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흔든 해외 부동산펀드…‘78조’ 시한폭탄 되나
[해외 부동산펀드 부메랑]①
미래에셋 홍콩 투자, 전액 손실 가능성
독일·미국·벨기에서도 손실 위기 불거져
국내기관 해외투자 ‘붐’…6년새 2.5배↑
매년 만기도래 펀드 9조…추가 부실 우려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최근 몇 년간 급증하던 해외 부동산 투자가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이 주도한 2800억원 규모 홍콩 오피스 투자 건은 2800억원 전액 손실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고 독일과 미국, 벨기에 등에 투자한 부동산에서도 손실 경고등이 울리고 있다. 국내에서 조성된 해외 부동산 펀드는 최근 6년새 2.5배 늘어난 78조원에 육박한다. 매년 만기도래 펀드만 9조원 규모에 달해, 추가적인 부실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 계열 운용사인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지난 18일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고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 빌딩 펀드 ‘멀티에셋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4호’ 자산 880억원 중 80~100%를 손실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 펀드가 투자한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 가격이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지면서다. 시몬느자산운용 역시 같은 곳에 투자한 ‘시몬느대체투자전문사모투자신탁제12호’ 펀드 자산을 약 90% 상각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공실률 증가…‘홍콩 랜드마크’의 굴욕
이들 펀드가 투자한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은 홍콩 주룽반도(구룡반도) 동부에 위치한 랜드마크 오피스 빌딩으로 2016년 준공됐다. 2019년 당시 이 빌딩이 진행한 1조4950억원(13억달러) 규모 리파이낸싱에 싱가포르투자청(GIC), 도이체방크 등이 선순위 대출로 참여했고 미래에셋은 중순위(메자닌) 대출로 2800억원을 내어줬다. 300억원은 미래에셋증권이, 한국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 보험사들이 850억원을 자기자본투자(PI)로 참여했고 나머지는 멀티에셋운용과 우리은행을 통해 시몬느자산운용이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했다.
그런데 투자 이듬해 터진 코로나19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공실률은 급증했고 글로벌 금리 인상, 홍콩 내 정치적 갈등 등이 맞물리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다. 결국 선순위 대출자인 싱가포르투자청과 도이체방크는 저가에 빌딩을 매각해 원금 회수에 성공했지만 중순위 이하 투자자는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미래에셋증권이 자기자본으로 투자한 300억원을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2500억원은 전액 손실 가능성이 남아있다. 여기엔 최소 가입액 10억원 이상인 초고액자산가(VVIP)들의 자금도 1000억원 이상 포함된다. 이미 펀드 상품들은 최소 80% 이상의 손실을 인정하고 상각 처리에 나섰고, 우리은행 역시 지난달 말 원금의 40~80%를 선제적으로 보전하겠다며 자율 조정에 나선 상태다.
78조 육박한 해외 부동산 펀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 붐이 일어난 건 2014년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기관들은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兆) 단위 자금을 쥐고 해외로 떠났다. 아시아, 유럽, 미국 등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금융투자업계에선 ‘한국 기관들이 해외 우량 부동산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였다. 공격적인 투자에 고점 우려도 불거졌지만 한번 불붙은 경쟁은 쉽게 가라앉을 줄 몰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해외 부동산펀드 순자산은 77조7000억원으로 2017년말(29조9000억원) 대비 2.5배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20년과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불거진 올해 상반기에도 각각 5조원, 3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렸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해외 부동산 투자의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른 해외 부동산 투자건에서도 부실 우려가 나온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 17일 ‘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를 통해 투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 빌딩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빌딩의 60%를 사용 중인 데카방크가 내년 6월을 끝으로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서다. 이미 해당 빌딩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펀드 설정 당시보다 1억 유로 급감한 5억4400만유로 규모로 나타났다. 리파이낸싱에 실패하면 강제 매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이지스운용을 통해 이 빌딩에 투자한 개인 공모투자자(1750억원)·하나증권(1350억원)·키움증권(380억원) 등도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2019년 ‘벨기에코어오피스2호’ 펀드를 통해 1억4530만유로를 투자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투아종도르(TDO) 빌딩도 손실 위험에 처했다. 매년 가치가 하락하면서 펀드 순자산은 지난 24일 기준 634억원으로 3개월 전 대비 31.83% 감소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빌딩에 투자한 ‘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도 마찬가지다.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 부동산펀드는 매년 9조원 규모에 육박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9조5000억원 규모 만기도래를 시작으로 2024년(11조6000억원), 2025년(8조8000억원), 2026년(9조1000억원), 2027년(8조7000억원)까지 매년 수조원 규모 해외 부동산펀드의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해외 부동산 가치 급락의 원인이었던 공실률 상승과 고금리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CBRE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전세계 17개 주요 도시 중 뉴욕과 런던, LA,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홍콩, 시드니 등 10곳의 공실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에 거점을 둔 기업에서 직원들의 재택 근무가 일상화되면서다.
금리 인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5.25~5.50%로 인상했다. 7월 이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매파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준은 금리 인상 단행을 통해 미국 연준의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성명문 문구 유지 등을 통해 계속해서 긴축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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