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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아파트 책임 어디로”…제2의 순살 사태 막으려면?

[순살아파트 포비아] ②
건설업계 “무량판 인센티브 권장하더니 시공사에 책임 전가”
저가발주‧안전불감증 문제, 복합적 제도‧관행 개선해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이 8월 6일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강공사 상황을 살펴 보며 철근 탐지 장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정부가 오는 10월까지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아파트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선 가운데 이를 위한 안전진단 비용을 떠안은 건설사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무량판 구조 적용 시 인센티브를 준다고 권장해 적극 도입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과 비용 부담은 시공사로 돌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순살아파트’ 오명을 낳은 부실시공 사태는 저가 발주, 공사기간 단축, 관리감독 소홀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2의 순살아파트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개선과 이해 상충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 8일부터 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 등 293개 단지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2017년 이후 준공한 188개 단지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105개 단지를 조사해 오는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LH 아파트 조사 결과, 철근 누락시 계약해지권 부여

국토부는 조사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공사 문제 발생 시 공공아파트 입주자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할 계획이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LH 공공아파트 입주자와 입주예정자에게 ‘계약해지권’ 등 다양한 보상 방안을 마련했다.

임대아파트의 경우 계약 후 입주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해지권을 주고 위약금은 면제한다. 보증금을 이미 냈다면 이자를 포함해 반환하기로 했다. 이주를 원하면 이사비 지원 및 거주지 인근 다른 임대아파트에 우선 배정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공공분양의 경우 입주 전 단지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하고, 무량판 구조라는 이유로 입주예정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이미 낸 계약금은 이자를 포함해 돌려주기로 했다. 

또 국토부는 현재 공사 중인 단지는 공사비에서 안전점검 비용을 충당하고, 이미 준공한 단지는 시공사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점검 이후 결과에 따라 시공사가 설계사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이에 건설사들은 민간아파트 안전점검 비용을 일단 시공사가 부담하라는 의미는 일종의 책임 전가가 아니냐는 분위기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순살아파트 문제는)설계 쪽 잘못일 수도 있는데 당장 필요 비용을 건설사에서 내는 것은 솔직히 억울하다”며 “만약 안전문제가 없을 경우 조사에 들어간 비용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가뜩이나 최근 몇 년동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원자잿값 상승, 관련업계 파업 등으로 공사기간이 늘었는데 한정된 인력으로 아파트 전수조사까지 하게 돼서 부담이 상당하다”며 “특히 분양 단지는 입주일이 정해져있는데 공사기간 연장으로 미뤄지면 해당 시공사가 하루당 최대 수백억원대 지체상금을 수분양자에게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8월 8일 오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송파구 위례23단지 지하주차장의 철근 탐사기 확인 작업 모습. [사진 연합뉴스]

당초 정부가 무량판 구조 적용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무량판 공법을 건설사에 독려했다는 점에서 정부도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도 공공·민간 아파트에 무량판 구조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는데 해당 공법을 적용한 아파트에 대해서만 안전성을 조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토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을 지을 때 건축가산비에 완전 무량판 구조는 5%, 무량복합구조는 3% 가산점을 부여한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때 무량판 구조 적용 시 용적률의 10%를 올려주고 있다.

하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8일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가 건설사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알지만 비용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원 장관은 “기준에 맞게 설계했는지, 철근을 제대로 넣고 시공한건지, 시공 과정에서 감리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수조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LH, ‘전관 특혜’ 의혹에 경찰 수사 의뢰도

순살 아파트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자의 ‘전관 특혜’ 의혹도 거론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LH 출신들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공공사업 수주 과정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며 지난 7월 31일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관련 LH 전관특혜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경실련이 요청한 감사 항목은 ▲전관 영입업체 부실설계 봐주기 ▲전관 영입업체 부실감리 봐주기 ▲공공사업 전관 영입업체 밀어주기 등이다. 이에 LH는 지난 8월 4일 경찰청에 무량판 구조 부실 시공이 확인된 15개 아파트 단지의 설계·시공·감리 관련 업체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에서 무더기로 철근이 빠진 사태는 저가 수주 경쟁, 전문인력 유입 부족, 안전불감증과 같은 건설 현장 전반의 문제와 잘못된 관행 등 총체적 부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건축공학업계 전문가도 “설계‧시공‧감리 가운데 책임소재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나누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에 이번 철근 누락 사태를 어느 한 곳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 2의 철근 누락 사태를 현실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도상의 상충 문제, 관행의 개선 문제, 건축공학적 안전율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설계가 잘못됐다고 하면 설계사는 설계를 제대로 해야 하는 1차적인 책무가 있고, 설계를 관리‧감독하는 의무가 있는 LH에도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공사 역시 착공 단계 때 설계도를 재검토하고 공사에 들어가야 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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