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낙선자(落選者)[전형일의 세상만사]
낙선 정치인들, 간난신고(艱難辛苦) 기다린다
[전형일 칼럼니스트]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여의도 정가에 떠도는 속언(俗言)이다. 이를 바꿔보면 국회의원 자리가 그만큼 ‘꿀 of 꿀’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현직에서 낙선한 사람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생각보다 더한 간난신고(艱難辛苦·몹시 힘들고 어려우며 고생스러움)가 기다리고 있다.
세한도와 소동파
추사(秋史) 김정희는 1840년 나이 55세에 제주도로 기약 없는 귀양을 갔다. 금수저로 태어나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기도 한 그는 유배기간 동안 희망의 끈이었던 절친 김유근이, 1842년엔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렸다.
사실상 사회적 사망 선고로 세상에서 잊혀진 추사에게 제자였던 역관(譯官) 이상적이 책을 하나 보내왔다. 대부분 중국 ‘연행’(燕行)에서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로 모두 100권이 넘었다고 한다.
추사는 변함없는 그의 마음에 답하고자 붓을 들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다.
그는 발문(跋文)에서 “세상의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따르는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아첨하지 않고 바다 밖 초췌하고 야윈 나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논어’의 한 대목인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歳寒然後 知松柏之後凋)를 인용했다. 제목 ‘세한’은 논어의 한 구절이다.
또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훌륭한 사람들도 빈객들의 방문이 그들의 성쇠와 더불어 이뤄졌다. 하비(下邳)의 방문(榜文) 같은 박절함이 극에 달했도다,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로 마쳤다.
세한도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와 연관이 있다. 소동파도 한때 유배 생활을 했다. 그런 소동파를 위로하기 위해 먼 곳에서 아들이 찾아왔다. 소동파가 아들의 정성에 감격해 그린 작품이 언송도(偃松圖)다. 세한도 오른쪽 아래에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낙관이 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다. 추사는 자신과 이상적과의 사이를 소동파와 아들의 관계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전작라(門前雀羅)의 유래
#세한도 글귀 중 급암과 정당시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한무제 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어진 신하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손님이 넘치다가 좌천되고 나니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이를 두고 “그 정도의 훌륭한 사람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이 많지만, 권세가 없으면 그렇질 않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오죽할까”라고 말했다.
‘하비방문’도 역시 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한무제 때 하규(下邽)라는 지역에 적공(翟公)이 정위(廷尉, 검찰총장) 시절에는 집안에 손님이 가득했는데 관직에서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설치할 정도로 한가했다. 그러나 적공이 다시 복귀하자 빈객들이 왕래하고자 하니, 그가 대문에 방을 크게 써놨다.
‘사람은 죽었다 되살아나거나, 가난했다 부유해지거나, 혹은 귀했다 천해져 봐야 사귐의 정과 태도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밖에 참새 그물을 놓을 정도로 한산하다’라는 고사 ‘문전작라’(門前雀羅)가 여기서 비롯됐다.
명불허전(名不虛傳)과 염량세태(炎涼世態)
#중국 전국시대 말기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 가운데 한 명인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일화다.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천하의 인재를 모아 한때 식객이 수천에 이르렀다. 또 현명하기까지 했다. 사마천은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했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시초다.
하지만 맹상군에 대한 주변의 경계로 지위에 부침이 생겼다. 그러자 식객들도 그의 상황에 따라 떠나고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다시 찾아온 이들을 내쫓으려 하자 신의를 지켰던 풍환(馮驩)이 말했다. “저잣거리에 나가보십시오. 아침에는 사람이 북적이다가 저녁이 되면 한적해집니다.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아침에는 살 물건이 많고 저녁에는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금방 덥다가 금방 추워지는 변덕스러운 세태는, 사람의 심사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지 마십시오.”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염량은 ‘명심보감’의 염량처처동(炎涼處處同)에서 나온 말로 ‘뜨거워졌다가 식는 것은 어디든 똑같다’라는 뜻이다. 무상한 세상인심을 말한다.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가는 이유
#문전작라에 대해서도 고려시대 문인 설손은 “그대 보지 않았나, 적공의 문에 거미줄이 얽혀 새 그물을 쳤다는 것을. 아아, 세상 물정을 그대는 한탄하지 말라”고 인간사 모름을 비판했다. 우리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간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세속적인 지위가 있으면 당연히 문전성시를 이룬다. 오래전에도 ‘권력에 따라 교분을 갖는다’는 세리지교(勢利之交)라는 말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이 모였던 것은 영향력과 필요 때문이지 존경하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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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가에 떠도는 속언(俗言)이다. 이를 바꿔보면 국회의원 자리가 그만큼 ‘꿀 of 꿀’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현직에서 낙선한 사람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생각보다 더한 간난신고(艱難辛苦·몹시 힘들고 어려우며 고생스러움)가 기다리고 있다.
세한도와 소동파
추사(秋史) 김정희는 1840년 나이 55세에 제주도로 기약 없는 귀양을 갔다. 금수저로 태어나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기도 한 그는 유배기간 동안 희망의 끈이었던 절친 김유근이, 1842년엔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렸다.
사실상 사회적 사망 선고로 세상에서 잊혀진 추사에게 제자였던 역관(譯官) 이상적이 책을 하나 보내왔다. 대부분 중국 ‘연행’(燕行)에서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로 모두 100권이 넘었다고 한다.
추사는 변함없는 그의 마음에 답하고자 붓을 들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다.
그는 발문(跋文)에서 “세상의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따르는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아첨하지 않고 바다 밖 초췌하고 야윈 나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논어’의 한 대목인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歳寒然後 知松柏之後凋)를 인용했다. 제목 ‘세한’은 논어의 한 구절이다.
또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훌륭한 사람들도 빈객들의 방문이 그들의 성쇠와 더불어 이뤄졌다. 하비(下邳)의 방문(榜文) 같은 박절함이 극에 달했도다,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로 마쳤다.
세한도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와 연관이 있다. 소동파도 한때 유배 생활을 했다. 그런 소동파를 위로하기 위해 먼 곳에서 아들이 찾아왔다. 소동파가 아들의 정성에 감격해 그린 작품이 언송도(偃松圖)다. 세한도 오른쪽 아래에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낙관이 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다. 추사는 자신과 이상적과의 사이를 소동파와 아들의 관계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전작라(門前雀羅)의 유래
#세한도 글귀 중 급암과 정당시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한무제 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어진 신하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손님이 넘치다가 좌천되고 나니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이를 두고 “그 정도의 훌륭한 사람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이 많지만, 권세가 없으면 그렇질 않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오죽할까”라고 말했다.
‘하비방문’도 역시 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한무제 때 하규(下邽)라는 지역에 적공(翟公)이 정위(廷尉, 검찰총장) 시절에는 집안에 손님이 가득했는데 관직에서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설치할 정도로 한가했다. 그러나 적공이 다시 복귀하자 빈객들이 왕래하고자 하니, 그가 대문에 방을 크게 써놨다.
‘사람은 죽었다 되살아나거나, 가난했다 부유해지거나, 혹은 귀했다 천해져 봐야 사귐의 정과 태도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밖에 참새 그물을 놓을 정도로 한산하다’라는 고사 ‘문전작라’(門前雀羅)가 여기서 비롯됐다.
명불허전(名不虛傳)과 염량세태(炎涼世態)
#중국 전국시대 말기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 가운데 한 명인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일화다.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천하의 인재를 모아 한때 식객이 수천에 이르렀다. 또 현명하기까지 했다. 사마천은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했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시초다.
하지만 맹상군에 대한 주변의 경계로 지위에 부침이 생겼다. 그러자 식객들도 그의 상황에 따라 떠나고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다시 찾아온 이들을 내쫓으려 하자 신의를 지켰던 풍환(馮驩)이 말했다. “저잣거리에 나가보십시오. 아침에는 사람이 북적이다가 저녁이 되면 한적해집니다.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아침에는 살 물건이 많고 저녁에는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금방 덥다가 금방 추워지는 변덕스러운 세태는, 사람의 심사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지 마십시오.”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염량은 ‘명심보감’의 염량처처동(炎涼處處同)에서 나온 말로 ‘뜨거워졌다가 식는 것은 어디든 똑같다’라는 뜻이다. 무상한 세상인심을 말한다.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가는 이유
#문전작라에 대해서도 고려시대 문인 설손은 “그대 보지 않았나, 적공의 문에 거미줄이 얽혀 새 그물을 쳤다는 것을. 아아, 세상 물정을 그대는 한탄하지 말라”고 인간사 모름을 비판했다. 우리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간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세속적인 지위가 있으면 당연히 문전성시를 이룬다. 오래전에도 ‘권력에 따라 교분을 갖는다’는 세리지교(勢利之交)라는 말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이 모였던 것은 영향력과 필요 때문이지 존경하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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