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의약품 자급률 높여야”…美·日도 고민
[의약품, ‘재료’가 없다]②
안보 키워드로 떠오른 의약품…자급률 높이기 씨름
‘세계의 약국’ 인도도 중국에 의존...韓 정부 지원책 필요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감염병 대유행(팬데믹) 이후 ‘제약주권’에 관심이 쏟아진 가운데, 원료의약품(API)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세계 의약품 시장을 이끄는 미국도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낮아지며 고심이 깊어진다.
세계 시장에서 원료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맡으며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도 정작 자국의 원료의약품 상당수를 중국에서 사들이고 있다. 의약품이 ‘안보’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세계 각국이 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씨름하는 셈이다.
미국도 의약품 만들려 타국 의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하던 2021년 ‘100일 검토 보고서’(100 Days Review)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 제조와 첨단 패키징 ▲대용량 배터리 ▲핵심 광물과 소재(희토류) ▲의약품과 원료의약품 등 주요 품목의 공급망에 대한 취약점을 각 부처가 100일 동안 검토하라는 내용이다.
핵심은 미국이 다른 국가에서 이들 품목의 상당수를 수입하고 있단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이 중국에 상당히 의존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백악관이 여기에 대응할 방안을 찾아 나선 셈이다.
주요 품목에 의약품이 포함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해 의약품 공급망을 재검토했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미국 현지에서 고열과 오한, 기침 등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 등의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문제는 미국에 이런 의약품목을 생산할 수 있는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의 원료 제조 공장 87%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위치해 있다. 배송과 무역 제한으로 의약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던 셈이다.
또, 미국의 제약사는 연구개발(R&D)과 제품 특허, 임상시험 등 제약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담당해 왔다. 원료의약품은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라 중국과 인도 등이 사실상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은 공급망이 투명하지 않지만, 이들 국가가 세계 의약품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통제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에서 사용된 원료의약품의 28%만 자국에서 생산됐다. 나머지 72% 중 3분의 1은 인도와 중국에서 수입한 원료의약품이다. 이 중 인도는 18%를, 중국은 13%를 차지한다.
인도는 특히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강세다. 규모 측면에서 세계 3위 수준의 제약산업을 구축했다. 인도브랜드자산재단(IBEF)에 따르면 인도의 제약산업 수출은 2021년 기준 224억 달러(약 31조5549억원)를 기록했다.
이 중 상당수는 복제약(제네릭)으로, 인도가 제네릭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다. 인도가 2020년 말라리아 치료제에 쓰이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원료의약품 26개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자,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의약품 공급망을 두고 혼란이 일었다.
이런 인도도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처지다. 인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현재는 원료의약품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2 이상은 중국에서 들여온다.
세계 각국, 자급률 높이려 안간힘
인도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주요 의약품에 대한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 제도를 추진했다. 자국에서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필수의약품의 여러 재료를 국내에서 제조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PLI 제도의 성과는 속속 나고 있다. 인도의약품제조업협회(IDMA)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PLI 제도의 적용 범위를 원료의약품으로 확대한 이후 현지에서 파라아미노페놀을 생산하는 시설은 1곳에서 3~4곳으로 늘었다. PLI 제도를 통해 기업에 매출, 생산에 따른 자금을 지급한 결과다. 파라아미노페놀은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의 중간체다. 인도의 신용평가기관인 ICRA는 인도가 4~5년 내 중국에서 들여오는 원료의약품을 25~30% 정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했다.
일본도 의약품 자급률을 더 확대하기 위해 열심이다. 일본의 제약사는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자국의 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원료의약품을 굳이 수입한다 해도 인도와 중국이 아닌 유럽과 대만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최근 가격이 낮은 중국과 인도의 원료의약품을 찾는 제약사가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요 의약품의 약가를 일정 금액 아래로 낮추지 않는 정책을 검토했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 승인 등을 조정하는 상황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다른 국가처럼 우리나라도 보건 안보 상황이 위협받을 수 있는 시기에 대비해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요 의약품을 선정하고, 기초 원료, 중간체, 완제품 등까지 모두 포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고령화로 인해 의약품의 수요는 늘지만, 원료의약품 기업은 생산 비용 문제로 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투자로 기업이 활로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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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장에서 원료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맡으며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도 정작 자국의 원료의약품 상당수를 중국에서 사들이고 있다. 의약품이 ‘안보’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세계 각국이 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씨름하는 셈이다.
미국도 의약품 만들려 타국 의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하던 2021년 ‘100일 검토 보고서’(100 Days Review)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 제조와 첨단 패키징 ▲대용량 배터리 ▲핵심 광물과 소재(희토류) ▲의약품과 원료의약품 등 주요 품목의 공급망에 대한 취약점을 각 부처가 100일 동안 검토하라는 내용이다.
핵심은 미국이 다른 국가에서 이들 품목의 상당수를 수입하고 있단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이 중국에 상당히 의존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백악관이 여기에 대응할 방안을 찾아 나선 셈이다.
주요 품목에 의약품이 포함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해 의약품 공급망을 재검토했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미국 현지에서 고열과 오한, 기침 등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 등의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문제는 미국에 이런 의약품목을 생산할 수 있는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의 원료 제조 공장 87%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위치해 있다. 배송과 무역 제한으로 의약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던 셈이다.
또, 미국의 제약사는 연구개발(R&D)과 제품 특허, 임상시험 등 제약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담당해 왔다. 원료의약품은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라 중국과 인도 등이 사실상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은 공급망이 투명하지 않지만, 이들 국가가 세계 의약품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통제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에서 사용된 원료의약품의 28%만 자국에서 생산됐다. 나머지 72% 중 3분의 1은 인도와 중국에서 수입한 원료의약품이다. 이 중 인도는 18%를, 중국은 13%를 차지한다.
인도는 특히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강세다. 규모 측면에서 세계 3위 수준의 제약산업을 구축했다. 인도브랜드자산재단(IBEF)에 따르면 인도의 제약산업 수출은 2021년 기준 224억 달러(약 31조5549억원)를 기록했다.
이 중 상당수는 복제약(제네릭)으로, 인도가 제네릭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다. 인도가 2020년 말라리아 치료제에 쓰이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원료의약품 26개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자,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의약품 공급망을 두고 혼란이 일었다.
이런 인도도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처지다. 인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현재는 원료의약품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2 이상은 중국에서 들여온다.
세계 각국, 자급률 높이려 안간힘
인도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주요 의약품에 대한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 제도를 추진했다. 자국에서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필수의약품의 여러 재료를 국내에서 제조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PLI 제도의 성과는 속속 나고 있다. 인도의약품제조업협회(IDMA)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PLI 제도의 적용 범위를 원료의약품으로 확대한 이후 현지에서 파라아미노페놀을 생산하는 시설은 1곳에서 3~4곳으로 늘었다. PLI 제도를 통해 기업에 매출, 생산에 따른 자금을 지급한 결과다. 파라아미노페놀은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의 중간체다. 인도의 신용평가기관인 ICRA는 인도가 4~5년 내 중국에서 들여오는 원료의약품을 25~30% 정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했다.
일본도 의약품 자급률을 더 확대하기 위해 열심이다. 일본의 제약사는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자국의 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원료의약품을 굳이 수입한다 해도 인도와 중국이 아닌 유럽과 대만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최근 가격이 낮은 중국과 인도의 원료의약품을 찾는 제약사가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요 의약품의 약가를 일정 금액 아래로 낮추지 않는 정책을 검토했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 승인 등을 조정하는 상황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다른 국가처럼 우리나라도 보건 안보 상황이 위협받을 수 있는 시기에 대비해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요 의약품을 선정하고, 기초 원료, 중간체, 완제품 등까지 모두 포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고령화로 인해 의약품의 수요는 늘지만, 원료의약품 기업은 생산 비용 문제로 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투자로 기업이 활로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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