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 목표 설정 자체가 오류…뇌는 전기 회로”[이코노 인터뷰]
이진형 엘비스 대표 인터뷰
뇌 디지털 트윈 솔루션 뉴로매치 개발
뇌전증·알츠하이머병 등 적용 질환 다양
뇌 기능 파악 초점…신약 개발에도 도움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질환은 많다. 치매도 그중 하나다. 치매는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여러 질환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를 치매 환자라고 한다. 치매는 현재까지 뚜렷한 치료제도 없다. 수년 전 세계 첫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나왔지만, 부작용이 커 시장에서 사라졌다. 지난해에는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미국에서 승인되거나 치료 효과 기대가 큰 약물이 우수한 연구 결과를 내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이 약물들도 낮아진 인지 기능을 되돌리진 못한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만난 이진형 엘비스 대표는 “기업들은 그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뇌 속 단백질 덩어리(플라크)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약물을 개발했다”면서도 “이런 시도는 대다수가 실패했고 현재 시장에 나온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도 치매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뇌질환 치료제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목표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뇌질환을 치료한다는 일은 뇌 기능 정상화가 목표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뇌의 기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학·생명공학과 교수다. 한국인 여성 최초의 종신교수로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2010년 뇌신경과 헤모글로빈의 농도 관계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에 게재했다. 회로를 분석하듯 뇌의 기능과 질환을 연구했고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엘비스를 창업했다. 이후 학술 활동에 매진해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파이어니어(Pioneer)상도 수상했다. 파이어니어상은 보건 분야에서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또 다른 뇌’로 신약 개발까지
이 대표는 뇌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 기술에 주목했다. “뇌는 전기 회로”라는 발상에서다.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뇌를 보며 ‘회로’를 떠올렸다. 디지털 트윈은 뇌와 똑같이 기능하는 가상의 뇌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이 기술로 뇌질환 환자의 뇌를 가상으로 만들어 분 단위 측정이 가능하다.
의료진과 환자가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된 뇌를 볼 수도 있다. 특정 약물을 투여하거나 자극을 줬을 때 가상의 뇌에 변화가 생기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적절한 치료 방법도 선택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뇌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투입한 시간만 15년이다. 이 대표는 “뇌는 일종의 전기 회로기 때문에 회로를 파악하듯 뇌의 기능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뇌의 통신을 살펴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했고 이를 통해 뇌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십수년의 연구 활동을 통해 내놓은 솔루션이 ‘뉴로매치’다. 뉴로매치는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된 뇌의 전기 회로를 볼 수 있는 솔루션이다. 뇌전증과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자폐·수면장애 등 뇌와 관련한 주요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개발됐다. 이 대표는 현재 뇌전증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뉴로매치를 완성했고, 뇌전증 솔루션은 올해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가 대상인 솔루션도 개발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쓸 수 있는 뉴로매치 솔루션은 2년 내 출시할 계획이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진단 솔루션은 앞으로 새 치료제가 나오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 대표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한 뉴로매치 솔루션이 출시되면 5년 내 신약 개발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뉴로매치를 활용하면 뇌를 직접 열어보지 않고도 약물이 실제 환자의 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엘비스가 신약 개발만을 위한 솔루션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뉴로매치로 특정 약물을 투여한 환자의 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의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대표는 “아직 사례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뉴로매치를 임상시험에 활용한다면 특정 약물이 뇌의 어떤 부분에 작용되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뇌질환 치료제의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치료 효과를 살펴볼 때 설문조사나 행동 측정 등의 방법이 사용되는데 이런 척도를 뉴로매치가 보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뉴로매치를 통해 파악한 특정 약물의 반응이 다른 약물보다 좋지 않다면 임상시험을 진행할지 여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뉴로매치가 신약 개발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엘비스가 솔루션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라고 했다.
집에서 ‘뇌 건강’ 챙기도록
이 대표는 뉴로매치를 통해 환자가 집에서 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의료진이나 제약사에 뉴로매치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환자들이 자신의 뇌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뇌질환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뇌질환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의 아동 자폐 환자의 수는 2020년을 기준으로 36명당 1명꼴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아동 자폐 환자의 수는 150명 중 1명꼴이었다.
이 교수는 “최근 10년간 뇌질환의 증가세를 잡기 위한 연구가 활발했고 자금 투입도 막대했다”면서도 “뇌질환의 증가세를 꺾을 기술은 하나도 개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로매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들이 뇌 건강을 집에서 관리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며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의료환경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서울에 있는 의료진이 다른 지역의 뇌질환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원격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뉴로매치가 환자의 치료 편의는 물론, 의료 비용을 줄이는 데도 쓰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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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만난 이진형 엘비스 대표는 “기업들은 그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뇌 속 단백질 덩어리(플라크)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약물을 개발했다”면서도 “이런 시도는 대다수가 실패했고 현재 시장에 나온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도 치매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뇌질환 치료제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목표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뇌질환을 치료한다는 일은 뇌 기능 정상화가 목표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뇌의 기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학·생명공학과 교수다. 한국인 여성 최초의 종신교수로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2010년 뇌신경과 헤모글로빈의 농도 관계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에 게재했다. 회로를 분석하듯 뇌의 기능과 질환을 연구했고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엘비스를 창업했다. 이후 학술 활동에 매진해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파이어니어(Pioneer)상도 수상했다. 파이어니어상은 보건 분야에서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또 다른 뇌’로 신약 개발까지
이 대표는 뇌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 기술에 주목했다. “뇌는 전기 회로”라는 발상에서다.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뇌를 보며 ‘회로’를 떠올렸다. 디지털 트윈은 뇌와 똑같이 기능하는 가상의 뇌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이 기술로 뇌질환 환자의 뇌를 가상으로 만들어 분 단위 측정이 가능하다.
의료진과 환자가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된 뇌를 볼 수도 있다. 특정 약물을 투여하거나 자극을 줬을 때 가상의 뇌에 변화가 생기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적절한 치료 방법도 선택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뇌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투입한 시간만 15년이다. 이 대표는 “뇌는 일종의 전기 회로기 때문에 회로를 파악하듯 뇌의 기능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뇌의 통신을 살펴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했고 이를 통해 뇌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십수년의 연구 활동을 통해 내놓은 솔루션이 ‘뉴로매치’다. 뉴로매치는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된 뇌의 전기 회로를 볼 수 있는 솔루션이다. 뇌전증과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자폐·수면장애 등 뇌와 관련한 주요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개발됐다. 이 대표는 현재 뇌전증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뉴로매치를 완성했고, 뇌전증 솔루션은 올해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가 대상인 솔루션도 개발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쓸 수 있는 뉴로매치 솔루션은 2년 내 출시할 계획이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진단 솔루션은 앞으로 새 치료제가 나오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 대표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한 뉴로매치 솔루션이 출시되면 5년 내 신약 개발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뉴로매치를 활용하면 뇌를 직접 열어보지 않고도 약물이 실제 환자의 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엘비스가 신약 개발만을 위한 솔루션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뉴로매치로 특정 약물을 투여한 환자의 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의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대표는 “아직 사례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뉴로매치를 임상시험에 활용한다면 특정 약물이 뇌의 어떤 부분에 작용되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뇌질환 치료제의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치료 효과를 살펴볼 때 설문조사나 행동 측정 등의 방법이 사용되는데 이런 척도를 뉴로매치가 보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뉴로매치를 통해 파악한 특정 약물의 반응이 다른 약물보다 좋지 않다면 임상시험을 진행할지 여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뉴로매치가 신약 개발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엘비스가 솔루션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라고 했다.
집에서 ‘뇌 건강’ 챙기도록
이 대표는 뉴로매치를 통해 환자가 집에서 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의료진이나 제약사에 뉴로매치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환자들이 자신의 뇌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뇌질환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뇌질환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의 아동 자폐 환자의 수는 2020년을 기준으로 36명당 1명꼴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아동 자폐 환자의 수는 150명 중 1명꼴이었다.
이 교수는 “최근 10년간 뇌질환의 증가세를 잡기 위한 연구가 활발했고 자금 투입도 막대했다”면서도 “뇌질환의 증가세를 꺾을 기술은 하나도 개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로매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들이 뇌 건강을 집에서 관리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며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의료환경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서울에 있는 의료진이 다른 지역의 뇌질환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원격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뉴로매치가 환자의 치료 편의는 물론, 의료 비용을 줄이는 데도 쓰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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