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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공급’ 카드 꺼낸 유한양행…폐암 시장 재편 열쇠될까

급여 적용 전까지 렉라자 지원…“유일한 박사 정신 계승”
폐암 치료 약값 연간 7000만원…“공정 경쟁 위반 아냐”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년에만 7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부담돼 폐암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며 “렉라자가 보험 급여에 등재될 때까지 제한 없이 무상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 유한양행]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유한양행이 연간 치료 비용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폐암 신약 ‘렉라자’를 환자들에게 무상 공급한다. 이 치료제가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가 적용될 때까지다. 회사가 무상 공급을 결정한 배경엔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가 있다. 기업가 정신과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창업 정신을 기리기 위해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년에만 7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부담돼 폐암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며 “보험 급여에 등재되지 않으면 사실상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가 없는 만큼 (급여 처방이 가능한 때까지) 지원 규모에 제한 없이 렉라자를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고 했다.

유한양행은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Early Access Program)을 통해 렉라자를 공급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전문의약품의 시판 허가 이후 진료 현장에서 처방이 가능할 때까지 동정적 목적으로 해당 약물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서만 승인받지 못했을 경우 일부 제약사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물을 공급한다. 국내 기업이 무상으로 신약을 지원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한양행은 현재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진료하는 전국의 2·3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약물 사용 신청을 받고 있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폐암 치료를 하지 않은 사람이 렉라자를 처방받을 수 있다. 의료진과 환자가 모두 동의해야만 약물을 사용한다. 렉라자의 보험 급여 등재 여부가 내년 중 결정될 것인 만큼 내년 1분기까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폐암 환자들에게 렉라자를 공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산 신약 ‘렉라자’…‘1차 치료제’로 시장 범위 확대

렉라자는 레이저티닙 성분의 약물로 국내에서 31번째로 허가된 신약이다. 폐암 세포가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는 EGFR을 방해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 렉라자는 올해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EGFR 엑손 19가 결손됐거나 엑손 21이 치환 변이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허가됐다. 기존에는 2차 치료제였던터라 이레사와 타쎄바 등 다른 폐암 치료제로도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만 렉라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경쟁 약물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다. 타그리소는 2018년 12월 국내에서 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하지만 한해 수천만원이 넘는 치료 비용으로 환자들이 실제 이 약물을 처방받긴 어려운 상황이다. 타그리소는 올해도 보험 급여 등재를 위해 여러 차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지난 6월에도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차 치료제이긴 하나 환자 접근성은 떨어지는 셈이다.

유한양행이 렉라자를 무상 공급하기로 한 데도 타그리소가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타그리소가 가격 협상을 비롯한 보험 급여 등재 절차를 밟는 동안 렉라자를 환자들에게 지원하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타그리소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렉라자는 같은 시기 1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사실상 타그리소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렉라자가 보험 급여에 등재되면 국내 폐암 치료제 시장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의료 시장은 보험 급여가 점유율을 확대하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에 판매되는 타그리소와 달리 렉라자는 정부와 가격을 유연하게 협상할 여력도 있다. 유한양행이 렉라자를 보험 급여 대상으로 올리는 데 힘을 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타그리소가 이끄는 국내 EGFR 폐암 치료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크다.

“공정 경쟁 문제없어”…급여 결정 시 무상 공급 중단

일부에서 제기한 공정 경쟁 우려와 관련해 유한양행은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을 통해 렉라자를 무상 공급하는 것은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를 두고 유한양행이 환자들에게 렉라자를 지원하는 것은 환자 유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보험 급여가 적용된 약물이라면 공정 경쟁에 어긋나지만 (렉라자 등은) 모두 비급여 약물”이라며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을 통해 렉라자를 쓰던 환자도 급여가 결정된 후에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제2의 렉라자’를 발굴하기 위한 연구개발(R&D)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10여 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유방암과 위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는 YH32367은 글로벌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표피성장인자수용체(HER2)가 발현된 암세포에 결합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약물이다. YH42946은 먹는 폐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동물실험에서 경쟁 약물보다 뛰어난 항암 효과를 확인했으며 내년 중 임상 단계에 진입할 계획이다. 대장암과 두경부암 치료제 YH32364와 면역항암제 YH41723도 개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렉라자는 유한양행이 추진해 온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정수”라며 “이번 무상 공급을 통해 폐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유한양행은 글로벌 혁신 신약의 꿈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유일한 박사가 생전에 강조했던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라는 창업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에 이바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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