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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을 기다린 확장 뇌의 꿈, AI가 이뤄줄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MS, 생성AI 결합한 오피스 프로그램 공개
‘사람이 낫다’는 장벽 넘는 디지털 기술
화이트칼라 노동 혁신…‘일의 미래’ 바꾸는 AI

마이크로소프트는 3월 17일 MS 365 코파일럿(Microsoft 365 Copilot)을 공개, 자사 업무 생산성 도구 전반에 차세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다고 공개했다. 사진은 365 코파일럿 설명 자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지난 3월 17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프로그램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Microsoft 365 Copilot)을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해 피를 섞은 AI 기업 오픈AI의 초거대 AI 자연어처리모델 GPT-4를 워드나 파워포인트 같은 생산성 프로그램과 결합했다.

챗GPT에 명령해 원하는 결과를 얻듯,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오피스 프로그램에 일상 언어로 명령할 수 있다. 워드에 간단한 정보를 주고 관련 문서를 만들라 할 수 있고, 문서 내용을 바탕으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생성할 수도 있다. AI는 복잡한 매출 데이터가 담긴 엑셀 파일에서 주목해야 할 트렌드 세 가지를 골라 주기도 하고, 나의 막연한 요청을 있는지도 몰랐던 함수를 써 해결해 준다. 아웃룩 메일과 협업 도구 팀즈의 대화 내용, 내 연락처와 원노트 메모에 담긴 내용을 기반으로 지식 그래프를 엮어 제안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언제, 얼마의 가격에 이 같은 기능이 도입된 오피스를 쓸 수 있을지 밝히지 않았다는 함정이 있지만, 이번 데모처럼 실제 오피스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이는 화이트칼라 노동의 진정한 혁신이 될 것이다. ‘AI와 함께하는 일의 미래’(The Future of Work With AI)라는 이번 행사 이름 그대로, ‘일의 미래’가 AI로 인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2007년 아이폰 공개 이후 가장 충격적인 발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3년 첨단 AI, 그 뿌리는 1945년 한 과학자의 상상?

이 행사에서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2023년의 최신 AI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시대로 돌아간다. 그는 코파일럿의 기원을 미국 과학자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가 제안한 ‘미멕스’(Memex)라는 가상의 기계에서 찾는다.

부시는 MIT 공대 학장을 지닌 과학자이자 엔지니어로, 직접 창업도 했으며 2차 세계 대전 때 군부의 연구개발을 총괄 관리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는 1945년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기고한 ‘생각하는 대로’(As We May Think)라는 글에서 ‘모든 지식을 수집하고, 사용자가 빠르고 유연하게 그 지식을 다시 추출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미멕스라는 전자 장비를 제안했다. 개인의 모든 책과 기록, 의사소통 내역 등을 저장하고, 이를 기계화하여 나중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개인 지식 도서관인 셈이다. 정보는 다시 찾아보며 노트를 적거나 밑줄을 그을 수 있다. 연관된 정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확장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다. 미멕스는 기억(MEMory)과 확장(EXpansion)의 합성어로, 기억 보강을 목적으로 하는 장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아마 그는 2차 대전 때 미국의 군사 분야 연구개발 관리를 총괄하며 접한 방대한 지식과 정보에 압도되어 미멕스 같은 장치를 구상했을 것이다. 2차 대전은 미사일과 원자탄, 컴퓨팅 등 전례 없이 복잡하고 거대한 최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 전쟁이었다. 부시는 정말 기억의 확장이 절실했을 것이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그가 상상한 미멕스는 마이크로필름을 저장하고 불러와 읽을 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메모를 남길 수 있는, 스크린과 컨트롤러가 달린 책상 크기 장비였다.

사티야 나델라(왼쪽) 마이크로소프트 CEO 겸 이사회 의장과 제라드 스파타로 모던워크 및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부문 기업부사장은 ‘생산성의 재발견 : AI와 일하는 미래’를 주제로 온라인 발표를 진행하고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을 공개했다.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AI가 우리 뇌를 확장해 준다면?

하지만 그의 비전은 후대 컴퓨터 연구자와 혁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링크를 통해 연관된 정보가 담긴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이에 기반한 월드와이드웹(WWW)은 부시의 아이디어를 가장 비슷하게 구현한 기술이다. 파일과 데이터의 저장 및 분류는 컴퓨터의 가장 기본적 기능이며, 이 같은 여러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개인 지식관리 시스템은 사람들이 PC와 스마트폰·인터넷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직장인은 아웃룩 메일과 연락처·캘린더·노트 앱·오피스 프로그램과 공유 폴더 등을 통해 나름의 미멕스를 구축해 쓰고 있다. 지메일과 구글 드라이브, 구글 문서 도구 등을 쓰며 구글 생태계에 머무는 길도 있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등장해 한때 큰 인기를 끈 에버노트는 모바일 시대의 미멕스였다. 모바일 앱이라 언제든 메모를 적고 녹음을 할 수 있었고, PC와 폰 환경 모두에서 웹페이지를 스크랩할 수 있다. 저장한 노트는 태그로 분류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었다. 회사 로고부터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코끼리였다.

그런데도 이 같은 앱·서비스·솔루션들이 일하는 사람의 모든 필요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작성이 어렵거나, 저장과 분류가 번거롭거나, 필요할 때 찾아 쓰기 곤란했다. 여전히 사람이 붙어서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CEO는 비서를 두어 일정을 관리하고, 대형 로펌에선 명문대를 나온 신참 변호사들이 밤새 판례를 뒤진다. 돈이 있다면 사람을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네이버 지식인은 검색에 알고리즘이 갖지 못한 사람 손길을 입혀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이 질문에 직접 달아주는 답은 세계 검색 시장의 90%를 차지한 구글도 넘지 못할 방어벽을 쳐주었다.

‘그래도 사람이 낫다’라는 이 마지막 장벽을 이제 디지털 기술이 넘으려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의 생성 AI 기술은 내가 쌓은 지식과 인맥의 그래프, 내가 만든 문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새로운 제안서나 문건·장표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속삭인다. 내 모든 지식과 정보가 저장되고 분류되며, 나를 잘 아는 충직한 비서처럼, 아니 부기장(copilot)처럼 필요할 때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CEO나 로펌 대표 변호사에게 유능한 코파일럿이 생길 때, 비서와 신입 변호사들은 갈 곳을 잃을지 모른다.

2차 대전을 겪으며 꿈꾼 사람과 컴퓨팅 간의 직관적 관계가 8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생성 AI 덕분에 완전히 효율적으로 확장된 기억을 갖게 될 근미래의 우리는 지식 노동의 새 장을 열게 될까? 혹시 기성세대가 너무 완벽한 확장 뇌를 갖게 되어 새 세대가 노동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막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나는 코파일럿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생각해 볼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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