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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 반도체 견제 위해 한국 참여 필요…“만만한 동맹국 쥐어 짜기” 우려도

CSIS, “미국 주도 ‘가치사슬’ 위해 독일·한국 필요”
반도체 지원법은 까다롭게, 보조금 받으려면 사실상 기밀 공개해야
우리 정부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 협의할 것”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위한 수출 통제를 위해 한국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전략이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우리 기업에 반도체 보조금을 앞세워 생산시설을 미국에 직접 짓도록 유도하던 미국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사실상 반도체 기밀을 공개하라는 조건을 내건 상황이어서 만만한 경제 동맹국 쥐어짜기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미국‧네덜란드·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합의 실마리’를 주제로 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면 독일과 한국이 수출통제에 합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과 네덜란드가 참여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방침과 관련해 반도체 강국인 한국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가능하다면 유럽연합(EU) 전체가 동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지만, 독일과 한국 두 나라를 명확히 적시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CSIS는 우리나라에 대해 “칩 제조에 있어 선두주자”라며 “규모는 작지만, 정교한 제조장비 생산국”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은 “반도체 제조장비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 생산의 선도국가”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 한국과 독일 등 반도체 강국을 동맹으로 묶으려는 것은 수출을 통제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을 억제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CSIS는 “현재 중국내 생산 설비로는 기술적으로 노후화한 공정 노드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의 미래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정책과 외교적 요인들이 맞아떨어진다면, 미국과 동맹국의 반도체 장비 생산업체들이 작년 10월 발표된 대중 수출규제에 따른 매출 감소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반도체 전략이 자국 이익에 방점을 찍은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은 반도체과학법(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시행을 두고 “어떤 기업에도 백지 수표는 없다”며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지원법이란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법을 말한다. 미국 투자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원)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국가안보 프로그램에 집약, 실험·전환·생산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며 사실상 반도체 생산‧연구시설을 미 정부에 공개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실험이나 생산시설 등에 관한 정보가 민감한 기밀에 속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에 투자하며 보조금을 포기할 수도 없어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나온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미국이 우리 기업에 중국 대신 미국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형국인데, 중국과 미국 중 어느 한 시장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휘둘릴 수밖에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미 칩스법은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 정부가 협의할 것”

우리 정부도 기업이 느끼는 애로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일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세부 조항과 관련해 “일반적인 외국인 투자 보조금 지급과 전혀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들이 많이 들어있다”며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조항들이 협약 과정에서 상당 부분 완화되고 해소되도록 정부가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기업 경영 상황 정보를 제출하라든지 하는 경영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정보 제출 의무와 기술에 대한 정보도 상당 부분 노출될 수 있는 여러 조항이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다만 “국내에 있는 반도체 기반 시설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중장기 전략(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정책을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에 상당 부분 집중할 생각”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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