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승전한 이곳에 韓 조선 미래가 있다 [가봤어요]
[달라진 한화오션]②
첨단 기술 총망라…디지털 생산센터 조선업계 최초 설립
무인‧자동화 공정으로 진화 중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는 자신의 저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세계의 혼돈을 견딜 일종의 단서로 “장엄함”이란 단어를 언급한다. 이 세계에 장엄함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겠으나, 장엄함을 몸소 실천한 위인이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장엄한 위인은 많지만,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경남 거제 옥포에 있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지난 10월 27일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있는 이중연료 추진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에 승선해 떠올린 단어는 장엄함이었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이 VLCC는 선박이라기보단 ‘바다 위의 성’처럼 느껴졌다. 국제규격으로 축구장 3개가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길이 336미터에 폭은 60미터에 달한다. 한국 아파트 15층 높이의 47미터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고요했다. 엘리베이터와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며 둘러본 이 VLCC에선 막바지 도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10월 30일 출항해 싱가포르 유조선사 AET에 인도되는 이 선박은 한화그룹을 상징하는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정교함이 놀라웠다. 스티어링 휠(타륜)이 있는 휠 하우스(조타실)에는 첨단 기술이 집약된 화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 속에는 운항에 필요한 수많은 숫자로 빼곡했다. 갑판 일부에 까끌까끌한 바닥에 대해 물어보니 한화오션 관계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도료에 모래를 섞어 바닥을 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 운항 등을 위해 식당에선 불 대신 전기를 쓴다. 사소한 부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세심하게 제작한 선박이란 얘기다. 수백 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바느질하듯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이 거대한 선박을 만든 셈이다. 선박에 머무는 동안 장엄함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증‧자동화’…韓 조선 미래 이곳에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는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이끌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었다. 2015년 전 세계 조선소 최초로 구축된 극저온 연구 시설인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해 실제 운항과 같은 극저온 시스템 기반의 실험이 가능하다. LNG 재액화‧재기화 시스템뿐 아니라 암모니아를 연료로 공급하는 시스템, 암모니아를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 액체 이산화탄소 화물을 관리하는 시스템 등을 연구하고 실증설비로 검증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LNG 운반선 표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기술인 LNG 재액화 장치도 이곳에서 실증을 거쳤다. 실증 이후 한화오션은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실제 선박 적용에 성공했다.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와 함께 한화오션이 조선업계 최초로 설립한 슬로싱 연구센터도 살펴봤다. 슬로싱은 선박으로 액체 상태의 화물을 운반할 때 선박의 움직임에 따라 액체가 출렁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선박 화물 탱크 벽면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LNG와 같은 극저온의 화물이나 암모니아 등 독성이 있는 액체의 슬로싱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화오션의 슬로싱 연구센터는 모형 탱크로 실험이 가능한 슬로싱 모션 플랫폼 2기를 비롯해 500여 개의 압력 센서, 500개 채널의 데이터 획득 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실험이 이뤄진다. 눈으로 확인한 모션 플랫폼 2기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액체 출렁임으로 인한 충격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었다.
한화오션은 연결화, 자동화, 지능화 등으로 요약되는 미래 스마트 야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스마트 야드의 이른바 전진 기지인 디지털 생산센터는 조선업계 최초로 지난 2021년 설립됐다. 여의도 면적의 1.5배(490만㎡)에 이르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곳곳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공항의 관제탑 개념인 셈이다.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와 스마트 시운전센터 등 2개의 센터로 구성된다. 스마트 생산관리센터는 조선사 중 처음으로 드론을 이용해 모니터링을 시작한 곳이다. 스마트 시운전센터에선 해상 시운전 중인 선박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정 모니터링뿐 아니라 공정 자체도 무인‧자동화로 진화하고 있다. 위험한 작업을 우선적으로 무인‧자동화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데, 한화오션이 주요 공정에서 활용하고 있는 로봇은 협동 로봇을 비롯해 총 10여 개 분야, 80여 개에 이른다. 한화오션 생산혁신 연구센터에서 만난 이 회사 관계자는 “외업(外業)에서 용접 로봇을 적용한 것은 한화오션이 국내에서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가상현실(VR) 도장 센터에선 실제 도장 작업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VR 기기를 활용해 압축 공기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실제와 유사한 도장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국내 대표 노동 집약 산업인 조선업이 무인‧자동화 미래로 나아가는 순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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