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하게 풀골지 패션…‘할머니 주름옷’이 2030 ‘완판템’으로 [브랜도피아]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가 개발한 ‘플리츠 플리즈’
과거엔 ‘청담동 사모룩’, 최근엔 MZ 사이서 품절대란
높은 가격대에도 3대가 입어 ‘플플 적금’이란 말도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오늘은 힙하게 ‘풀 골지’ 스타일로 입었어요. 되게 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지 않아요?”
‘농구 대통령’ 허재의 아들 허훈이 지난 202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자신의 골지 패션 찬양론을 펼쳤다. 방송에서 주황색 골지 티셔츠와 회색 골치 바지를 매치한 그는 ‘인간 골판지’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해당 옷은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뜨거운 브랜드의 것이다. 바로 지난해 간암으로 타계한 일본 출신인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가 선보인 ‘플리츠 플리즈’다.
‘할머니 패션’ 인기…플플 개미지옥·적금 신조어도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할머니 패션’, ‘청담동 사모 패션’의 대명사였던 플리츠 플리즈가 20·30대 사이에서 ‘완판템’으로 거듭나며 주름옷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MZ세대는 이 브랜드를 ‘플플’이란 애칭으로 부르며 색깔별로, 스타일별로 사 모으고 있다. 20대 직장인 정모씨는 “언제부턴가 사고 또 사다 보니 옷장에 플플 제품이 4개나 모였다”며 “플플하면 ‘개미지옥’이라던데 확실히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미야케 이세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전통적인 오트쿠튀르 기술과 디자인을 배웠으며, 뉴욕에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1970년에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했고, 이듬해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를 론칭해 1973년 파리 컬렉션에 처음 참가했다. ‘한 장의 천’이라는 일본 전통 의복에서 영감을 받아 바느질선 없이 한 벌의 옷을 만들고자 하는 작업방식을 고수했다.
플리츠 플리즈는 ’Pleats’(플리츠·주름)라는 이름처럼 옷 전체에 얇은 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코디언 주름상자 모양과 같이 잘게 잡은 주름’을 뜻하는 ‘플리츠 디테일’은 이세이 미야케 이전에도 사용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세이 미야케는 이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플리츠 디테일을 가장 대중화시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는 기존에 소재를 재단해 봉제되기 전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던 것과 반대로, 의복을 정사이즈의 2배 반에서 3배 정도로 재단하고 조합한 후 완성된 형태에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제작과정을 새롭게 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플리츠를 사용한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해 조력자이자 소재 감독인 마키코 미나가와와 함께 일본 텍스타일 공장과 협업해 매년 새로운 컬러와 톤을 더한 플리츠 제품을 개발했다. 1975년 화이트 리넨 크레이프로 플리츠를 연구하기 시작해 점차 면, 폴리에스테르, 트리코트 저지로 발전시켜나갔다.
옷 전체에 주름이 있어 ‘편안함’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플리츠 플리즈 제품들은 자칫 펑퍼짐해보이고 옷의 광택감이 중후해 보이는 인상을 줘 한때 50·6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거기에 3~4년 전엔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대표적인 ‘불매운동’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으나 최근 2~3년 사이에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허웅·봉태규 등 착용해 남성 고객↑…“가격대 높아도 실용성 중요”
국내에 이세이미야케 플리츠 플리즈를 수입하는 곳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으로, 2001년부터 20년 넘는 시간 동안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MZ세대 구매 비중은 25% 수준으로,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지난 5월 말 기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늘었고, 매년 두 자릿수 이상씩 신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플리츠 플리즈 외에도 ‘미 이세이미야케’, ‘옴므플리세’, ‘바오바오’ 등 의류부터 가방, 향수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남성 라인을 선보이는 옴므플리세 인기가 뜨겁다.
업계에 따르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허웅 선수를 비롯해 프로듀서이자 방송인인 코드쿤스트, 배우 유아인과 봉태규 등이 착용한 모습이 노출되면서 남성 소비자들의 구매가 늘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하면 떠오르는 검은 터틀넥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리츠 플리즈 제품은 가수 강민경이 주름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어 ‘완판 행렬’을 보인 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방일 당시 김건희 여사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서 이세이 미야케 옷을 선물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의류 가격은 바지 하나에 20만~120만원, 재킷은 38만~250만원대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구매 대란이 일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오픈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온라인상에선 프리미엄(웃돈)을 줘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품귀 현상까지 보인 적도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플플 적금’이란 유행어까지 생겼다. 마치 적금 든 것처럼 노후 준비를 위해 플플 제품을 사 모은다는 뜻이다. 한 벌로 딸-엄마-할머니 혹은 아들-아버지가 같이 입기도 한다고 해 30~40년 동안 입을 것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란 말도 나온다.
이세이 미야케의 인기는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부는 ‘할매니얼’ 트렌드 영향도 있다.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의 ‘밀레니얼’을 합성한 신조어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즐기는 음식이나 문화가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는 의미로 쓰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는 과거 청담이나 강남 쪽 며느리 룩으로 유명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이 사 입는 옷이란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엔 젊은 소비자들이 가격대가 있더라도 소재가 좋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MZ세대들이 막강한 구매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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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대통령’ 허재의 아들 허훈이 지난 202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자신의 골지 패션 찬양론을 펼쳤다. 방송에서 주황색 골지 티셔츠와 회색 골치 바지를 매치한 그는 ‘인간 골판지’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해당 옷은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뜨거운 브랜드의 것이다. 바로 지난해 간암으로 타계한 일본 출신인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가 선보인 ‘플리츠 플리즈’다.
‘할머니 패션’ 인기…플플 개미지옥·적금 신조어도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할머니 패션’, ‘청담동 사모 패션’의 대명사였던 플리츠 플리즈가 20·30대 사이에서 ‘완판템’으로 거듭나며 주름옷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MZ세대는 이 브랜드를 ‘플플’이란 애칭으로 부르며 색깔별로, 스타일별로 사 모으고 있다. 20대 직장인 정모씨는 “언제부턴가 사고 또 사다 보니 옷장에 플플 제품이 4개나 모였다”며 “플플하면 ‘개미지옥’이라던데 확실히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미야케 이세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전통적인 오트쿠튀르 기술과 디자인을 배웠으며, 뉴욕에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1970년에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했고, 이듬해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를 론칭해 1973년 파리 컬렉션에 처음 참가했다. ‘한 장의 천’이라는 일본 전통 의복에서 영감을 받아 바느질선 없이 한 벌의 옷을 만들고자 하는 작업방식을 고수했다.
플리츠 플리즈는 ’Pleats’(플리츠·주름)라는 이름처럼 옷 전체에 얇은 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코디언 주름상자 모양과 같이 잘게 잡은 주름’을 뜻하는 ‘플리츠 디테일’은 이세이 미야케 이전에도 사용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세이 미야케는 이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플리츠 디테일을 가장 대중화시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는 기존에 소재를 재단해 봉제되기 전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던 것과 반대로, 의복을 정사이즈의 2배 반에서 3배 정도로 재단하고 조합한 후 완성된 형태에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제작과정을 새롭게 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플리츠를 사용한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해 조력자이자 소재 감독인 마키코 미나가와와 함께 일본 텍스타일 공장과 협업해 매년 새로운 컬러와 톤을 더한 플리츠 제품을 개발했다. 1975년 화이트 리넨 크레이프로 플리츠를 연구하기 시작해 점차 면, 폴리에스테르, 트리코트 저지로 발전시켜나갔다.
옷 전체에 주름이 있어 ‘편안함’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플리츠 플리즈 제품들은 자칫 펑퍼짐해보이고 옷의 광택감이 중후해 보이는 인상을 줘 한때 50·6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거기에 3~4년 전엔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대표적인 ‘불매운동’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으나 최근 2~3년 사이에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허웅·봉태규 등 착용해 남성 고객↑…“가격대 높아도 실용성 중요”
국내에 이세이미야케 플리츠 플리즈를 수입하는 곳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으로, 2001년부터 20년 넘는 시간 동안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MZ세대 구매 비중은 25% 수준으로,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지난 5월 말 기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늘었고, 매년 두 자릿수 이상씩 신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플리츠 플리즈 외에도 ‘미 이세이미야케’, ‘옴므플리세’, ‘바오바오’ 등 의류부터 가방, 향수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남성 라인을 선보이는 옴므플리세 인기가 뜨겁다.
업계에 따르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허웅 선수를 비롯해 프로듀서이자 방송인인 코드쿤스트, 배우 유아인과 봉태규 등이 착용한 모습이 노출되면서 남성 소비자들의 구매가 늘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하면 떠오르는 검은 터틀넥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리츠 플리즈 제품은 가수 강민경이 주름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어 ‘완판 행렬’을 보인 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방일 당시 김건희 여사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서 이세이 미야케 옷을 선물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의류 가격은 바지 하나에 20만~120만원, 재킷은 38만~250만원대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구매 대란이 일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오픈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온라인상에선 프리미엄(웃돈)을 줘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품귀 현상까지 보인 적도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플플 적금’이란 유행어까지 생겼다. 마치 적금 든 것처럼 노후 준비를 위해 플플 제품을 사 모은다는 뜻이다. 한 벌로 딸-엄마-할머니 혹은 아들-아버지가 같이 입기도 한다고 해 30~40년 동안 입을 것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란 말도 나온다.
이세이 미야케의 인기는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부는 ‘할매니얼’ 트렌드 영향도 있다.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의 ‘밀레니얼’을 합성한 신조어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즐기는 음식이나 문화가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는 의미로 쓰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는 과거 청담이나 강남 쪽 며느리 룩으로 유명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이 사 입는 옷이란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엔 젊은 소비자들이 가격대가 있더라도 소재가 좋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MZ세대들이 막강한 구매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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