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가 검은 물감을 칠한 까닭 [E-전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로 연결된 인연…퐁피두X더현대 서울
알록달록 색채의 기쁨 전하던 작가가 ‘검은색’을 더하기까지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밝은 색채가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경쾌한 에너지. 아무 배경음악 없이 두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음에도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한 그림이 있다. 기쁨을 그리는 작가, 라울 뒤피의 작품들이다.
근현대 미술의 중심인 프랑스 3대 미술관 퐁피두센터와 더현대백화점의 콜라보 전시, ‘라올 뒤피 : 행복의 멜로디’ 전시가 여의도 파크원-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국내 백화점이 퐁피두센터와 협업해 전시를 여는 것은 유례없던 일로, 전시 총감독 역시 크리스티앙 브리앙 퐁피두센터 수석큐레이터가 맡았다.
퐁피두센터와 더현대 서울 사이에는 놀라운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등장과 동시에 여의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더현대 서울의 설계자가 바로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라는 점이다. 프랑스와 한국,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지만 공간 속 작품에 진심인 DNA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퐁피두센터가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뒤피가 사망한 후 그의 부인 에밀리엔 뒤피가 작가의 아틀리에에 보관돼있던 작품 전체를 국가에 기증하면서 해당 작품들이 고스란히 퐁피두센터의 품 안으로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
브리앙 수석 큐레이터는 “단 한번도 수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채 작가가 애정하는 작품 1600여 점이 모두 퐁피두센터에 기증됐다”며 “작가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애착을 가지고 소장했던 최고의 작품들로 구성돼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알록달록 색채가 모여 완전한 검은색을 이루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라울 뒤피는 20세기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빠르고 경쾌한 붓질과 밝은 파스텔 톤의 색감이 주요 특징이다. 야수파-입체파를 거쳐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했으며 세상의 기쁨과 축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뒤피는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작은 말로 가득한 해안가 도시에서 여인의 환상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뛰노는 말의 모습을 그렸다. 뒤피가 빛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인상주의부터 전통을 거부하고 혁명을 지향하는 야수파, 이어 과감하고 독자적인 색채가 특징인 입체파까지 몸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밝은 색채와 발랄한 붓터치로 가득 채워진 뒤피의 캔버스가 작가가 말년을 맞이하던 1950년대에 이르러 ‘검은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품 ‘검은 화물선과 깃발’, ‘생트-아드레스의 검읂색 화물선’ 등 그의 작품에 ‘검은 화물선’이 모티브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뒤피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들레스 해변 등 고향의 모습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는 문득 바다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직접 마주한 순간 눈이 멎는 듯한 감각을 느꼈고, 색채의 출발이 검은색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나에게 있어 검은색은 지배적인 색이다. 검은색으로부터 출발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해 빛을 발견하는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캔버스 사이 도자기, 태피스트리…다양성 빛나
뒤피가 활발히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20세기에는 예술의 분야를 둘러싼 서열이 암암리에 존재했다. 회화를 주축으로 한 순수예술만이 예술가라면 필히 몰두해야 할 분야로 자리잡혀있었고 세라믹, 텍스타일 등 다양한 소재로 이뤄진 장식예술은 변두리로 밀려나는 시기였다.
뒤피는 달랐다. 시대를 둘러싼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고 뒤피는 태피스트리, 일러스트, 광고, 벽보 모두를 그만의 소재로 만들었다. 지난 1924년 카탈루냐 출신 청년 도예가와 만나게 되면서 도자기 작업을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명 태피스트리 제조사와 함께하며 회화 작품을 바탕으로 양모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뿐 아니라 뒤피는 예술가들이 소재로 잘 선택하지 않는 아틀리에(작업실)에 집중하는 등 시대에 맞춰 그대로 흘러가지 않고 자신이 영감을 받은 대상에 충실하며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의 이처럼 다양하고 기나긴 예술적 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바로 뒤피의 역작으로 잘 알려진 ‘전기 요정’이다. 지난 195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로 꼽힌 작품이자 대형 벽화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던 작품으로, 그 길이가 6m가 넘는다.
브리앙 큐레이터는 “전기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대형 석판화 연작으로, 남아 있는 ‘전기 요정’ 작품 중 작가가 직접 과슈로 채색해 완성한 유일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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