으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고초를 겪었던 조부모 또는 부모 세대가 ‘나는 형편이 어려워 못 배웠어도 내 자식만큼은 잘 가르쳐서 고생 안시키고 싶다’는 시대정신이 더 이상 배곯지 않는 현재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모습이다.

교육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기틀을 잡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배용 위원장에게 그 해답을 듣기 위해 ‘이코노미스트’가 직접 그를 만났다. 이 위원장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선시대 유교정신을 기반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인 ‘서원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시험 합격이 목표가 아니라 인격을 수양하는 데 근본적인 의미를 둔 명문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이 사립대학의 원천이라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참된 교육이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성취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도록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Q. 일곱 남매 중 넷째 딸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위원장은 어떤 가르침을 받고 교육을 했나?

- 서원에 가면 그 인물들을 가르쳤던 어머니를 볼 수 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늘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다. 휼륭한 인재를 키운 어머니를 보면 강인하면서도 따뜻하다. 내 어머니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생각하면 된다. 일곱 남매를 키우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참고, 너그럽게 베풀어주셨다. 그러면서도 항상 이웃과 함께하는 마음을 강조하셨다.

지금은 산업이 대부분 기계화하면서 살림살이가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어머니가 계실 때만해도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 세대를 보면 적삼에 땀이 마를 새가 없도록 일을 열심히 하시면서 그 많은 자식들을 키워내셨다.

서원에서 느낄 수 있는 어머니 리더십이 우리나라 교육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머니 박물관을 지으려고 한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실행하려 하는데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오면 모두 감격한다.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어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떠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내 어머니는 ‘항상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한결같이 반듯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셨다. 요새는 착하면 바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퇴계 이황선생도 ‘착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옛 속담에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말도 있다. 결국 선한 사람이 끝에 가서 (악한 사람을) 이긴다. 내 자식들에게도 어머니한테 배운 그대로 가르친 거 같다.

Q. 여성권익에 대한 목소리를 많이 내셨는데 현재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역할에 대한 한계점이나 발전해야 할 방향은?

-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확실히 사회적으로 여성들한테 기회를 거의 안 줬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기회가 훨씬 많이 여성에게도 주어지고 있다. 여기서 실력이 없으면 기회의 문이 열려있어도 인정받을 수 없다.

나는 항상 여성들에게 ‘주전자’ 정신을 강조한다. 여성이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고, 최고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 어떤 분야든지 주인의식, 전문성, 자긍심이 있어야 당당하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빈 수레가 소리만 요란하면 아무도 인정 안 해준다.

또 예전에는 운동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놓고 목마름을 축였다. 이처럼 주전자에 단물을 담아 자기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 후배나 이웃에게 부어주고 하면 사회에서 더 많은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준비없는 미래와 노력없는 성과는 없다. 요즘 여성들이 똑똑해서 시험을 보면 남성들을 제치고 1~10등을 모두 여자가 차지하곤 한다.

미래는 ‘3F’(Female, Feeling, Fiction)시대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자녀를 키우고 잉태하기 때문에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요즘 감성의 시대라고 하는데 여성들의 이런 강점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또 상상력이 있어야 미래를 내가 주도적으로 그릴 수 있다. 

요즘 여성들에게 한가지 더 보탤 점이 있다면 사회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지도자, 여성 전문가가 활약하는 등 여성들이 수려한 나무로는 많이 컸는데 숲을 이루는 연대 의식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대범함과 담대함이 필요하고 공동체정신을 가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가 올라가면 박수도 치고 지지도 해줘야 하는데 오로지 내 성공에만 집착하다보면 한계가 있다.

서원의 유림들도 그동안 각자의 서원에만 집중했지만 서원 9개가 유네스코 연속 문화유산에 오르니까 다른 서원에 대해 공부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화합하고 있다. 이처럼 공동체, 즉 사회 속에서 함께 있을 때 내 존재가 더욱 더 빛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일곱 남매 중 넷째 딸이고 딸 다섯 중에서는 세 번째 딸로, 오빠 1명, 언니 2명에 여동생 2명, 남동생 1명이 있는 노른자 딸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도 많았고 사회적 환경도 여성이 활약하는 것에 제한이 많았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때 여성이라는 역할도 있고 직장에서도 내가 맡은 직책이 있으니까 그때는 잠을 하루에 4~5시간 밖에 못 잤다. 가정에서의 나와 직장에서의 내가 양립하기 위해서는 내가 몇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고 집안 일 있다고 직장에서 소홀하게 일하면 책잡힐까봐 더 열심히 일했다. 거기다 나는 맏며느린데 직장 나가는 며느리였다. 시어머니가 양반집안 분이라 처음에는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이해를 못하시기도 했지만, 내가 논문쓴다고 밤새고 직장에 나가는 것을 보시면서 나중에는 많이 도와주셨다.

모든 건 휴머니즘이다. 내가 진심으로 열심히 하면 상대방이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연민의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불평만 하면 세월 다 지나간다. 시댁의 대소사가 있으면 맏며느리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고, 직장에서도 내가 맡은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된다. 항상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모든 일이 스스로 풀릴 수밖에 없다.

Q. 참된 교육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역지사지의 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경쟁력은 중요하다. 경쟁심이 없으면 노력을 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심만으로 혼자 우뚝 서길 바란다면 행복할 수 없다. 서로 도와주고 손잡아주면서 함께 하는 마음을 키워줘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땐 위로해주고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고 이해하는 폭 넓은 마음을 키우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1등만이 전부인 시대는 옳지 않다. 성과위주, 결과위주, 경쟁위주로 가면 1등을 제외하면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교육은 잘 자랄 수 있도록 잡아주면서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하향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1등이 아니면 박탈감을 느끼는 격차를 줄여주는 방식으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성취를 하지 못한 아이들한테도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은 토양이고 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고 골고루 물을 주면 뒤따라오는 아이들도 성장의 틀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낙오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희망을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줘야 공교육도 활성화할 수 있고 저출산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0.78명으로, 수도권은 0.54명에 그친다.

저출산에는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나가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엄청한 사교육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출산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학령인구 감소도 큰 문제다. 배울 아이들이 없는데 교육을 어떻게 시킬 수 있겠나. 경쟁도 중요하지만 앞서가는 아이들이 뒤에 있는 친구들을 잡아주고 강자가 약자를 돕고 해야 신뢰와 희망이 생긴다.

국가에서도 돌봄, 늘봄 등 자녀들을 키울 때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배려를 해줘야 한다. 남성들도 자녀들을 돌볼 수 있도록 섬세한 지원책을 내줘야 젊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Q.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을 받는다.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희망을 가지고 성취를 하면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앞으로만 달리는 교육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삶의 과정을 교육을 통해 배우면서 희망도 얻고 행복도 얻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성취를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루지 못했더라도 좌절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감싸주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잡아줘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뿐 아니라 학교밖에 있는 아이들도 상처받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감싸주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폭력 등 아이들의 심신을 해치는 문제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함께하는 사회에서 따뜻한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야 사회 전반적으로 사랑과 신뢰의 물결이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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