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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민과 정치가 일궈낸 소도시 자립과 성장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일본 지방도시에서 배운다]②
정치와 정치인 리더십 도시 생존 넘어 성장으로 이끌어 
‘고향 납세제’를 ‘고향 주주제’로 발전시킨 효과

히가시카와센터 관계자가 중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배움의 의자’ 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의자는 3년간 사용후 졸업할 때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다. [사진 김현아 교수]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우리나라로 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정도인 시골마을(히가시카와 東川)은 어떻게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갖춘 마을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그 핵심에는 기업가적 정치인과 행정 리더십이 있다. 일본 소도시 히가시카와에서 발견한 것은 ‘모방’이 아니라 ‘차별화’ 이였고 ‘경쟁’이 아니라 ‘상생’ 전략이었다. 통합대신 자립을 선택한 히가시카와의 마츠오카 전 정장은 도쿄(오사카)를 흉내내거나 따라잡기 대신 “도쿄(오사카)에는 없는 매력‘을 끌어내어 마을과 주민의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불평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더 키워가자”고 강조하던 그의 리더십은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그 지역만의 성장공식이 된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은 지방살리기의 일환으로 ‘일촌일품운동’을 시작하여 지역별로 특산물을 발굴하고 홍보하였다. 그런데 히가시카와는 특산물을 농산품이나 물건 대신 ‘사진’이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선정하고 이것을 지역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 작은 마을을 ‘사진의 마을’, ‘사진의 수도’로 선포할 때 아마 남들은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매년 고등학생들의 사진경진대회(사진고시엔)가 열리고 '일본에서 사진이 가장 예쁘게 나오는 마을'로 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히가시카와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당당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주대책이 그렇다, 단순히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아니라 쭉 살아보고 싶은 거주지를 만들려고 하기에 조급하지 않다. 이곳으로 와달라고 ‘사정’하지 않는다. 방문자에게 지역의 매력을 보여주고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그들중 일부가 이곳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히가시카와는 홋카이도 2대 도시 아사히카와와 유명 관광지 비에이, 후라노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 도시들에 비해 유명세는 약하지만 일본에서 유일하게 25년 연속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인구증가의 일등공신은 외부로부터의 이주(사회적 이동)인데 다른 지역에서는 제공하고 있는 이주 지원금 같은 것은 없다. 하물며 단기거주 요건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학생들은 지역 커뮤니티센터에서 제공하는 숙박 공간에서 머무를 수 있는데 이외 방문객들은 최소 1년 단위로만 거주지를 계약할 수 있다. 설사 이주를 해오더라도 새 주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얼마전부터 몇몇 멘션(우리나라의 아파트)신축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규모도 적고 속도도 느리다.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 하거나 신축하려면 까다로운 건축기준을 모조리 맞추어야 한다. 

사뭇 우리나라의 제주도가 떠올랐다. 오죽하면 이주자를 선발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전체 인구의 54%가 이주자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주자들이 대부분 육아세대로 젊은층이다 보니 이 마을은 다른 일본의 지방소도시보다 젊다.(일본 시골 마을은 대부분 고령화율이 50% 안팎인데 이 마을은 32%이다.)
히가시카와에서 매년 신생아에게 선물한 의자가 전시되어 있다.[사진 김현아 교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고향납세제’를 ‘고향주주제’로 발전시켜 운영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의 지방도시들도 중앙정부의 교부금과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자주성과 자립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향사랑기부제’는 그 출처가 일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향납세제(후루사토(故郷)납세)’를 시행(2008년)했다. 이는 납세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내야 하는 주민세(소득세도 일부 포함)의 일부를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자신의 고향과 관계가 깊은 지역 또는 납세자가 후원하고 싶은 지역의 지방공공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제도로, 기부금 일부에 대해 세금(주민세, 소득세 일부)을 공제해 주고 지역특산물 등을 답례품으로 받는다. 

히가시카와는 기부금을 모으는 방식이 독특하다. 일회성 답례품이 아닌 '주주권'을 준다. 기부자에게 1000엔당 1주씩 히가시카와초 '주주증'을 발행해 주고 ‘특정 주민증’도 만들어 준다. 주주들에게 주어지는 특전은 기부의 대상(사업의 종류)을 지정할 수 있고, ‘한정 기획 이벤트’를 통해 일명 특산물 중 리미티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만엔 이상의 투자(기부)자들에게는 연간 2박의 무료 숙박권이 제공되며 주주들이 마을을 방문할 때 공공시설 이용료를 할인해 준다. 

마을은 주주들에게서 받은 기부금을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히가시카와의 주주수는 이미 3000명(총무성 2016년 기준)을 넘어섰는데 이를 더 확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생활인구를 늘리고 고향사랑기부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기부자 대상을 확대(기업형 고향세를 도입)하고 기부자들의 ‘주인의식(ownership)’까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특히 히가시카와는 ‘기업형 고향세(정식 명칭은 지방창생응원세)’를 적극 활용해 기업과의 파트너쉽 구축에 힘을 쏟고 있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지역창생사업에 기업이 기부하면 기부액의 30%를 세액공제해 주는데 참여 확대를 위해 공제액을 계속 늘리고 있으며 기업이 이를 ‘SDGs’ 달성이나, 사회공헌의 방식으로도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히가시카와를 방문하며 느낀 점은 지방자치단체장(이하 공무원)이 마치 ‘스타트업의 대표’ 같았다는 점이다. 지역주민들 선택의 결과이지만 이런 선택이 정치인의 리더십을 만들고, 그 리더십이 다시 지역을 살리는 행정으로 선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작지만 살아있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이 지역의 성장이 가능한 건 거대한 중앙정부의 지원금이나 대규모 지역개발사업만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지역에 맞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고 시도하는 정치와 행정의 결과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립과 충돌의 중앙정치만 보면 정치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만 아주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면 정치가 많은 것을 바꿀수도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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