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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대표, 권위는 비우고 소통으로 채우다 [C-스위트]

[CXO의 방] 오비맥주 동아시아 총괄 대표…빌 ‘空’ 찰 ‘滿’
공만(空滿), 3월부터 자율좌석제 도입…열린 공간서 업무

대표방이 따로 없는 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동아시아 총괄 대표(왼쪽)가 직원과 자신의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라예진 기자] 빌 ‘空’ 찰 ‘滿’...권위는 비우고 소통으로 채우다

“대표님 방이 어디라고요?” “벤님, 오늘은 창가 끝 쪽으로 자리 잡으셨네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동아시아 총괄 대표 자리를 찾아 그를 만났다. 청바지에 청남방 일명 ‘청청패션’인 그가 기자를 맞은 곳은 방이 아닌, 그날의 일일 좌석이었다. 

그의 책상 위는 단조로웠다. 노트북, 서류, 형광펜, 물컵 그리고 논알콜 카스 맥주 한 캔. 사무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직원들의 책상도 마찬가지. 잡다한 물건이 놓인 책상이 없다. 베르하르트 대표는 “퇴근 시간이면 자리에 있는 모든 물건을 치우고 가야 한다”며 “저를 포함한 직원 모두 퇴근할 때 노트북과 펜은 가방에 넣고 물컵은 사물함에 넣고 간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임원이라도 개인 집무실이 없다. 벤 베르하르트 대표가 하루 동안 일할 잘리를 키오스크를 통해 예약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지난 3월부터 자율좌석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오비맥주의 사무실 풍경이다. 오비맥주의 수장, 베르하르트 대표 역시 집무실이 따로 없다. 그는 매일 직원들과 함께 열린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찾아 근무한다. 그래서인지 여느 기업 대표와는 아침 출근 모습도 다르다. 퇴근 이후 그날 지정한 자리 정보가 모두 삭제되기 때문에 매일 아침 그날 하루 동안 일할 자리를 사무실 입구에 위치한 키오스크나 임직원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동아시아 총괄 대표가 자신의 사물함에서 물건을 꺼내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오비맥주는 지난 3월부터 자율좌석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좌석 예약 키오스크 화면. [사진 신인섭 기자]
베르하르트 대표에게 주어진 개인 공간은 작은 사물함 한 칸이 전부다. 자율좌석제를 실시하면서 오비맥주는 각 임직원에게 자신의 짐을 넣어둘 수 있는 사물함을 제공했는데, 베르하르트 대표 역시 이 한 칸을 배정받았다. 베르하르트 대표는 “제 사물함은 왼쪽 가장 위 칸”이라며 “제가 좀 키가 크지 않냐”며 웃어 보였다.  

남유럽 지역 총괄사장, 남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을 거쳐 현재 자리에 온 베르하르트 대표는 한국 특유의 위계질서,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직장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자율좌석제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모든 직원이 동등한 공간에서 일하는 환경을 제공하면서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베르하르트 대표는 “경영진이 포용적이고 격식 없는 환경을 추구해야 직원들이 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하면서 과감하게 반대 의견도 낼 수 있다고 본다”며 “더욱 활발한 소통과 협업이 가능한 셈”이라고 말했다. 

베르하르트 대표는 한국 직원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식 이름도 지었다. 벤이라는 영문 이름 소리를 따서 성은 ‘배’(裵)로 정하고 이름은 물 ‘하’(河), 높을 ‘준’(峻)을 써 배하준이다. 직원끼리 직급을 생략하고 서로의 닉네임(별명)을 불러주는 일명 ‘님 체제’를 펼치는 오비맥주 사무실에서 베르하르트 대표는 ‘벤님’ ‘하준님’으로 불린다. 

사무실 곳곳에 있는 각 회의실에도 오비맥주의 제품명이 각각 이름으로 붙여졌다. 카스 회의실, 한맥 회의실, 버드와이저 회의실, 호가든 회의실 등 다양하다. 딱딱한 분위기를 없애고, 어느 팀이나 자유롭게 이동하며 회의를 운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오비맥주는 직급 대신 닉네임을 부르는 조직문화를 지향한다. [사진 신인섭 기자]
오비맥주는 지난 3월부터 자율좌석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누구의 자리인지 알 수 없는 빈 책상이 베르하르트 대표의 이름으로 채워지고, 이곳에서 그의 하루 동안의 근무가 시작된다. 그는 출근 후, 매일 같이 말한다.  “I am here.(나 여기 있어요)”

벤 베르하르트(Ben Verhaert) 오비맥주 동아시아 총괄 대표는_1977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벨기에 루벤 가톨릭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2001년 AB인베브에 입사한 그는 벨기에 담당 영업 관리자를 거쳐, 룩셈브루크 담당 영업 임원으로 근무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지역을 담당하는 남유럽 지역 총괄 사장을,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남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을 역임하고 지난 2020년부터 현재의 동아시아 총괄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한국 이름은 배하준으로, 이름에는 물 하(河), 높을 준(峻)을 써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바다처럼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끄는 리더십’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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