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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살던 집에서 늙고 싶다]③
저출생 고령화가 맞이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의료‧돌봄‧요양 가능한 주거 공간 마련해야

국내 한 대학병원의 병실 모습.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출생률이 낮아지는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지만, 우리가 당면하는 시대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게 더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전인구의 3분의 1, 아니 그 이상이 노인으로 채워지면서 노동‧경제‧복지의 모든 구조변화가 불가피하다. 고도성장기 아파트 단지와 함께 조성됐던 유치원이 이제는 노인들의 데이케어센터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오래 살지만 낫지 않는 병을 안고 사는 유병장수의 시대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양극화는 더 심화해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만큼 우리에게 예측 불가능한 시대가 있었을까.

지금의 장년 세대는 자신은 물론 자기 아이들의 미래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에 불안해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동의하게 된다. 혹시 이런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저출생의 문제도 해결될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기획재정부가 조만간 ‘시니어 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소식이나 보건복지부나 국토부가 아닌 기재부라는데 다소 놀랐다. 신탁사나 생명보험사들이 요즘 신규시장을 찾아 시니어 요양사업에 관심을 두다 보니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시니어 주택은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종과 분야가 연계되어 공간과 서비스 그리고 돌봄과 복지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책이나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공간’에 갇힌 시니어 주택 NO, 의료‧돌봄‧요양이 가능한 주거 Yes

실제로 시니어주택 관련 사업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건설사들과 프롭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프롭테크 기업들은 노인돌봄 서비스에 AI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공급되는 시니어 주택의 대부분이 아직은 서비스보다는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어 있고 너무 고가(高價)의 상품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다. 소득이나 질환의 경중에 따른 의료와 요양, 주거를 결합하고 정부의 장기 요양보험과 연계할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시니어 주택으로 공급되었으나 그 용도가 변질되거나 전환된 경우도 많다.

덕분에 시니어 주택 사업을 하려면 이런저런 규제에 부딪히게 된다. 입지도 도심보다 외곽이 많다. 시니어 주택을 과거 신도시 건설하듯이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심 내 재개발 재건축 등의 사업에서 저층부를 시니어 주택으로 공급도록 하는 유인책이나 기존에 살고 있는 집을 노인 친화형으로 개조하거나 보수하는 데에 대한 지원은 아직 없다. 방문 의료나 방문간호 등 좀 더 노인들에게 의료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케어시스템도 미흡하다. 그리고 이를 기존 복지와 연계하려는 범부처 차원의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재택의료‧요양 실험, 우리도 교훈 얻어야

의대 정원 확대로 야기된 전공의 사태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일본도 이와 비슷한 위기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본 의료시스템의 위기는 다름 아닌 장수명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비용의 부담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구당 병상수가 많고 평균 입원 기간도 길다. 구급차를 부르는 것에 심리적 금전적 부담도 적다.

한국과 일본의 건강보험제도는 다른 선진국에서 부러워할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고령 사회가 되면서 이 모든 것들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일본은 인구과소지역의 병원들이 적자와 의사 부족으로 잇따라 폐쇄되고 국가의 의료 및 개호보험제도에서 수용할 수 없는 의료 의존도가 높은 고령 인구들이 갈 곳이 없어 의료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도 처음에는 병원이나 의사 수, 요양시설(노인케어 홈 포함)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의 병상수를 줄이고 본인 부담금은 늘리면서 비용 지출을 억제하는 동시에 재택의료와 병원설비의 공유, 의사의 아웃소싱 등 의료서비스의 전달체계 자체를 개혁하고 있다. 특히 과소지역의 의사 부족은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배분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아직 이러한 변화가 일본 전역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간의 새로운 비즈니스로, 정부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의사 수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령자들의 다양하고 장기화하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전달체계가 이대로 괜찮은가. 유병장수 시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요양시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막상 집에서 더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병원 아니면 요양시설 이외의 다른 선택지는 많지 않다.

원래 생로병사의 공간은 ‘집’이었다. 과거에는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으며, 집에서 노인이 되고 집에서 병을 치유하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집 밖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제 수명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머무는 기간도 늘어났다. 기술의 발달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생로병사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집에서 일도 하고, 늙고, 요양을 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니어 주택은 물론 노인들이 안심하고 주거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의 공급이 서비스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사회 시스템 전반을 고치고 재편해야 할 타이밍이다. 특히 정부 부처는 ‘시니어 주택 활성화’라는 주제를 통해 이런 고민을 정책으로, 제도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의 재택의료를 접하면서 고도성장과 핵가족화로 잠만 자는 공간으로 전락했던 집을 이제는 다시 원래의 기능으로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기거’하고 ‘주로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살던 집에서 늙고, 요양과 치유를 하며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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