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실력이 궁금해요? ‘레인보우 힐스’로 가보세요[E-골프장 투어]
2700억원의 대규모 자금 투자
‘모든 홀 파 하기 어렵고 보기 하기 쉬워야 한다’는 설계 철학 담겨
[김인오 MHN스포츠 골프전문기자] ‘상대에겐 관대하게, 나에겐 엄격하게’라는 골프 격언이 있다. 동반자의 스코어는 최대치로 허용해 ‘잘’ 적어줘야 하고, 자신의 스코어는 골프 룰에 위반되지 않게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수의 아마추어 골퍼는 자신에게만 관대하다. 1~2타 줄이는 것은 애교이고, 5~6타 정도는 기본으로 줄인다. 특별한 ‘상’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자신의 경기력을 알아야 발전이 있다. 골프는 스코어를 조금씩 줄여 나갈 때 즐거움과 희열을 얻는 스포츠다.
진짜 자신의 실력이 궁금하고, 골프에 대한 도전 정신을 느끼고 싶은 이가 있다면 충북 음성에 있는 ‘레인보우 힐스’ 골프장을 추천한다. “평소 스코어보다 7~8타는 더 나와요.” 한 캐디 분이 단언했다. 믿기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18개 홀을 마치고 나면 거짓말처럼 스코어가 늘어 있다. ‘쉬운 골프장이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이는 ‘다시는 안 와!’를 마음 속으로 외칠 것이고, 골프에 진심인 사람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레인보우힐스에서는 2021년부터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한국여자오픈이 열리고 있다. 올해는 출전 선수 132명 중 단 11명 만이 언더파 스코어로 대회를 마쳤다. 최고 실력자들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적다. 한 선수는 “코스가 너무 어렵다. 스코어카드를 보면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더 욕심이 생긴다. 여기에서 우승하면 최고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고 중의 최고 골프장을 만들어 주세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고,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 필요하면 계곡을 다 메워주겠다.” 레인보우 힐스의 창업자인 김준기 DB그룹 전 회장은 충북 음성과 진천에 걸친 수레의산(해발 679m) 중턱에 ‘대한민국 최고 회원제 골프장’을 짓고 싶었다. 세계적인 골프코스 디자이너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산악지형 골프 코스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설계자는 고사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진심에 마음을 바꿨고, 2008년 그림 같은 27홀(남·동·서 코스) 골프장이 탄생했다.
존스는 완공 후 시를 남겼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과 창업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았다. ‘페어웨이 굽이쳐 흐르고/시냇물 바위를 어르고/산은 탑처럼 우뚝한데/벙커는 놓아주지 않으려 하네/(중략)/그 길들여지지 않을 코스를 영원히 사랑하리’. 당시 그는 “내 인생에서 골프장에 시를 헌정한 것은 처음이다. 내 사랑을 길이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클럽하우스 역시 세계적인 설계 기업인 마이(MAI)가 디자인했다. 매년 미국에서 레저부문 건축상을 수상하는 회사다. 외장 마감 재료는 미국에서 공수한 ‘샌드 스톤’으로 은은하고 고급스런 회색 빛이 일품이다. 현지 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골퍼들을 매료한다. 코스 설계자 존스의 부조와 시가 새겨진 동판도 볼 수 있다.
창업자와 설계자의 진심과 2700여억 원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지만 아픔도 있다. 최고 수준의 회원권 금액인 8억원으로 분양했지만 경기 불황 탓에 입회금 반환 요청이 몰리면서 2015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17년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서비스 품질과 코스 관리는 회원제 골프장 시절의 수준을 유지했다. 그 덕에 흑자로 돌아섰고,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코스는 어렵다. 유명 설계자 집안인 존스 가문은 ‘모든 홀은 파를 하기 어렵고 보기 하기는 쉬워야 한다’는 코스 설계 철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레인보우힐스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지어져 전체적으로 업다운이 심하다. 페어웨이도 평지가 없고, 작은 그린에 경사도 만만치 않다.
이글을 노려볼 짧은 파5 홀과 파4홀이 있지만 철저한 전략이 없다면 대거 타수를 잃게 된다. 14개 클럽으로 ‘생각하면서’, 그리고 ‘기술적인 샷’까지 갖추고 있어야 좋은 스코어를 받아들 수 있다. 18홀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따라서 샷 기술 외에 ‘인내력’까지 요구된다. 레인보우힐스는 애초 골퍼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도록 변별력을 높인 코스다. 따라서 많은 골퍼들은 실망보다는 재도전하는 날을 달력에서 열심히 찾는다.
자연 지형 그대로…모든 홀이 ‘시그니처’
레인보우힐스는 페어웨이에 한지형 양잔디인 켄터키블루그래스를 심었다. 러프는 켄터키블루그래스와 패스큐를 혼용했다. 그린은 최고급 벤트그래스를 식재했다. 명문 골프장의 기준은 그린 컨디션. 평균 스피드 3.0을 유지하고 있어 골퍼들의 만족도를 높인다.
개장 당시에는 동·남 코스가 회원제였고, 서 코스는 부설 퍼블릭 코스로 운영됐다. 한국여자오픈 코스는 회원제였던 동·남 코스가 사용된다. 서 코스 9번홀은 대회 기간 드라이빙 레인지와 쇼트게임 연습장으로 변신한다. 국내 대회 중 몇 안 되는 잔디 타석을 제공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돕는다.
시그니처 홀은 동 코스 3번홀(파4)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꼭 닮아서 ‘한반도 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장타자는 한반도 쪽으로 샷을 날리면 짧은 클럽으로 어프로치 샷을 할 수 있다. 캐리로 190미터 이상 보내면 한반도 남단에 닿을 수 있다. ‘굿샷’에 대한 보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설계자 존스의 철학이 담겼다. 만약 자신이 없으면 ‘일본 땅’으로 치면 된다. 남은 거리는 길다. 따라서 롱아이언이나 우드의 시험대가 된다.
남 코스 2번홀 역시 상벌이 확실한 홀이다. 이 곳에서는 아름다운 인공 계단 폭포의 유혹을 피해야 한다. 레귤러 티 기준으로 240미터 이상을 날려야 폭포수 너머로 공을 보낼 수 있다. 넘기만 하면 그린까지는 쉬운 길이 남는다. 폭포 오른쪽에 있는 페어웨이는 드라이버를 잡지 않아도 쉽게 안착이 된다. 다만 그린까지 가려면 물도 넘어야 하고 벙커도 피해야 한다. 따라서 이 홀에서는 ‘파’만 잡아도 ‘버디’를 친 기분이 든다. 남 코스 6번홀 역시 매력적이다. 300억원짜리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며 티샷하는 파3 홀로 온그린에 성공하면 묘한 ‘정복감’이 드는 홀이다.
레인보우힐스는 서울 강남권에서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물론 원활한 교통 흐름일 때의 얘기다. 따라서 여유를 갖고 집을 나서는 것을 추천한다. 골프장 인근에는 충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감곡성당이 있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의 피신처로 유명한 곳이다.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막걸리 양조장과 맥주 양조장 방문도 추천한다. 여름이라면 당도가 높은 최고로 치는 ‘맹동 수박’을 놓치면 안 된다. 반드시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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