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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만 아니라 은행도 ‘금리’로 망한다[부채도사]

채권 가치 하락이 촉발한 SVB 사태…근간엔 ‘고금리’ 현상
국내 은행도 레고랜드 사태 인한 채권 신용경색 경험
대부분 변동금리 적용된 부동산 대출…리스크 갈수록 커져

실리콘밸리은행의 경비원이 은행 밖을 쳐다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AFP]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대출은 동지도 적도 아니다.” 한 은행원의 말입니다. 가계부채는 1870조원을 넘었고, 가계들의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적과의 동침이 불가피할 때입니다. 기사로 풀어내지 못한 부채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부채도사’에서 전합니다. [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금리의 위력을 실감하는 지금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망하는 정도를 넘어 은행도 파산하고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이 횡재한다고 하는데,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면서 비명에 횡사하는 꼴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중소 은행들이 당하는 현실이다. 같은 대출 장사를 하고 있는 국내 은행은 정말 괜찮을까. 

SVB, 자금 조달력 떨어지자 ‘셧다운’ 조치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원인으로는 ▲작은 여신 규모 ▲국채 가치 하락 ▲디지털금융으로 인한 급속한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등이 언급된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총수신은 1747억달러인데, 이 중 여신은 743억달러에 불과했다. 여신 비중이 지나치게 작은 반면 보유 채권은 총자산의 55%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VB는 자산을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고금리 환경과 경제 침체가 맞물리면서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채권 가격 하락에 따라 손실 위험이 높아졌는데 이런 와중에 자금줄이 마른 기업 고객들이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SVB는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손실을 보면서까지 채권을 매각해야 했고, 이 소식이 들리자 불안을 느낀 기업 고객들이 너도나도 돈을 빼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은 SVB 폐쇄 사태가 발생했다.  

SVB 사태 ‘고금리’ 상황이 촉발

실리콘밸리은행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EPA]
이번 문제의 기저에 빠르게 오른 금리가 있는 만큼 국내 은행도 안전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은행들은 SVB처럼 보유 채권이 전체 자산의 20% 미만이라며 자산 운용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도 채권 위기를 이미 겪은 바 있다. 

지난해 말 강원도가 레고랜드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 기업어음(PF ABCP)의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왔을 때, 당장 문제가 된 것은 국내 채권 시장의 신용경색 위험이었다. 이에 단기금융시장 경색은 신용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고 은행만 아니라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까지 전반적인 금리 상승을 만들었다. 

대출 금리만 아니라 예·적금 금리도 뛰었다. 시중은행에서 연 5% 정기예금이 나올 정도였다. 이는 저축은행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했고, 단기간에 업권 간 금리 경쟁을 촉발해 대출금리의 추가 상승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금융권 중에 중소 금융사부터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후 금융당국이 금리 경쟁을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시장 안정에 나서면서 상황은 진정될 수 있었다. 

가계대출 변동금리 비중 75%…고금리에 상시 위험 노출

서울 남산에서 시민들이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금융사들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 미국과 다른 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에 속해 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전체 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보면 가계대출은 75.8%, 기업대출은 68.2%를 기록했다. 

아울러 부동산 경기 악화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건설사들의 부도 위기, 대출자의 연체율 증가가 변동금리 대출로 자산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은행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국내 은행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연동돼 있는 만큼 고금리로 인한 리스크가 상시 대기 중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SVB에서 “예금이 줄어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을 매각했고, 18억달러 손실을 봤다”는 공시가 나온 후 당일 은행 거래 마감 시간까지 인출된 자금 규모가 420억달러(약 54조76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 된 미국 은행들이 겪어보지 못한 빠른 속도의 ‘스마트 뱅크런’을 본 상황이다. WSJ는 SVB가 미국의 주요 은행이 되기까지 40여년이 걸렸지만 망하는 데는 3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런 환경은 국내 은행이라고 다르지 않다. 비대면 거래 활상화로 인한 초고속 파산 위험도 국내 은행이 심각하게 봐야 할 새로운 문제다. SVB 사태가 언제든 국내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대손충당금과 현금 확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과의 협의 또한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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