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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없는 밸류업…기업들 주가 부양 동참 물음표

[기업가치를 높여라] ③
재계,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잰걸음
"커지는 행동주의 펀드 입김…경영권 방어책 필요"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줘야 주가 상승 힘 실릴 것

국내 상장사들이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정부가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높다. 상속세 개편,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등 주주환원 개선을 위한 핵심 내용이 빠지고, 제시된 지원 방안 수준도 기대에 못미치면서 기업들의 지속적인 정책 참여를 유도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월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들도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길 원했다. 이에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에 부응해 창사 이래 첫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을 발표하며 주주 환원정책을 확대했다. 통상적으로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꼽힌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자사주를 가장 많이 소각했거나 결정한 기업은 SK이노베이션으로 7936억원(491만9974주) 규모를 소각했다. 이어 삼성물산은 7676억원(591만8674주) 규모 소각을 결정했고 ▲KB금융 6200억원 ▲KT&G 6176억원 ▲신한지주 4993억원 ▲하나금융지주 4500억원 ▲셀트리온 3599억원 ▲현대자동차 3154억원 ▲네이버 3053억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중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지난 2011년 창사 이래 첫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조200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결의한 뒤 주가가 급락하자 주주환원에 나선 것이다. 삼성물산은 3년에 걸쳐 매년 3분의 1씩 전체 자사주를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문어발 상장과 오너리스크가 불거진 카카오도 최근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밝혔다. 카카오는 2021년 회계연도부터 3개년 동안 매년 별도기준 잉여현금흐름(FCF)의 15~30%를 환원하는 중장기 주주환원정책을 도입했다.

현대차그룹도 지속적인 자사주 소각을 시행할 방침이다. 기아는 오는 3월 중순까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을, 현대차는 전체 지분의 약 4%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년 1%씩 3년간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지난해 연간 최대 실적을 기록한 하이브, NHN는 창사 이래 첫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당근' 없는 밸류업…기업들 주가 부양 동참 물음표

주주환원 동참 나선 재계…“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보완 필요”

이처럼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주주환원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에 동참하고 나섰지만 부담감은 커지고 있다. 우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등에 업고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도 부담 요인 중 하나다. 

실제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기업들의 우려는 커졌다. 삼성물산도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타깃이 됐다. 행동주의 펀드 5곳이 연합해 배당 증액과 자사주 소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물산 측은 “주주제안상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으로 2023년뿐 아니라 2024년 회사 잉여현금흐름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며 “이런 규모의 현금 유출이 이뤄지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표면적으로는 지배구조 개선, 배당금 확대 등 주주환원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들은 단기 차익 실현을 목표로 기업 경영에 과도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경영권을 방어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한다면 기업들의 장기적 성장 발판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투기적 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면 상장사가 주주 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먼저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이란 보통주와 비교했을 때 훨씬 많은 의결권을 지배 주주에게 부여하거나 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의 수를 달리하는 제도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경영권 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에 대해 저가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와 함께 주주환원 등을 통해 효과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상속세 인하,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시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의 구체적인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대주주들은 배당금이 다른 금융 소득과 종합과세 돼 최고 세율인 49.5%를 물어야 한다. 또 주가가 높으면 상속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가 주가 부양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오너가(家) 입장에서는 주가가 하락할 수록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는데 주가 상승이 달가울리 없다. 기업가치 상승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지분 매각 등으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경영권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가상승을 바라는 소액주주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없는 셈이다.  

실제 한국의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까지 더하면 60%까지 늘어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하고, OECD 평균(25%) 수준까지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신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가치를 확대하는 방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세, 증여세 문제는 국민 정서상 쉽지 않은 주제고, 세제 당국과도 협의가 좀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 약간의 상속세나 증여세를 조금 감면해 주는 전향적인 방안을 찾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어 “행동주의를 실현을 하더라도 민간 투자자는 상당히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세제나 혜택을 줘서 장기 보유에 대한 조금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징벌적”이라며 “세제 개편을 하되 경영진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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