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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옥죄는 ‘이중 구조’…과거로 회귀한 ‘수익 분배’ 문제

[웹툰 시장으로 번지는 '검정 고무신' 그림자]②
제작 강도 높아졌지만, 수익은 줄어
완결 후 작품 수익 끊기는 경우도 허다
‘플랫폼-CP-작가’ 구조로 창작 환경 악화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웹툰 업계에 수익 분배 문제와 작가의 높은 노동 강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태블릿 전문 기업 와콤이 제작한 웹툰 관련 다큐멘터리 한 장면. [사진 와콤]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국내 웹툰 시장을 양분하는 네이버·카카오. 서울에서 자취 중인 A씨는 두 플랫폼에서 하루에도 두어 시간을 보낸다. A씨에게 웹툰은 무료한 출퇴근 길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퇴근 후 고단했던 하루를 위로해 주는 ‘가족’과도 같다. 좋아하는 작가들도 생겼다. 그림체가 뛰어나서, 이야기가 따뜻해서…. 작가별로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웹툰 속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A씨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먼저 보기 위해 매월 2~3만원도 지출 중이다. “전혀 아깝지 않은 비용”이라고 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까닭도 있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보다 창작활동에 매진했으면 하는 ‘팬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가 콘텐츠를 보기 위해 지불한 금액 중 작가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완결작’ 중 더러는 플랫폼과 제작사에만 수익으로 배분된다.

출판물이 만화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작가는 착취의 대상이 됐다. 시장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만화 작가는 10% 안팎의 인세를 받았다. 그마저도 유통된 출판물의 양을 속여 인세를 줄이는 식의 피해가 공공연하게 발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출판사가 9, 작가가 1을 가져가는 수익 배분 계약은 당시 ‘데뷔를 원하는’ 입장에선 울며 삼켜야 하는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다.

‘작가 친화적 기업’을 표방하는 네이버·카카오가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뒤, 이 같은 수익 분배 구조는 시장에서 대부분 사라지는 듯했다.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 작가에게 더 많은 수익 배분이 이뤄지는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웹툰 시장을 이끈 네이버·카카오는 전체 수익의 50~70%를 작가에게 배분하는 구조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는 양사가 작가와의 ‘직계약’을 통해 대다수 작품을 수급하던 2010년대 얘기다. 최근에는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콘텐츠 제작사(CP)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네이버·카카오 플랫폼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플랫폼-CP-작가’로 이어지는 계약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과거 ‘9 대 1’ 비율이 부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각 플랫폼 내 ‘무한 경쟁’ 체제가 자리잡히면서 작가 스스로 ‘자기 착취’를 하고 있단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툰 작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출판물 수를 속이는 행태는 시장이 ‘온라인 유통’으로 전환되면서 개선된 건 사실”이라며 “조회수 등의 지표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수익 측면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웹툰 시장이 자리 잡던 2010년대엔 비교적 상생 구조가 잘 작동했지만, CP 비중이 늘어난 최근에는 과거 출판물 시장에서 벌어졌던 ‘착취 구조’가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며 “출판물 시절 흑백에 30컷 남짓을 그렸던 때와 달리 최근에는 되레 채색 의무와 100컷 안팎의 분량으로 창작에 드는 공임 부담만 늘었다. 플랫폼의 눈 밖에 나면 광고 노출이나 프로모션 대상에서 빠져 몸이 아파도 휴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토로했다.

200원 결제하면 24원만 작가 몫

수익 분배나 창작 환경을 결정짓는 계약은 작가의 역량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업계 통용’ 기준은 있다. 주로 신진 작가가 그 대상이 된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 운영사) 등 플랫폼 기업은 물론 작가·협회·CP 등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통용되는 수익 분배 비율은 플랫폼이 35~40%를 가져가는 구조다. 플랫폼과 직계약을 한 경우 신진 작가라도 전체 수익의 60~65%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CP를 통해 작품 제작을 하는 경우다. 플랫폼에서 35~40% 수익을 가져간 뒤 남는 금액을 CP는 물론 협업 작가들과 공유한다. 메인 그림 작가는 플랫폼으로부터 CP가 받은 수익의 30% 정도를 수령하는 게 보통이다.

독자가 네이버·카카오에서 미리보기나 완결 다시 보기 등으로 내는 금액은 한 화당 200~300원이다. 200원을 ‘통용되는 수익 분배 비율’로 계산하면 ▲플랫폼 40원 ▲CP 80원 ▲글·서브 작가 등이 56원을 비율에 따라 분배 ▲메인 그림 작가 24원이 돌아가는 구조다. 구글에서 떼가는 ‘인앱 결제’ 수수료를 포함하면 실제로 메인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실제 매출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만화 시장이 출판물에서 웹툰으로 전환됐음에도 일부 작가들은 여전히 ‘9대 1’이란 정산 비율 아래 놓여있다. 과거 착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10% 인세 지급이 지금도 현실적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5년 뒤 CP에 귀속되는 수익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웹툰 업계에 이 같은 수익 분배 문제와 작가의 높은 노동 강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작가는 저작권 쪼개기와 수익 분배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세상을 등졌다. 다양한 단체들이 이 작가가 겪었던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제도적 안전망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웹툰협회·웹툰작가노동조합 등에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문제 대부분은 이중 계약 구조에 기인한다. 플랫폼-CP-작가로 이어지는 제작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노동 강도는 높아졌고 수익은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됐단 지적이다.

복수의 웹툰 제작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웹툰 플랫폼들의 요구 사항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식 연재 전 약 20화 분량의 원고와 연재 중 일정 수준의 컷 수를 유지해달라는 식의 요청이 많아졌다고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기조가 작가들의 착취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20화가 넘는 원고를 정식 연재 전 제작할 수 있는 작가는 매우 한정적이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20화 사전 원고는 별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제작 기간을 6개월 이상 보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 기간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선, 계약 조건이 불리해도 제작비를 제공하는 CP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자본을 축적한 일부 성공한 작가를 제외하곤 플랫폼이 요구하는 수준의 작품을 내놓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사(CP) ‘디앤씨웹툰비즈’를 통해 만들어져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유통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포스터. 웹툰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143억 회를 달성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작화를 담당한 장성락 작가는 37세란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지난해 7월 별세했다. [제공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채색이 들어간 80~100컷 이상의 웹툰’은 작가가 CP를 찾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일주일마다 이 같은 수준의 작품을 작가 혼자 그리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CP를 통해 각색·배경·채색·효과·후보정·교정 등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연재가 불가능하다고 다수의 작가가 입을 모았다.

CP와 작가 간 수익 분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웹툰 작가는 최소수입보장(MG·Minimum Guarantee)과 수익배분액(RS·Revenue Share)을 통해 돈을 번다. MG는 사전 원고 제작 기간 생활비 충당 등을 목적으로 받는 수익을 말한다. 제작비 개념으로 지급되는데, 대부분 ‘미래 발생할 수익’을 당겨 받는 식으로 계약이 이뤄진다. RS는 작가가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 수익을 말한다. MG 비용이 모두 충당된 뒤에야 RS 수익이 지급된다.

MG는 작가 대다수가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원흉으로 꼽힌다. RS 수익이 MG 지급 비용보다 낮더라도 CP가 작가에게 별도 비용을 청구하진 않는다. CP가 일정 부분 위험(리스크)을 감당하는 셈이다. CP가 이를 명분 삼아 작가에게 ‘공동저작권’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992년 연재를 시작한 ‘검정 고무신’에서도 문제가 된 ‘저작권 쪼개기’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MG 지급 구조에서 발생하는 ‘위험 부담’ 명분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작가 몫인 RS 수익이 3~5년 뒤 CP에 귀속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권 국장은 “완결 작품 다시보기 등으로 수익이 발생해도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계약이 허다하다”며 “CP가 3~5년 뒤 발생하는 RS를 모두 가져가겠다고 요구하는 일이 ‘업계 상식’처럼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RS 수익 권리를 CP가 가져가는 건 사실상 작가에게 작품을 빼앗는 일”이라며 “웹툰이 영상 등 2차 창작물로 제작돼 ‘역주행’ 등으로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RS 수익 권한이 CP에 있으면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0원”이라고 꼬집었다.

제작비 부담도 작가에게 전가…MG 후차감의 늪

MG의 처리 방식 역시 문제로 꼽힌다. MG 지급 비용을 RS에서 충당하는 방식은 선·후차감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특히 후차감(작가의 RS 수익에서 MG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선차감(총수익에서 MG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은 CP와 작가가 성패의 위험 부담을 공유하는 구조이지만, 후차감은 제작비를 온전히 작가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플랫폼으로부터 CP가 웹툰 한 화에 총 100만원의 수익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작가는 해당 화를 사전에 그리며 MG로 50만원을 미리 받았다. CP와 작가 간 수익 분배 비율은 30%라고 하자. 선차감의 경우 총수익 100만원에서 MG 50만원을 충당한 뒤, 30%에 해당하는 비용을 작가에게 제공한다. 작가는 RS로 15만원을 지급받는다.

반면 후차감은 100만원 중 수익 비율인 30%를 지급한 뒤 MG 비용을 가져간다. RS 30만원에서 MG 50만원을 차감하는 게 된다. 정산받을 수익이 없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20만원의 ‘빚’을 다른 화 수익에서 충당해야 한다. 권 국장은 “대다수의 작가가 선·후차감 MG 방식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다수의 CP가 후차감 MG 방식을 작가에게 제시해, 선차감 MG의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웹툰이 독자를 만나는 공간은 결국 플랫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이중 제작 구조는 플랫폼에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든다. 플랫폼과 계약한 곳은 CP이기 때문이다. 웹툰 제작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 입장에선 작가를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CP를 통해 작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며 “작가에게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CP에 책임을 돌릴 수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웹툰은 2021년 기준 직계약 웹툰 비중은 88%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60~70%로 낮아졌다.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의 경우 직계약 비중이 약 40% 안팎에 그친다는 게 업계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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