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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중동과 필연적 만남…美·中 아닌 ‘韓 기술’ 먼저 주목한 까닭

[중동에 부는 K-바람]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기고
‘디지털플랫폼정부 수출 1호’ 성과…중동 맞춤형 기술 제공
“우수한 기술 보유한 한국, 정치적 얽매임도 없어 매력적”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사우드 빈 술탄 알 카시미 샤르자 디지털청장이 지난 9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샤르자는 아랍에미리트(UAE) 토후국 중 하나다. [사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지난 10월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으로 중동 빅3 국가와의 정상외교가 완성됐다. 약 130명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한 사우디와 카타르에서는 모두 202억 달러(약 26조3610억원)의 투자와 수주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말 사우디 모하메드 왕세자 방한 때 체결한 290억 달러(약 37조8450억원) 규모의 양해각서와 UAE 방문 때 300억 달러(약 39조1500억원) 수준의 투자 약속도 발표됐다. 이를 모두 합하면 792억 달러(약 107조원) 규모다. 대통령실의 표현대로 ‘우리 기업이 뛸 거대한 운동장’이 중동 지역에 새롭게 펼쳐진 것이다. 이는 한국 기업의 한발 앞선 도전과 기술력, 그리고 ‘원팀 코리아’ 수출 개척단 조성 등을 추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해져 만들어 낸 성과다.

사우디에서는 특히 ‘디지털플랫폼정부 수출 1호’ 소식이 함께 들려왔다. 네이버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 등 5개 도시를 대상으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현실을 가상에 옮기는 기술) 플랫폼을 구축·운영하기로 하고, 1억 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 스마트시티 조성에 필수인 것이 디지털 트윈 플랫폼이다. 사우디는 이를 도시 계획·모니터링·홍수 예측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다. 교통·에너지·도시 등 국가 주요 인프라를 시작으로 데이터 기반 디지털 트윈을 구축해 각 분야의 관리와 운영을 최적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다양한 국내 기업이 참여해 혁신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해외에 수출하는 민-관 협업 플랫폼 모델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원팀’으로 이뤄낸 사우디 디지털 트윈 수출 계약을 통해 디지털플랫폼정부 수출 2·3호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韓 ‘디지털 생태계’는 중동에 맞춤형 솔루션

한국의 앞선 기술력으로 만들고 생산성까지 입증한 ‘디지털 생태계’를 해외에 수출하고자 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의 방향성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필요와 일치한다고 본다. 사우디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뜨거운 곳이다.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과 투자 허브로 변신하겠다는 ‘미래비전 2030’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미래 프로젝트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가 미래 프로젝트 일환으로 발표한 네옴시티는 친환경 에너지 기반의 인프라와 로봇을 활용한 물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총동원한 첨단 신도시로,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적극적인 국가적 협력 의지뿐 아니라 사우디 주택부장관·통신정보기술부장관 등 각료들의 우리 기업 방문이 끊이지 않는 건 대한민국의 기술력에 대한 사우디의 관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네이버는 이번 계약 체결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상당 시간 투자해 완성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1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사우디에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선전했다. 이 표준 플랫폼을 활용하면 개별도시에 맞는 플랫폼이 탄생하기까지 불과 1~2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어필했다. 사우디가 공공 서비스 구축과 운영에 한국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선택한 이유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단기간 내에 자국에 ‘이식’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0월 사우디 디지털청장이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이하 디플정위) 방문을 요청, 면담한 적 있다. 사우디는 공공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추진 원칙은 ▲한 번에(Once-Only) ▲디지털을 기본으로(Digital by Default) ▲플랫폼으로서의 정부(Government as a Platform) 등으로 삼았다. 이런 방향성이 한국의 디지털플랫폼정부의 방향과 일치한다며 사우디 초청과 협력 체결을 적극적으로 제안해 왔다. 사우디의 공공부문 디지털 전환 측면에서도 한국의 정책 경험을 공유받고 파트너십을 구축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 리야드의 네옴전시관에서 열린 한·사우디 건설협력 50주년 기념식에서 네이버와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의 계약 체결을 바라보고 있다. 네이버는 이번 계약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차원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플랫폼 구축 사업 진행한다. 앞줄 왼쪽이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정책 대표. [사진 연합뉴스]

AI 분야 긴밀한 협력 바라는 UAE

사우디 이상으로 대한민국 정부나 기업과 강한 협력 의지를 가진 곳은 아랍에미리트(UAE)다. UAE는 지난 2017년 총리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인공지능(AI)을 주요 정책 어젠다(Agenda·의제)로 삼은 후 ‘AI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AI 2031)을 만들기도 했다. 국가적 관심·지원 속에서 적극적인 AI 인재 육성을 추진하고, 관련 법제와 규제 정비를 통한 AI 친화적 생태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9월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 오마르 알 올라마 UAE 인공지능·디지털 경제 장관을 만났다. 그는 2031년까지 AI 분야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AI연구·교육기관 설립과 적극적인 인재 유치는 물론 AI 스타트업 기업 투자와 육성 등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UAE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도 개발해 발표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개발하고 보유한 LLM에 비해 UAE가 개발해 발표한 것은 모델 크기가 작아 성능 차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UAE가 LLM을 자체 구축했지만 계속해서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UAE 방문 당시 디플정위는 UAE 토후국 중 하나인 샤르자와도 MOU를 체결했다. 샤르자는 문화적·종교적 정체성 보존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국가다. 한국의 AI 기술에 관심이 매우 컸다. 자체 LLM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협력을 바랐다.

UAE와는 공공부문의 AI 관련해서도 잘 적용된 사례들을 선정, 교차 실증해 보자는 데 뜻을 모아 진행 중이다. 오는 2024년 2월 열리는 ‘세계정부정상회의’(WGS) 전에 한국과 UAE의 AI관련 공통 어젠다를 지정해 실무적인 논의를 하기로 했으며, 해당 내용을 WGS에서 함께 소개하기로 했다.

한국이 중동 시선 사로잡은 몇 가지 이유

▲5G·6G와 같은 앞선 통신 기술 ▲세계 4~5번째로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 보유하고 있는 나라 ▲항상 1·2·3위 수준을 유지하는 전자정부 등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은 IT 전환을 서두르는 사우디·UAE를 비롯한 중동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한국보다 앞선 기술력을 가진 국가와 기업들도 중동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동의 시선이 한국으로 향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최근 중동은 어느 한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국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빅테크 기업을 보유한 미국과 협력하기에는 자국에 대한 간섭 우려로 의존도를 높이면 안 되겠단 생각을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국가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ICT 기술을 도입했을 경우 정보에 대한 보안 등에 확신이 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중동 국가가 필요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 중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얽히지 않은 국가다. 과거 ‘중동 붐’이 일던 시절 A부터 Z까지, 인프라부터 기술력까지 모두 이전해 주던 방식에 대한 간절함도 클 것이다. 한국의 다양한 기업이 중동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썩 괜찮은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은_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비젼을 창업해 순수 국내 기술로 세계 최초 모바일 VOD 상용서비스를 실현했다. 이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ICT융합전문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장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거쳐, 2022년 9월 출범한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을 위해 활동 중이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사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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