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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허브가 된 이유는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가난했던 베를린…이민자·성 소수자 등 이방인으로 활기
베를린의 기술·문화 혼종 대표 상징은 테크노 음악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023년 5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스타트업 어워드 2023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Poor but sexy(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독일 수도 베를린이 내세운 구호이다. 아직 이보다 매력적인 도시 슬로건을 본 적이 없다. 내용도 인상적일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다.

베를린은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이다. 2022년 스타트업 히트맵 서베이(Startup Heatmap Survey)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베를린은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등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선진화된 스타트업 생태계로 선정됐다. 

베를린이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모범 도시로 이름을 드높인 것은 아니다. 통일 독일 이전 베를린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경제 선진국들과 지리상 분리되어 있어서 경제 발전이 더딘 데다, 대표적인 슬럼 지역이었다. 

경제 성장에 대한 희망이 없던 베를린은 어떻게 변화의 물꼬를 텄을까. 변화의 마중물을 부은 이들은 다름 아닌 창업자와 스타트업이었다.

베를린 4T: technology·talent·tolerance·techno

베를린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 발돋움한 때는 밀레니엄 이후 21세기이다. 서독과 동독이 정식으로 통일한 1990년 전후 베를린은 낙후된 도시였다. 독일 수도였지만 뮌헨(München), 프랑크푸르트(Frankfurt)와 같은 다른 독일 대도시와 비교하면 경제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치안까지 불안해 독일인들은 베를린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이민자와 성 소수자 같은 이방인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었다. 생활 물가가 낮았고 새로운 성장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개성만은 뚜렷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도시에는 다른 것을 포용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진취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독일인들이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은 다양한 문화와 기술 혁신이 공존하는 메가시티로 차츰 변모했다. 

베를린이 가진 기술과 문화의 혼종을 대표하는 상징이 테크노(techno) 음악이다. 오늘날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으로 잘 알려진 테크노 음악은 베를린에서 탄생했다. 이는 다른 것을 차별하지 않는 베를린의 포용적인 문화를 상징한다. 

밀레니엄 전후 급성장한 IT 기업과 스타트업은 베를린 특유의 개방된 환경을 선호했다. 특히 베를린에서 창업한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 거둔 대성공은 베를린을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도시로 알린 계기였다. 로켓인터넷은 북미 지역에서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사업 모델을 재빠르게 복제해서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손잡고 성장하는 베를린은 이른바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가득한 도시로 평가받는다. 창조 계급은 세계적인 도시 연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제시한 개념으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시민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도시와 지역 성장을 이끄는 핵심 집단이다. 

그는 창조 계급 형성에 미치는 여러 변수를 제시하면서, 이들 변수를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으로 분류하였다. 이른바 3T(technology·talent·tolerance) 이론이다. 

오늘날 베를린은 3T 측면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베를린은 고등 교육 과정을 이수한 수준 높은 인재가 많다. 이들의 비율은 독일 평균 이상이다. IT 인재들이 많아 관계 인력 수급이 편리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베를린 시민의 약 20%가 외국인이고, 스타트업 내 외국인 근로자 비율은 40%가 넘는다. 국적도 매우 다양하다. 

스타트업에서 활동하는 창조 계급들은 베를린을 글로벌 스타트업 도시로 이끈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 유치에 기울이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를린에서 한국과 독일의 창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123 팩토리(123 Factory) 이은서 대표는 “베를린은 국제적이고 개방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외국 인재들에게 행정적으로도 매우 열려 있는 편이라, 최근에는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개발자들을 활발히 고용한다.”라며 베를린의 개방적인 문화를 강조했다. 



스타트업과 함께 더는 가난하지 않은 베를린

지난 6월에 열린 국내 스타트업 행사 넥스트라이즈(NextRise)에서는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베를린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아시아베를린(AsiaBerlin)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결할 기회를 모색하고자 한국을 직접 방문해 준비한 자리였다. 아시아베를린은 아시아와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교류 목적으로 설립된 베를린 산하 비정부기구(NGO)이다. [JC2] 

그들이 보여준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성과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베를린에는 6천 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고, 현재까지 25개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배출되었다. 이는 2024년 기준 국내 총 유니콘 기업(22개)보다 많다. 또한 베를린에는 수백 명의 초기 투자자들과 200여 개 벤처 투자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는 한 도시가 이룬 스타트업 생태계 성과가 대한민국이 거둔 업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아시아베를린이 진행한 마지막 발표 자료 한켠에 흥미로운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We are poor but sexy except that we are not poor anymore(우리는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그런데 사실 이제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베를린의 슬로건을 유머 있게 바꾼 문장 속에는 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베를린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중심으로 도시 발전을 이룩해 왔다. 한 세대라는 짧은 기간에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쳤고,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국내 도시들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다. 베를린 사례에서 참고할 유용한 교훈이 적지 않아 보인다.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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