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포기할 자유를 허하라[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농지의 변신은 유죄②
낡은 규제로 소유·처분 어려워…‘한 탕’ 개발 노린 수요 집중돼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민법(제99조)에선 부동산을 토지 및 그 정착물로 정의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동이 불가능한 재산이 부동산이다. 농지는 토지의 한 유형이다. 그러니 농지는 부동산이다. 그러나 농지는 소유나 처분, 재산권 행사에 있어 일반 토지와 다르다.
농지는 과연 부동산 자산일까
농지는 헌법에서 규정한 경자유전의 원칙(농사 짓는 사람만 농지 소유) 때문에 일정한 자격(농지취득자격증명원)을 갖추지 못하면 소유나 매매가 금지돼 있다. 특별한 사유 없이 농사를 중단하거나 쉬면 안 된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 역시 지극히 제한된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면, 법적 절차를 거쳐 전용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이 절차가 까다롭다.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는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만약 농지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감정가격 또는 개별공시지가 중 더 높은 가액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매년 부과된다.
귀농인 중에는 이런 규정을 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 받거나 처분명령을 받고 당황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인 부동산 규제가 경기상황 및 정권에 따라 강화나 완화가 반복된다면, 농지는 시대와 정권을 초월해 재산권 규제가 가장 강한 부동산이다. 농지의 공시지가는 수준이 낮아 보유세 부담은 거의 없지만, 담보대출 등의 재산권 행사를 할 때는 불리하다.
농지가 부동산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때는 오로지 개발사업에 편입돼 대지로 전용될 경우에 한한다. 농지소유가 엄격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매입하려는 수요가 끊이지 않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즉 평소에는 부동산 자산으로서 혜택이 가장 낮지만, 개발 ‘한 방’으로 그 동안의 제한을 일시에 보상받는 독특한 자산인 셈이다. 그래서 농지 이용형태는 점점 국민의 식생활 변화보다는 토지보상기준에 좌우된다. 벼농사만 지으면 보상수준이 가장 낮고, 과수나 축사 등으로 이용할수록 보상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농지규제의 불편한 진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대대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자신 명의로 약 3000평 규모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A씨가 이 땅에 벼농사를 지었을 때 얻게 되는 연 수익은 약 800만원에서 1000만원이라고 한다. 그것도 직불제(정부 보조금) 수당을 포함한 것이다. 반면 A씨가 동일한 농지를 주말농장으로 전환해 분양을 하면 연간 수익은 최소 9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벼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구도 마련해야 하고, 사람도 써야 한다. 반면 주말농장을 운영하면 매년 분양수익 이외에 모종이나 비료를 판매할 수 있어 부대수익이 생긴다. 현행법 상 농사를 중단할 수가 없고 농지처분도 여의치 않다면, 이렇게라도 농지를 유지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46.8%)은 전체 고령인구 비율(16.1%)의 3배가 된다. 농가소득이 감소하고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지(부동산자산)가 현금화되기 어려워지는 탓에 이들의 가처분 소득은 매우 낮다.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농지연금제도가 만들어졌다.
농지소유자 연령이 65세 이상이고 영농경력이 5년 이상인 경우 농지연금을 이용할 수 있다. 농지연금을 수령하면서 농지를 임대해 별도의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다만 기존에 담보대출이 있거나, 불법건축물 등이 있으면 안 된다. 농지를 빌려 대신 농사지을 사람만 있다면 농민에게는 훌륭한 금융상품이다. 그렇지만 농경수요가 감소하면 이 역시 농지를 담보로 한 대출상품, 부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귀농을 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은퇴이후 삶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도시를 벗어나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사실 귀농의 목적은 도시에서 누리지 못한 ‘땅의 소비’를 위해서다. 자기 정원을 가꾸고 자기 공간을 꾸리며 흙을 가꾸려는 욕망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비교적 저렴한 토지가 농지이고 농지를 소유하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농경은 농지소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농지규제는 너무 팍팍하다. 농지법 위반 사례는 위장전입만큼이나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국정감사 또는 인사청문회에서 지탄받는 단골 소재다. 전직 대통령도 퇴임 후 사저를 지으면서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들만 농지법을 위반했을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농지소유자들을 만나서 듣는 민원 중에는 농지법의 불합리한 규정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지만, 이미 조금씩 농지법을 위반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실질적인 답을 찾다보면 농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규제완화보다는 이제 그만 농지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다. “곧 ○○개발이 이루어지면 다 해결돼.” 그들이 생각하는 탈출방법은 오로지 ‘개발’이었다. 토지의 현금화가 목적인 개발은 최고의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고, 최고의 수익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역의 역사성이나 공동체에 대한 고민 없이 빡빡한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로만 채워지는 도시개발사업은 토지소유자와 개발사업자가 수익극대화만을 추구한 결과다.
식량안보라는 명분도 퇴색하고 있다. 요즘처럼 인구와 쌀 소비가 줄어들고 농사짓는 시늉만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절대농지면적을 고수하고 농지의 취득과 처분을 계속 규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정부가 농지유지에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남는 쌀을 매입해 주는 비용부담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아는 이 불편한 진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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