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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정계 출신 회장 체제 맞은 전경련의 미래는…

[2023 경제5단체 현주소]①
회장 직무대행 김병준…“학자로서 사회에서 필요할 때마다 역할”
日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이 명분?

한국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온 경제 5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가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회장 직무대행 시대를 맞았고, 양대 경제 단체 중 하나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에 나서며 현 정부와 적극 교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사실상 양대 경제 단체 구도가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통합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 수출 부진 속 한국무역협회(무역협회)의 역할론이 힘을 받고 있다. 네 번 연임에 성공한 김기문 회장의 중소기업기중앙회(중기중앙회)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경제 5단체의 현주소를 짚어본 이유다. [편집자]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2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전경련이 2월 23일 정기 총회를 열고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을 공식 선출했다.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를 지낸 김 회장 직무대행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이력에 비춰보면 전경련 역사상 처음으로 정계 출신 인사가 회장에 오른 것이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전경련에서 할 첫 과제로 “자유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기조와 방향의 재정립”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산하 연구소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글로벌 싱크탱크로 육성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발전안을 발표했다. 국민 소통, 미래 선도, 글로벌 도약 등을 중심으로 전경련을 재탄생시킨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를 위해 서울 여의도에 경제인 명예의 전당을 조성하고, 한경연을 국제적 수준의 싱크탱크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회장단 등 주요 그룹 회장들로 구성된 글로벌 이슈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설립도 고민하고 있다. 회장단이 전면에 나서는 위원회 중심의 분권형 책임 경영을 비롯해 윤리 지침 제정, 사무국 체질 개선 등도 꾀한다. 

정치인 출신 회장, 정경유착 꼬리표 뗄 수 있나?

김 회장 직무대행 체제의 전경련이 과거 정경유착 오명을 씻고 재기할 수 있을까. 재계 안팎에선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추락한 경제 단체인데, 정치인 출신 회장이 이끄는 전경련이 전경유착이란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은 서슬이 시퍼런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에도 정주영 전경련 회장 사임 압박을 견뎠다”며 “회장 직무대행이긴 하지만, 정계 인사가 전경련 회장에 오른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정치인 출신 전경련 회장 논란과 관련 “나는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누가 ‘전형적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며 “나는 대학에서 34년간 봉직한 학자이고, 학자로서 사회에서 필요할 때마다 역할을 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회장 직무대행이 6개월 임기를 밝힌 가운데, 일부에선 김 회장 직무대행 체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경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전경련 회원사 중 주요 그룹 총수들은 회장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경련의 주요 회원사를 이끄는 경영인들 사이에선 전경련 회장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에선 “정계 출신 인물이 전경련 회장에 선출될 것이란 이른바 ‘낙하산설’이 많아, 회원사에 속한 기업 경영인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했다”는 말도 들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과거 위상을 회복하려면 4대 그룹의 회원사 복귀가 절실한데, 4대 그룹이 전경련 회원사로 재가입할 수 있는 뚜렷한 명분은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사진 연합뉴스]

日 강제 징용 피해자 보상 지렛대 삼아 ‘반전’ 꾀할까

정부가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내놓은 가운데, 이와 관련 전경련이 일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 창설하는 등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 방일 기간 게이렌단 측과의 교류 행사를 주도한 전경련이 윤 대통령 방미 때도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재계 안팎에선 “부산 엑스포 유치 지원을 주도하고 있는 대한상의와 달리, 그간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사안에 대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전경련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을 계기로 정부와의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른바 ‘전경련 패싱’ 굴욕에 시달린 전경련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동참해 위상 회복을 꾀하고 있다는 논리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한일 관계 개선을 명분 삼아 4대 그룹의 재가입을 독려할 가능성 있다”고 말했다. 다만 4대 그룹 측은 전경련 회원사 복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적극 나서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안이고,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정부 주도로 피해자에 6500억원이 지급되는 등 정부 차원에서 풀어야 할 과제”라며 “전경련을 통해 우리 기업이 기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배상이 이뤄지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출신의 한 인사는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가 들어서자마자 전경련이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 피고 기업 배상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만 배상에 동참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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