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한정판”…한국에 찾아온 ‘세계에서 제일 비싼 달걀’ [이코노 인터뷰]
알리체 발레스트라치 파베르제 아시아 헤드 인터뷰
180주년 맞이한 ‘왕실 달걀’…180개 한정판도 선보여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금으로 칠갑한 달걀 안에 숨어있는 꼬꼬닭, 매시 정각 자개가 열리며 수탉이 몸을 흔드는 모습.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 ‘파베르제’(Fabergé)의 ‘임페리얼 에그’(왕실 달걀)가 보여주는 자태다. 러시아 차르 황실의 보물로도 널리 알려진 이 파베르제의 보석들은 ‘달걀공예’의 진수로 불리며, 지난 1842년부터 그 역사를 이어왔다.
지난 3월 10일 브랜드 180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알리체 발레스트라치 파베르제 아시아 헤드를 만났다. 유럽 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 발돋움하고 있는 파베르제가 지닌 브랜드 가치에 관해 묻고, 그 역사와 현황을 살펴봤다.
‘유일무이’한 왕실 달걀의 가치...모든 보석이 ‘One of a Kind’
파베르제의 정체성을 꼽자면 두말할 여지 없이 ‘왕실 달걀’을 가장 먼저 논할 수밖에 없다. 지난 1885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의뢰한 ‘암탉 달걀’을 시작으로, 50개에 달하는 부활절 달걀의 전설이 꽃을 피웠다. 환상적인 디자인과 극도의 섬세함으로 유럽 왕실을 단번에 사로잡았으며 우연히 발견된 달걀이 440억원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큰 사이즈의 달걀인 왕실 달걀은 현재 1년에 평균 1~2개만 만들어지며 가격은 적게는 몇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한다. 알리체 헤드의 표현을 빌리면 ‘하늘의 별이 한줄로 정렬할 때’(하늘의 별따기라는 의미의 영국 속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유하기 어려운 보석이다.
하나는 브랜드 차원에서, 다른 한 가지는 아트 컬렉터 또는 VIP 고객의 의뢰로 제작된다. 아쉽게도 기계 장식이 들어간 달걀 ‘오토마톤’은 현재 더는 제작되지 않지만, 파베르제의 장인 정신을 이어간다는 브랜드 철학은 변함없다.
알리체 헤드는 “단순히 돈의 액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파베르제의 작품이 가진 미술적 소장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며 “미술품 거래에서의 프라이머리 시장과 유사한 구조라고 이해하면 편하다”고 설명했다.
왕실 달걀은 저마다 독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특징인 ‘서프라이즈’로 팝업 형태를 띄는 것은 물론이고, 보석 하나하나 정교하게 세공된 점이 표면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알리체 헤드가 애정을 담아 꼽은 달걀은 지난 2015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진주 임페리얼 에그’다. 화이트 자개 위에 3305개의 다이아몬드와 139개의 화이트 진주가 세공돼 들어가 있다. 이내 에그가 열리면 아름다운 꽃봉오리처럼 자개가 열리고, 그 안에 회색빛 진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베르제가 만드는 하이 주얼리, 고급시계 역시 이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브랜드 작품들의 소장가치를 위해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 유례 없이 독특한)를 추구해 매 제품을 작품처럼 빚어냈다. 이번 행사에서 소개된 주얼리의 가격대는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억대로 형성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180주년 달걀은 더욱 특별하다. 달걀의 사용성을 높이면서도, 파베르제가 가장 먼저 시작한 디자인인 ‘플로티드 양식’(물이 흐르는 듯한 결을 살린 형태)을 살렸기 때문이다. ‘유럽 장식 미술의 최고 거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파베르제는 최초의 기록이 많다. 그중에서도 플로티드 양식은 파베르제 보석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다. 이번에 제작한 리미티드 달걀 역시 이 시그니처 양식을 적용했으며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니어처 크기로 제작됐다.
이 180주년 달걀은 일반적으로 10개 가량에 그치는 여타 한정판 보석들과 달리 180개 제작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전세계에 브랜드 이미지를 알린 ‘왕실 달걀’의 무게감 대신 소비자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소재로써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한국, 중요한 시장으로 생각”
유럽 시장에서 파베르제는 ‘특별한 선물’이자 대대손손 물려주는 유산이다. 알리체 헤드는
“파베르제 왕실 달걀의 출발선이 부활절 선물일 뿐 아니라, 파베르제 주얼리는 특성상 개인적인 감정과 추억이 연결돼있는 경우가 많다”며 “영국 왕실만 해도 3~4대에 걸쳐서 파베르제 보석을 물려주는 경우가 잦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인기를 끄는 품목은 서프라이즈 특징을 살린 ‘로켓’ 형태의 주얼리를 비롯해, ‘길로시
에나멜 페인트’(금속표면에 섬세한 무늬를 조각해, 다양한 반투명 에나멜을 붙이는 기법)가 들어간 제품이다. 두 제품군의 공통점은 파베르제를 ‘알 만한 사람들’이 중시할 만한 특징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로켓의 경우 워낙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파베르제만의 특징인 서프라이즈적 요소를 담았다. 길로시 에나멜 역시 플로티드 디자인처럼 파베르제가 선구적으로 시도한 기법이라는 점에서, 파베르제의 정체성을 잘 담았다고 여겨진다.
세상에 나와 전해진 기간이 180년에 달하는 장수 브랜드이지만, 파베르제만의 확고한 전통을 매력으로 살려 현대화에도 큰 무리가 없다. 알리체 헤드는 “예술작품의 가치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파베르제 역시 마찬가지”라며 “오히려 그 아우라에 영감을 받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최근에는 보석을 금고에만 모셔두지 않고 함께 즐기면서, 일상과 융화될 수 있도록 사용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아시아 시장에서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파베르제가 향후 나아갈 목표에는 놀랍게도 한국이 큰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파베르제가 유독 눈독 들이고 있는 시장이 다름 아닌 한국 시장이기 때문이다.
알리체 헤드는 “한국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를 정말 사랑한다고 느꼈고, 하이퀄리티 정신에 대한 존중도 상당하다고 생각했다”며 “브랜드 차원에서도 한국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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